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언론에 미운털 박힌 까닭
  • 김 당 기자·卞昌燮 편집위원(워싱턴) ()
  • 승인 1998.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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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식 브리핑 제도 도입이 화근…비서실 출입 금지하자 ‘분풀이 보도’로 맹공…일부 언론사의 ‘감정’도 개입한 듯
‘청와대 비서실은 소리 없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 비서실은 내부 갈등설에 각종 잡음과 업무 중복 그리고 일부 비서관의 무능설 등이 무성하게 제기되자 김대중 대통령이 최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로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4월18일 한 일간지가 ‘갈등…향응說…소리 나는 청와대 비서실’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의 첫 대목이다. 요컨대 이 기사의 논지는 ‘청와대 비서실은 소리 없이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인데 최근 ‘내부 갈등설’과 ‘무능설’ 등이 ‘무성하게 제기되자’ ‘김대통령이 대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사를 읽는 일반 독자들은 청와대 비서실에 문제가 많은 것처럼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대목을 꼼꼼히 따져 읽으면, 기사의 기본 요건인 이른바 최소한의 사실조차 담보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사에서 내세운 ‘소리 나는 청와대 비서실’의 근거가 ‘내부 갈등설’ ‘무능설’ ‘대로했다는 후문’ 등 죄다 확인되지 않은 설(說)과 전문(傳聞)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등설과 무능설을 무성하게 제기한 주체는 다름 아닌 청와대 비서실과 길항(拮抗) 관계에 있는 청와대출입기자단이다. 기자들이 스스로 각종 설을 무성하게 제기해 놓고, 소리 없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청와대 비서실에 소리가 크다고 보도한 셈이다.

그렇다면 굳이 언론들이, 정확하게 말하면 이른바 청와대출입기자단 소속 일간지 기자들이 확인되지 않은 설과 후문(後聞)을 동원하면서까지 청와대 비서실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4월1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 50일째를 ‘기념’해 나온 이른바 ‘청와대 중앙 기자단 일동’ 명의의 성명서에서 찾을 수 있다(신문사 소재지가 서울인 일간지 기자들은 지방 일간지와 구별해 ‘중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기자단은 이 날 성명에서 ‘청와대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일방적으로 출입기자들의 청와대 출입을 봉쇄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청와대출입기자단은 현 사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언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다각적인 조처를 취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앞서의 ‘소리 나는 청와대 비서실’을 비롯해 ‘청와대 언론 정책 삐그덕’ ‘일처리 미숙, 잡음 많은 정무수석실’ ‘내각 위에 군림하는 공보수석’ ‘청와대 비서실 혼선과 잡음 빚어’ 같은 제목을 단 기사는 성명 발표 이후 기자들이 ‘다각적인 조처’의 하나로 전개한 ‘표적 보도’인 셈이다. ‘미국 백악관식 브리핑 한다더니…청와대 비서실 2월부터 기자 엄금, 뭘 숨길 게 있는지 전례 없던 일’ 같은 제목은 차라리 솔직하다. 비서실 출입 금지 및 브리핑제 도입 건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같은 보도는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대의 명분을 업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부 언론의 경우, 언론으로서의 균형을 잃고 감정적으로 대응해 국정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한 신문사가 발행하는 주간지의 최근호 표지에는 ‘DJ는 독주…비서실은 암투’라는 제목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 주간지의 기사에서도 인정했듯이 청와대 비서실의 문제점은 오히려 암투와는 전혀 거리가 먼 ‘무기력증’이다. 이는 과거 정권에서처럼 ‘튀는 사람’도 없지만 힘을 쓰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신문은 언론 사주의 사감(私感) 때문에 특정인 ‘죽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이 신문은 총리임명동의안 처리와 4·2 재·보궐 선거 예측이 빗나간 점을 들어 정무수석실의 정국 예보가 주먹구구식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도 전제했듯이 정무수석실은 ‘무기명 비밀 투표가 이루어질 경우’ 임명 동의안 통과를 낙관한 것이지 무기명 비밀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통과를 낙관한 것은 아니었다. 또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정무수석실은 네 곳 전패를 예측했다. 다만 문경-예천의 경우 오차 한계 범위에서 당선이 가능하나 소지역 대결로 가면 어렵다고 보고했다. 정무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사실이 그렇다 해도 어떤 정무수석이 선거를 앞두고 네 곳 다 떨어진다고 얘기하고 다닐 수 있느냐”라고 항변했다.

‘호남 편중’ 비판은 왜곡·과장 보도

이 관계자는 또 이 신문이 지적한 ‘대표적인 덜컥수’(조각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조직법을 발효시킨 것)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그것은 오히려 한나라당의 비상식적인 행태(부작위로 인한 국정 공백)에 대한 ‘압박수’였다고 반박했다. 또 이 신문은 영수회담을 통한 한나라당과의 ‘담판’을 추진하다가 물러선 것을 두고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와 프로그램을 입력한’ 근거라고 주장했지만, 총재단이 결정한 것을 초선 의원들이 뒤엎은 정당의 ‘준비 안된’ 총재와 영수회담을 하는 것이 잘된 프로그램을 입력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언론에서 향응설이니 권력 탐닉이니 하는 표현을 썼지만, 말 그대로 증권가 루머집에 나온 것을 가지고 기사화했을 뿐 사실 보도와는 거리가 먼 ‘표적 보도’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일처리 미숙, 잡음 많은 정무수석실’ 기사에서 ‘실제와는 다르게 왜곡되거나 크게 부풀려진 지역 편중 인사를 둘러싼 비판 여론에 대한 대처가 미흡해 상황을 악화시켰다’면서 호남 편중 인사와 관련한 비판 여론의 책임을 정무수석실에 전가했으나, 이 또한 따지고 보면 ‘사돈네 남말하기’이다.

‘호남의 전성시대:20대 요직 지역 편중 과거보다 훨씬 심각’이라는 제목의 커버 스토리(3월23일자)로 ‘호남 편중 인사’를 실제보다 훨씬 왜곡되게 부풀려서 비판 여론을 전파한 것도 이 신문사가 발행한 주간지였다. 이 기사는 아무런 근거나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안기부 제1·2 차장과 기조실장(1급) 그리고 법무비서관(1급)까지를 20대 요직에 넣고 무려 65%가 호남 출신이라고 주장했지만 다른 장·차관이나 수석들로 멤버를 교체할 경우 그 비율이 20% 선까지 떨어질 수 있고, 실제로 장·차관급 인사 중 호남 출신 비율은 20%(영남은 28%)이다.
‘권력 암투에 멍드는 비서실’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조차 실소를 금치 못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청와대 비서실이 각료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데 이의를 다는 기자가 거의 없다. 오히려 기구 축소로 인한 과중한 업무와 무기력증이 거론되고 있을 뿐이다. 군림하지 않고 힘이 없는데 갈등이 있을 리 없다. 다음은 한 청와대 출입기자의 말이다.

“요즘 언론이 갈등설을 보도하고 있지만 우선 수석들 중에 튀는 스타일이 없다. 다시 말해 YS 정부의 이원종 정무수석 같은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ㄱ 수석은 자정을 넘겨 퇴근하기가 일쑤이다. 일부 업무를 또 다른 ㄱ 수석이 가져가도 무반응이다. 일 욕심 많은 비서관들이 조정을 건의해도 ‘같은 비서인데 누가 하든 무슨 문제냐’며 개의치 않는다. ㅇ 수석도 그렇고, 수석 6명이 모두 조용히 일만 하는 스타일이다. 비서관들도 마찬가지이다. ㄱ 부속실장은 사람들을 만나도 언제나 공개된 장소에서 여럿이 만난다. ㅂ 검사는 친구나 친지가 용돈을 줘도 안받는다. 다만 ㅈ 비서관이 비난받을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당에 있을 때 일부 언론과 싸운 것이 화근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도 이런 식의 보도(표적 보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

대통령 비서실 100% 개방된 나라 없어

또 다른 출입기자도 일부 언론의 분풀이식 보도나 표적 보도에는 문제가 있지만, 대명제는 청와대 비서실을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분을 갖는 기자들로서는 취재 환경이 전보다 더 악화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청와대처럼 출입 기자들한테 또는 출입기자단에게만 대통령부가 100% 개방된 나라는 전세계에서 그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새 정부가 채택한 청와대 출입기자 제도 개선안이 이른바 백악관식 브리핑 제도이다.

청와대기자단에 가입한 언론사 기자에게만 출입증을 주는 청와대와 달리 백악관의 경우 워싱턴에 거주하는 합법적인 언론기관에 종사하는 언론인으로서 의회 출입증을 가진 자에 대해서는 소정의 보안 심사를 거쳐 출입증을 발급한다. 즉 국내외 기자 수천명이 등록된 NPC(내셔널 프레스 클럽)에 가입한 언론사 기자는 누구나 출입증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출입증을 소지했다고 상시적으로 백악관을 드나들며 취재원을 만날 수는 없다. 출입증은 어디까지나 백악관의 브리핑이나 주요 회견에 참석할 수 있는 허가증에 지나지 않으며, 백악관의 취재원이나 그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대한 접근은 원칙적으로 사전 약속을 하거나 전화를 통해 취재가 가능하다.
물론 미국은 한국처럼 수석비서관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청와대처럼 별도의 비서실 건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법률·공보·정치·안보 등 현안 분야 별로 대통령 자문에 응하는 고위 자문관이 있으며, 이들의 사무실은 백악관내 여러 별관에 분산되어 있다. 다만 안보보좌관실만 대통령 집무실(Oval Office)이 있는 본관 건물에 있다. 물론 각 건물마다 경호원이 배치되어 있으며, 취재를 위한 방문에는 관련 자문관과의 사전 약속이 필요하다.

청와대측이 비서실 출입을 제한하고 브리핑제를 시행한 것도 이같은 백악관의 취재 룰을 원용한 것이다. 백악관의 경우 대통령에 관한 모든 사항은 기본적으로 대변인의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을 통해 언론에 전달된다. 기자실은 브리핑실 옆에 붙어 있는데, 공간이 제한되어 전화·책상은 물론 컴퓨터까지 공유하는 경우가 잦다. 따라서 아래 〈표〉에서 보듯 청와대의 취재 환경이 백악관보다 열악하다고 볼 근거는 별로 없다. 결국 한국식 취재 관행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처음 도입한 브리핑제가 기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청와대 출입기자제 개선안은 정권 인계 인수 과정에서 전 정권이 권고한 사안이기도 하다. YS 정부에서 공보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세계 어디에도 청와대처럼 일국의 대통령부가 기자들한테 노출된 곳은 없다. 특히 요즘은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눈치 빠른 기자들은 모니터만 슬쩍 봐도 무슨 작업을 하는지 금방 눈치 챈다. 문제는 대통령 결재가 나지 않은 입안 단계의 정책이 기사화되다 보니 오보가 나오고 정책이 실종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출입기자단 제도는 없애야 할 관행

박세일 전 정책기획수석은 최근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YS 개혁은 세력을 확보하지 못해 실패했다”라면서, 자신이 기획했던 재벌 개혁 구상이 실종된 이유 중의 하나를 언론 탓으로 지적했다. 박수석은 현재 국제통화기금의 힘을 빌려 추진하고 있는 재벌 개혁 프로그램을 당시 다 완성했으나 95년 중반 그중 일부가 새어 나가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뒤로 재계의 로비가 강력해졌고, 당시 어떤 신문은 ‘정신 나갔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박수석을 공격했다. 결국 IMF 위기가 재벌들의 방만한 경영 탓이라면, 언론 또한 그 위기를 불러들인 책임이 큰 셈이다.

사실 출입처 중심의 한국식 출입기자단 제도는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폐쇄적이다. 이런 취재 체계의 개선 방안을 다룬 언론학계의 논문만도 그동안 수백 편이 나왔다. 몇몇 언론사가 이런 전근대적인 관행을 벗어나려고 시도한 것 또한 사실이다. YS 정부에서도 경제 부처가 집중되어 있는 과천 청사에 ‘합동 프레스룸’을 설치해 부처 별로 분산된 기자실 운영에 따른 예산을 절감하고 업무 효율성을 꾀했으나 ‘통제적 발상’이라는 언론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에 대해 기자 출신인 안병찬 교수(경원대·신방과)는 “출입처 제도 및 취재 체계 개혁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다만 실천의 대상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청와대는 고립 무원이다. 취재 환경의 변화를 기피하는 언론의 ‘밥그릇 지키기’가 청와대의 발목을 잡아 결국 YS 정부에서처럼 ‘개혁 실종’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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