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 장영희기자 (mtviesisapress.comkr)
  • 승인 200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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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용 부회장은 한국의 간판급 CEO다. 한국 최고의 기업이자 삼성그룹의 중핵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영 리더이다. 그는 또 ‘변화 리더’다. 삼성전자의 DNA(유전자)를 바꾸어 가고 있다. 위험 회피, 완벽주의, 철저
“속도와 창의력이 핵심 경쟁력”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 도래…삼성, 사상 최대 이익 낼 지금이 위기


IT(정보 기술) 산업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반도체와 컴퓨터, 통신 기술을 이용해 그 자체가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다른 산업의 체질을 바꾼다. 정보 기술을 다른 산업에 접목한 결과 생산성과 효율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일본에 크게 뒤져 절치부심했던 미국이 1990년대 세계 경제의 패권을 잡게 된 기폭제도 IT 혁명이었다.

한국 경제의 최대 현안이자 여러분의 주요 관심사가 일자리일 텐데, IT 발전은 산업의 고용 흡수력을 크게 낮추었다. 삼성전자 예를 보자. 1996년 1인당 매출액(생산성)이 2억7천만원이었지만, 지난해는 7억3천만원으로 2.7배 늘었다. 그러나 사람은 거의 늘지 않았다. 1997년 2만2천명이 3천9백만대를 생산했으나 2002년에는 2만5천명이 1억6천만대를 생산했다. 사람은 고작 3천명(13%) 늘었지만, 세트(제품) 생산량은 4배나 늘어난 것이다. IT 산업은 자동차·섬유·조선 같은 굴뚝 산업만큼 고용을 많이 창출할 수는 없다.

디지털 컨버전스(융·복합화)라는 말을 들어보았나. IT가 발전하기 전에는 음성·데이터·영상을 전달하는 매체가 다 달랐다. 전화·컴퓨터·텔레비전이라는 기기가 따로 있어야 했다. 아직은 각각의 아키텍처(구성 요소의 구조와 그것들의 상호 관계)나 운영 체계(OS)가 달라 어려움이 있지만, 곧 기기간 융합이 이루어질 것이다. 모든 통신망이 하나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컨버전스와, 지금은 방송·통신·신문·인터넷이 따로 놀지만 정보 서비스의 컨버전스도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어디에서든 누구와도 언제나 어느 기기로든 통신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산업간 컨버전스도 촉발하고 있다. 좋은 예가 금융산업과 방송·통신의 융·복합 현상이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상품 개발, 구매·조달, 생산 과정에서 주로 부가 가치가 창출되었지만, 지금은 핵심 기술과 마케팅 능력을 갖고 있느냐로 판가름 난다. 반도체 예를 들어보자. 워낙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다 보니 요즘은 트랜지스터와 다이오드, 저항 콘덴서 같은 부품과 소자 25억개(2.5 기가바이트)가 칩 하나에 들어간다(1기가 10억개). 1969년 (일본) 산요전기에 반도체 연수를 받으러 갔는데 지금이야 12인치(직경 30cm) 웨이퍼를 쓰지만 당시 주종은 2~3인치였다. IC(집적 회로)를 만드는 데 부품을 20개 심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20억개를 꽂을 수 있다. 30여 년 동안 20개가 20억개가 되었으니 집적도가 1억배나 증가했다. IT가 발전하지 않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이런 초정밀 설계를 해야 한다면 천재급 인력 수백 명이 100년 달라붙어도 불가능하다. 칩 하나에 거의 모든 부품과 소자를 넣은 ‘시스템온칩(SOC)’ 개발은 획기적인 일이다.

정보 기술이 일으킨 혁명적 변화는 기업의 부침을 가져왔다. 미국을 대표하는 회사인 GE와 IBM도 패러다임의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대실패를 맛보았다. 잭 웰치와 루 거스너가 가서 사업 구조를 뜯어고치면서 위기를 벗어났고 이제는 더 좋은 회사가 되었다. 반면 과거 성공에 도취해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포드는 2류로 전락했고, GE에 필적했던 웨스팅하우스나 재봉틀 회사 싱거는 공중 분해되었다. 포드는 1908년에서 1927년까지 19년 동안 T카 1천5백만대를 생산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GM에 1등 자리를 빼앗겼다. T카만 고집해 다양한 모델을 원하는 고객의 욕구를 외면한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시대 변화에 잘 대응하는 것이 얼마난 중요한 일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도 비슷하다. 별볼일 없는 소국이던 핀란드와 아일랜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붐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하고 IT산업을 육성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지식 강국으로 떠올랐다. 지도자가 미래 변화를 읽고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도 사회도 기업도 운명이 달라진다.
여러분은 미래 성장 엔진(차세대 성장 동력)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거다. 이것으로 대한민국이 10년 뒤 선진국 된다고 하는데, 이를 믿나? 10년 동안 4조원 투자한다는데, 한 해 4천억원꼴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엄청난 국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연간 연구 개발 투자에 4조원을 쓰지만, 세계 IT 기업들도 한 해 2조~4조 원씩 투자한다. 한국과 선진국의 투자 규모는 포니 엔진과 벤츠 엔진에 비유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얼마나 고용을 창출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산업화라는 아날로그 시대는 해보고 또 해보는 축적과 시행 착오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했지만 디지털 시대의 문법은 다르다. 우수한 머리와 창의력이 핵심 경쟁력이며 속도가 중요하다. 일본 업체들이 삼성에 왜 졌느냐? 속도에서 뒤졌기 때문이다. 삼성은 디지털을 할 수 있는 젊고 우수한 인재들을 집중 확보해 기술 개발을 해왔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30%까지 올라가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그 제품이 아날로그였다면 절대 불가능했다. 2등도 못했을 것이다. 디지털이기 때문에 1등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가 5~10년 뒤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는 이가 많은데 대답을 하지 못한다. 누구도 모를 것이다. 변화의 폭과 속도가 너무 넓고 빨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 어떤 변화가 닥쳐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면 살아 남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미래 씨앗은 기술이고, 기술 씨앗은 사람이다’.

시간은 곧 돈이다. 위기 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지구상에 살아 남은 사람은 강한 자가 아니라 환경에 잘 적응한 자라고 갈파했는데, 정말 맞는 말 같다. 잘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겠지만, 지금이 가장 위기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일본 업체들에 앞섰다고 하지만 더 개발해야 할 핵심 기술이 아직도 많다. 방심하거나 자만하면 절대 안된다. 타성과 고정관념, 형식주의, 이기주의, 권위주의를 타파하라고 말한다. 이런 것이 기업 조직에 있으면 환경 변화에 제때 적응할 수 없다. 노대통령 강의 들은 사람 있나. 그분의 권위주의 타파가 좋아 보인다.

여러분이 꼭 기억할 것은, 사회 발전의 가장 기본은 경제 발전이고, 그것이 되려면 산업과 기업이 발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역사 발전의 레버리지(지렛대)가 과학 기술이라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다. 더욱 정진해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되어 달라. 영어는 필수 도구다. 여러분 세대는 특히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금세 도태된다. 나 같은 비전문가·사이비가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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