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곱창탕'
  • 이윤기(소설가) ()
  • 승인 200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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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낚시를 좋아한다. 객관적인 평가에 따르면 내 솜씨는 형편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주관적인 평가에 따르면 성적은 굉장히 괜찮다. 아내가 산후 조리를 하러 친정 내려가 있을 동안 경상북도 청도의 한 저수지에서 67cm짜리 가물치를 올려 고아 먹게 했을 정도다.

해외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다. 1997년 늦가을, 뉴욕에서 남쪽으로 2시간쯤 떨어진 벨에어에서 낚싯배를 타고 대서양으로 나갔다. 모두 합해서 24명이었다.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승무원은 승선료에다 2 달러씩 얹어 받았다. 24명이 2 달러씩 내니까 합하면 48 달러다. 이 돈은 대어상(大魚償) 수상자 차지다.

게를 미끼로 돌돔을 낚았다. 묵근한 느낌이 들어서 줄을 감았는데 돌돔이 어찌나 큰지 들어올릴 수가 없었다. 승무원이 갈고리로 찍어 올려주면서 유력한 수상 후보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10kg 가량 나갔다. 배가 벨에어 항구로 들어가자 승무원이 내가 잡은 돌돔을, 접시 대신 갈고리가 양 옆에 둘 달린 천평칭(天平秤)의 한쪽 갈고리에 걸었다. 천평칭의 줏대에 걸려 있던 가로장이 돌돔 쪽으로 수직이 되게 기울었다.

의기양양해진 나는 한다 하는 미국 낚시꾼들을 향해 소리쳤다. 나를 이길 장사 있으면 나와 봐! 나는 박수 갈채를 받으면서 48 달러 상금을 수령했다. 48 달러 중에는, 내 돈 2 달러는 물론 미국 사는 처남과 민음사 전 주간(主幹) 이영준(하버드 대학 동아시아학과 박사 과정)의 돈도 포함되어 있었다. 새벽에 출조하느라 종일 주린 배를 그 돈으로 채우면서 꼬소롬해 했다.
나는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낚시보다는 매운탕 끓이기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낚시 스케줄이 잡히면 나는 부드러운 배추를 사다 말린다. 전라도가 ‘실가리’, 경상도가 ‘시래기’라고 부르는 우거지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말려서 삶지 않은 우거지는 미끄러워서 맛이 나지 않는다. 조황이 시원치 않을 때를 대비해서 소곱창을 사다 얼려놓는다. 나만의 비법인데, 된장과 소곱창이 어우러지면 붕어 서너 마리만 넣고 끓여도 여남은 마리 맛을 낸다. 고춧가루는 쓰지 않는다. 고추장은 필수다. 추어탕의 별명이 ‘고추장 도둑’이다. 우거지는, 고추장·된장·마늘·파·후추를 넣고 팍팍 주물러 양념한 다음, 풀어지지 못하게 똘똘 뭉쳐 물고기 사이에 박아두고 끓인다. 나의 매운탕 끓이기는 번번이 대성공이었다.

야외 취사가 가능하던 시절, 편집 디자이너 정병규, 항공대 교수 윤석달, 고려대 교수 이남호와 함께 충주호 갔던 일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낚시 장비 대신 취사 장비와 말린 배추, 얼린 곱창을 비롯해 매운탕 끓일 재료를 한 배낭 짊어지고 갔다. 조황이 신통치 않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조사들이 물고기 잡아야 하는 낚시터를 한국 문화 각종 문제 세미나 장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몇 마리 안 되는 붕어로 매운탕을 끓여내자니 곱창으로 암수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로서는 대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윤과 이, 두 교수는 곱창탕을 먹고도, 아직까지도 그 때 먹은 매운탕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제대로 된 매운탕을 기어이 얻어 먹고야 말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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