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민주주의 파괴 용납할 수 없다”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8.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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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선 정치가 제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어려운 국가적 결정도 결국은 입법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현정권은 국가를 이끌어가는 원칙과 정도를 철저히 지켜야 합니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만났다. 거리 투쟁에 나선 이총재의 표정은 의외로 밝아 보였다. 연일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는 이총재는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권을 민주주의 파괴자라고 규정했다.

전당대회를 치른 날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하셨습니다. 당시 야당 총재로서 국난 극복을 위해 정말로 김대중 정권에 협력할 의사가 있었던 겁니까?

물론이죠. 여야는 싸움만 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정상적인 관계는 여야가 국정 운영에 협력하는 것이므로, 대화와 교섭의 당사자로서 (야당의) 위치와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협력할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 그러한 생각이 변한 겁니까?

아니에요. 그러한 생각은 항상 갖고 있습니다. 다만 이쪽을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아니라, 파괴와 탄압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정국이 꼬이고 있는 것이지….

한나라당이 분석한 대로 현재의 사정이 장기 집권 시나리오의 일환이라고 판단하신다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실 겁니까?

두고 봐야죠. 지금 이른바 민주 대연합이 우리가 단순히 추측하는 것이 아니고, 그쪽의 두뇌 집단에서 나오는 얘기입니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어떻게 대응한다 이런 문제는, (저쪽의 목표가) 실제 어떤 모습인지 드러난 뒤에나 말씀드릴 수 있겠죠.

그렇다면 현재 총재님이 할 수 있는 대응이라는 것이 어떤 게 있습니까?

그야말로 도를 벗어난 야당 파괴와 야당 탄압을 즉각 중단하도록 촉구하고, 그렇게 해서 여야 관계를 정상으로 돌리고, 여야를 경쟁시켜 정상적 국회 운영으로 유도해야죠.

그러면 사정이 계속되는 한 일각에서 관측하는 대로 ‘외통수’로 가는 겁니까?

지금과 같은 편파 사정이나 정치 보복 사정을 계속한다면 우리로서는 다른 도리가 없죠.

사실 편파 사정으로 비치는 측면이 있지만, 여권에서는 ‘두고 봐라. 앞으로 정치권 사정을 지켜보면 편파 사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겠다는 뜻이죠.

말만 듣고 그러지 말고, 그런 일이 실제로 생기는지 두고 봅시다. 설사 여권의 고위 인사가 사정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그게 단순히 구색 맞추기 정도에서 끝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의총에서 ‘생명을 걸고’ 등 결연한 용어를 구사하면서 현정권에 대해 강경 투쟁 입장을 천명하셨습니다. 만약 편파로 해석되는 사정을 지속한다면, 이기택씨처럼 단식 투쟁도 불사하는 겁니까?

우리가 지금 저항하는 게 단순히 무슨 정치적인 실험을 한다거나 전시 효과를 노리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투쟁은 사정만을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지금 야당 의원을 빼가고 정치 보복 사정을 하는 것은, 우리가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짓밟는 행위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그 어떤 것을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입니다.

내각제 개헌 검토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셨는데, 이 기회에 내각제에 대한 총재님의 견해를 명확히 밝혀 주시죠.

그 문제는 이런 거에요.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너무도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고, 여야의 균형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대통령의 힘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제라는 것이 이토록 권한의 집중과 남용을 실제로 하고 있다면 정말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런 뜻에서 한 말입니다. 내각제를 검토한다는 말은 아니고, 대통령제 운용에 대해서는 정말 심각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걱정을 얘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각제 검토 발언을 하셨다는 언론 보도는 와전된 것입니까?

그렇게까지는 안 나갔지요. 제가 누차 강조해 왔지만 대통령제든 내각제든 근본적인 선택의 문제는 국민의 이익과 필요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어느 제도건 만고불변 제도는 없어요. 특히 권력 구조 문제는 신중해야죠. 저는 단순히 정권을 잡겠다 이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는 반대합니다. 이러한 입장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총재님의 견해 여부를 떠나, 현정권이 내각제 개헌을 시도하리라 보십니까?

현정권이 공동 정권인데, 한쪽은 내각제를 추진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영 찜찜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정권의 두 축이 앞으로 내각제로 개헌을 할지 안할지는 하나님도 알기 어렵지요, 허허.

정국이 정치권 사정의 급류에 휘말리다 보니 당 개혁 시기를 놓쳤습니다만, 앞으로 한나라당을 어떤 정당으로 가꾸시려고 하는지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십시오.

원래는 9월21일에 전국위원회를 열어 당헌을 개정하고, 거기에 따라 개혁의 골격을 갖추려고 했었죠. 그러나 총재 경선을 치른 날부터 우리 당이 비상 체제로 돌입했지 않습니까. 이런 와중에 정상적인 당 개혁과 전국위원회 소집은 보류할 수밖에 없어요. 비상 시기가 지나면, 본래 계획대로 당 개혁을 해가야죠.

본래의 계획을 말씀해 달라는 겁니다.

확정된 게 아니니까, 아직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 당의 미래에 대해 여러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지도 체제 문제는 어쩌실 겁니까?

그 문제도 미정입니다.

현정국이 ‘한가한’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일본이 경기 부양을 안하면 아시아에 제2 환란이 올지도 모른다는 IMF의‘협박성’ 경고가 나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지 야당 총재로서 견해를 밝혀 주시죠.

우선 정치가 제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어려운 국가적 결정도 결국은 입법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때문에 정치가 제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죠.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 정권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원칙과 정도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구조 조정을 예로 들면, 가장 중요한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키지 못했어요. 지금 이 나라의 명운은 경제 구조 조정이 계획대로 잘 되느냐에 달려 있는데, 이 문제만큼은 국민의 신뢰와 협조 없이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 자체의 개혁도 제대로 안됐고, 금융 개혁과 기업 구조 조정에서도 공정성과 투명성이 결여됐습니다. 난국을 벗어나는 데 필요한 것은 국민적 힘의 결집이거든요. 대통령과 그 주변의 몇 안되는 ‘한줌의 권력’만으로는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없어요. 국민 의지가 결집되어야 합니다. 김대통령이 우선 우리 당이 규탄하고 있는 야당 파괴를 포함한 모든 일들을 중단해야죠. 얼마 되지도 않는 국회 안에서 야당의 협력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협력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들은 ‘정치인 이회창’에 대해 무엇을 기대해야 되는 겁니까?

3김 시대의 특징은 근대화·산업화 시대에서 민주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민주화가 한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고,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대표하는 것은 틀림없어요. 그러나 이제 다음 시대의 지도자, 3김 시대를 청산하거나 이어가는 다음 세대의 지도자는 그러한 지난 시대의 상징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저는 그 상징으로 ‘선진화’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 구조와 사고, 관행, 제도 등 모든 것을 개혁하는 겁니다. 3김 시대의 연고주의와 정경 유착, 가부장적 통제 체제 같은 것을 벗어던지는 겁니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이고, 지역주의 패거리 정치와 같은 고정 관념을 털어 버리는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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