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항 겪는 무궁화호 위성 발사 계획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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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료 비싼 디지털 방식 채택 등 문제 많아…정부, 방송 운영 청사진 못 내놔
한국 최초의 방송·통신 위성인 무궁화호가 오는 8월3일 발사된다. 89년 무궁화 위성 계획이 수립된 지 6년 만의 일이다. 무궁화 위성에는 중계기가 15개 탑재된다. 통신용이 12개, 방송용이 3개다. 정부는 이 중 방송용 중계기 3개를 통해 위성 방송을 실시할 계획이다.

그런데 위성 발사 한달을 앞둔 현재까지 위성 방송 운영에 대한 정부의 청사진이 나오지 않아 정상적인 위성 방송 운영에 대한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결정이 난항을 겪는 까닭은 위성 방송 운영을 놓고 주무 부처인 공보처와 정보통신부가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쟁점은‘채널 허가 문제’다.

93년 7월 위성 방송 운영 방식이 디지털로 결정됨에 따라 1개의 중계기당 4개씩, 가용 채널이 모두 12개 생겼다. 이 12개 채널을 놓고 정보통신부는 초기에 12개 채널을 모두 허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공보처는 단계적인 허가를 주장하고 있다.

기술·경제 위주 정책으로 발사 목적 무색

하드웨어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정보통신부의 경우, 위성의 수명이 10년인 점을 감안해 초기에 채널을 모두 임대해야만 위성의 활용도를 높이고 위성에 들어간 비용을 뽑아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방송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공보처는 12개 채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 수급 능력이나 방송 인력, 운영에 드는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일시에 많은 채널을 허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갈등의 이면에는 지나치게 기술 발전과 산업 논리 위주로 위성 정책을 이끌어가는 정보통신부에 대한 공보처의 경계심이 잠재해 있다. 특히 올해 초 도입한 케이블TV가 난항을 겪자, 공보처는 자칫 위성 방송이 전체 방송 구조는 물론 국가의 산업 구조까지 흔들어 놓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하드웨어 비용을 포기하더라도 위성 방송 실시를 유보하는 게 국가 경제를 위해 이득이 될지 모른다”는 극단론까지 내놓는다.

사실 그동안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지나치게 기술결정론적인 입장에서 추진돼 왔다. 특히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잇따른 케이블TV 사업자 선정, 지역 민방 허가 등 일련의 방송정책은, 다원화한 문화를 수용하기 위한 새 매체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합의보다는, 외국의 급격한 매체 발달에 대비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근거한 면이 크다.

위성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개발원 산하 ‘2000년 방송정책연구위원회’는 위성 방송을 도입하는 첫 번째 목적으로 ‘뉴미디어 운용 기술 확보와 연관 산업 활성화’를 꼽고 있다. 난시청 해소나 인접국으로부터의 전파 월경(spill-over)에 대한 대응, 남북통일에 대비한 민족 동질성 확보 등 방송문화적인 목적은 그 다음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 및 경제 일변도 논리가 위성 방송 정책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나아가 위성 방송을 도입하는 목적 자체를 훼손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디지털 방식을 수용한 것이다. 93년 7월 당시 체신부(현 정보통신부)는 위성 방송 방식을 현재 전세계가 채택하고 있는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디지털 방식으로 결정했다. “디지털 방송 기술이 국제적인 변화 추세에 부합하고, 아날로그로는 채널을 3개밖에 쓸 수 없으나 디지털 압축 기술로는 채널을 12개 확보해 제한된 국가 자원의 이용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나중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할 할 경우 국가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 당시 체신부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방식을 채택함에 따라 수신기 가격이 아날로그의 두배인 80만~백만원으로 급등해 가입자 확보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산간 지역이 대부분인 난시청 주민들의 경우 경제적 부담이 커 실질적으로 ‘난시청 해소’라는 목적은 의미가 퇴색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위성 방송 수신기를 보유한 40여만 가구도 무궁화 위성 방송을 보려면 비싼 디지털 수신기를 새로 사야 한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아직까지 아날로그 위성 방송을 실시하고 있고, 현재 한국에서 수신되는 외국 방송도 모두 아날로그 방송이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는 또 ‘통일 대비’라거나 ‘해외 동포에 대한 방송 서비스’ ‘외국의 전파 월경에 대한 적극 대응’이라는 목적까지도 무색케 한다. ‘적극 대응’이 우리의 전파를 국경 밖으로 보내는 것이라면, 그들이 일부러 디지털 수신기를 사지 않는 한 무궁화 위성 방송은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우리는 NTSC 디지털 방식인데 중국과 북한은 PAL 아날로그 방식이고, 일본은 NTSC 아날로그 방식이다).

디지털화와 관련해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추진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체신부는 방송 방식을 결정하기 얼마 전 무궁화 위성에 탑재될 방송중계기의 출력을 당초 60W에서 120W로 올렸다. 출력이 올라가면 위성체의 무게가 달라져 위성 값이 뛰게 된다. 그런데도 당시 체신부는 “수신 안테나의 크기를 줄일 수 있고, 방송 권역을 한반도 너머로 넓힐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출력 증강을 강행했다.

그러나 사실 이같은 결정은 아날로그 방식을 전제로 한 것이다. 위성 기술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인접국과 방송 방식이 달라 고출력으로 넓은 방송 권역을 확보한다는 것은 무의미해졌으며, 디지털 방식이면 낮은 출력으로도 충분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일관성 없는 정책이 위성체 값과 채널 임대료를 높여 사업자와 수신자 부담만 커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는 “업체들이 좀더 부담해 수신자들이 작은 안테나로 수신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단계적인 디지털화’를 주장했던 관련 업계는 아직 세계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 장비를 개발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3~4년이 넘게 위성 방송을 준비해온 KBS조차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형편이다. 현재 국내 전자업체들이 개발하는 송수신 장비 역시 상용화까지는 여러 단계에 걸쳐 신뢰성을 검증 받아야 한다. 수신기 개발 현황에 대해 각 업체 담당자들은 “다른 회사와 비슷한 수준이다. 정책적으로 민감한 문제라 밝히기 곤란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디지털화’가 엎질러진 물이라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정보통신부가 산업 논리에 근거해 머지 않아 추진하려는 ‘12채널 일시 허가 방침’은 허약한 국내 케이블TV 기반을 흔들어 위성과 케이블 방송의 공멸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채널 임대료 비싸 사업성 불투명

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연내에 12개 채널 사업자를 선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늦어도 7월 초까지는 허가 방침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정보통신부의 판단은 위성 방송의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우선 위성 방송 자체의 사업성이 불투명하다. 채널 임대료와 운영 비용은 엄청난 반면 수신자 확보는 어려울 것이다. 현재 위성 방송 참여를 준비하는 업체는 많다. 삼성·현대·동아·한보 그룹 등 대기업과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언론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위성 방송의 사업성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비관적이다. 다만 “위성이 정보통신사업과 직결돼 있어 신규 사업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역시 케이블TV와의 관계 설정이다. 위성 방송이 프로그램 공급자 노릇을 하게 되면 케이블TV 27개 채널이 아닌 다른 전문 분야를 할당해야 하는데 더 내줄 새로운 분야가 없다. 그렇다고 이미 내준 분야를 다시 허가한다면 기존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자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다. 반대로 위성 채널을 공중파와 케이블TV 프로그램의 중계 채널로 규정하면 위성 방송의 사업성은 물론이고 의미 자체가 없어진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위성방송 정책은 ‘고속도로를 늘리면 자동차산업이 육성된다’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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