조창범 경수로기획단 특별보좌관
  • 卞昌燮 기자 ()
  • 승인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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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데는 몇 달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왜냐하면 영사 문제와 사무실 확보 같은 기술적 문제에 관한 미ㆍ북한 합의가 필요하고, 미ㆍ북한 합의문이 이행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
올해로 외교관 생활 23년째인 조창범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특별보좌역(48)은 일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동구과장으로 있을 때인 80년대 후반, 한국은 헝가리·체코 등 동유럽권과의 수교 협상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그런 그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의 한국대사관에서 공사로 근무하던 93년 봄에는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북한 핵 문제로 동분서주했다. 지난 1월 하순 현재의 직책을 맡은 그는 최근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미·북한 경수로 회담이 예상 외로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현지 한국측 실무 책임자로 급파돼 미국측과 막후 조정을 했다. 협상 결과 ‘한국형 수용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라는 원칙이 관철돼 과거 어느 때보다 그의 어깨는 가벼워 보였다.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 내에 있는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본부로 조창범 특별보좌역을 찾아가 경수로 타결 이후 상황에 대해 알아 보았다.

콸라룸푸르 미·북한 회담이 예상보다 훨씬 늦어졌는데 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북한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 협정에 한국형이 명기된 것을 보고 이 기구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 초 북경과 베를린에서 세 차례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의 입장은 상당히 경직돼 있었습니다. 콸라룸푸르 회담이 장기화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은 콸라룸푸르 회담에서 벼랑끝 전술을 펴 한·미·일 공조체제를 흩뜨리고 3국의 입장이 후퇴하기를 기대하며 버텼지만, 결국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는 안된다는 점을 깨달은 것입니다.

경수로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설치될 것 같은데, 경수로 공급 협정이 체결되기 전이라도 설치가 가능하겠습니까?

현재로서는 공급 협정이 언제 체결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또 영사 문제와 사무실 확보 같은 기술적 문제에 관해 미·북한 합의가 끝나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북한 합의문 속의 여타 사항을 이행하는 것과도 맞물려 있으므로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려면 몇달 걸릴 것으로 봅니다.

한국형 명기와 관련해 한·미·일 3국 간에 의견 차이는 없었습니까?

‘한국형 수용 및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라는 전략에 관한 한 3국은 완전한 의견 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술 차원에 들어가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콸라룸푸르 언론에 실린 미·북한 발표문을 보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경수로를 제공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구 설립 목적 2조에는 분명히 북한에 제공할 원자로는 한국표준형 2기라고 명기돼 있습니다. 따라서 콸라룸푸르 언론 발표문에 한국형 수용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은 큰 성과라고 봅니다.

콸라룸푸르 회담에서는 ‘한국형 수용 및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라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에 소기의 목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렇다면 작년 제네바 회담 때 미국이 강력하게 이런 원칙을 북한에 요구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요?

당시에는 최우선 과제가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동결시키고, 나아가 북한의 과거 핵 활동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당시 북한 핵 문제는 국제적 성격이 짙었습니다. 북측이 핵을 동결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나온 것이 경수로 제공입니다.

앞으로 경수로 공급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측의 기술진 파견 등 제반 사항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리라 봅니까?

콸라룸푸르 이후의 과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와 북한 간에 공급 협정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공급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북한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간에 시작될 텐데, 그 협정 안에 기술진 파견과 같은 구제척인 사항이 기술될 것입니다.

공급 협정을 얼마나 알차게 마련하느냐에 경수로 사업의 성공이 달렸군요.

물론입니다.

공급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은 언제 시작될 것 같습니까?

늦어도 8월 중에는 협상이 개시될 것으로 봅니다. 구체적인 것은 북한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간에 예비 접촉을 해 봐야 드러날 것입니다.
공급 협정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난항을 겪으리라 보십니까?

상환 조건, 공급 범위, 경수로의 평화적 이용 보장 문제, 핵 안전 문제 등이 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베를린 회담 과정에서 상당한 협의가 있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공급 협정을 체결하기까지는 또 시간이 걸리겠군요.

그렇습니다.

공급 범위와 관련해 미국 기업이 맡게 될 프로그램 코디네이터(감리 회사)의 역할에 대해 의구심이 일고 있는데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한국전력에 경수로 건설을 발주하게 되면 발주자가 사업 진행을 감독하고 감리할 권한을 행사합니다. 그런데 경수로의 경우 매우 전문적인 기술과 숙련된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수행할 감독·감리 기능을 전문적·기술적으로 보좌하기 위해 자문하고 지원하는 것이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입니다.

한국 기업도 감리 능력은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그러나 문제를 이렇게 보면 됩니다. 집을 짓는 데 어떤 회사가 계약대로 잘 지어주고 있는지를 다른 회사 사람에게 검토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리 회사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경수로 사업에 대한 한국의 신뢰도를 오히려 높일 수 있다고 봅니다.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에 대해 너무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경수로 설계는 백% 한국이 맡습니까?

그렇습니다. 영광 3,4호기의 경우 미국 기업과 공동 설계하는 형태였으나 울진 3,4호기는 우리의 자체 설계 기술로 만든 것입니다. 다만 워낙 안전성이 중요하다 보니 기술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 기업에 자문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입니다.

자문 받는 데도 돈이 나가지 않습니까?

그렇죠. 바로 그 부분에 돈이 나가는 비율을 두고 우리 기술의 자립도가 95%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콸라룸푸르 발표문의 내용 가운데 앞으로 북한과 미국이 해석상 이견을 보일 만한 부분은 없습니까?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일부 문장에 관한 북한의 번역본을 보면 영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콸라룸푸르 발표문은 영어본이 유일합니다. 북한의 국내적인 필요 때문인지 몰라도, 김계관 대표가 나눠준 번역본을 보면 일부 왜곡해 해석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의 역할 부분을 영어본보다 과장, 왜곡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즉,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의 기능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보좌하는 것인데, 북한은 마치 전반적 사업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가 하는 걸로 해석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는 없겠습니까?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의 기능 자체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권위에 종속돼 이 기구의 지휘를 받도록 돼 있습니다. 북한이 이 기구를 인정한 이상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북한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간의 협상을 낙관하십니까?

낙관도 비관도 않습니다. 북한행 경수로호는 이미 한 차례 태풍를 겪었습니다. 앞으로 태풍이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많은 것이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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