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섬에서 맛보는 ‘온통 푸른 휴식’
  • 글·사진/이용한 (시인·두메 여행가) ()
  • 승인 2004.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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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가볼 만한 ‘외진 섬’ 6곳/인적 드물고 인정은 풍성
뜻 보면 여름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은 떨고 있는 듯, 혹은 졸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모든 느낌이 바뀐다. 푸른 생명과 비경, 다양한 삶이 뒤엉켜 생동하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 촘촘히 밀려오는 일상의 파도에서 벗어나, 자연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오붓이 자신을 관조할 수 있는 섬들을 소개한다.

가거도 ‘가히 머물러 살 만한’ 섬

가거도는 멀리 있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45km 떨어져 있다. 배를 타면 4시간이 넘게 걸린다. 게다가 배도 이틀에 한 번 짝수 날에만 간다. 한때 소흑산도라고 불린 적이 있었지만, 이는 일제가 붙인 잘못된 명칭이다. 본래 가거도(可居島)는 섬이 아름답고 인심이 좋아서 ‘가히 머물러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이다. 가거도행 여객선은 비금도, 도초도, 흑산도, 홍도, 하태도를 경유해 가거도항에 닿는다.

가거도에는 마을이 3개 있다. 남쪽에 대리, 서쪽에 목리, 북쪽에 대풍리. 주민 대부분은 대리에 모여 산다. 대리에는 학교와 우체국 등 관공서와 여관, 식당이 몰려 있다. 대리 동쪽 산기슭에는 멍씨할멈 당집이 있어 산신과 용신을 비롯해 지상을 떠도는 1백30여 위(位)를 모셔 놓았다.

가거도는 섬 전체가 후박나무로 뒤덮여 있다. 우리 나라 후박나무 껍질의 70%를 이 섬에서 생산한다. 요즘 가거도에 가면 후박나무 껍질을 벗기고 말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가거도는 다른 섬에 비해 어업이 성하지 않다. 대신 후박나무 껍질 생산이 거의 절대적인 돈벌이다. “앞에가 논이 있소. 뒤에가 밭이 있소. 우리가 이 바다 끝에서 우리 나라 섬 지킴시롱 살고 있어도 후박피 안 하면 못 먹고 사요. 근디 중국의 닭 울음 소리가 들린다꼬 하는 여기가 이제는 중국산 후박피(皮) 땜시 못살 판이요.” 대리에서 만난 박성금 할머니(78)의 말이다.

가거도 비경의 절정은 목리에 있는 섬등반도다. 목리는 우리 나라 최서남단 섬 가거도에서도 최서남단에 위치한 마을이다. 현재 이곳에는 열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섬등반도는 마치 거북이가 길게 목을 뺀 형국으로 언덕 전체가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이다. 이곳의 일몰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늦은 일몰인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일몰이다.
만재도(晩才島)는 목포에서 105km 떨어진 절해고도이다. 배를 타고 4시간40분이나 가야 닿는다. 배를 타는 시간으로 보면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 섬이다. 만재도는 ‘뭍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으로 ‘먼데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현재 40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대부분 어부 아니면 해녀로 생업을 잇고 있다.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사는 20여 명의 해녀들 역시 돌미역·해삼·전복·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한다.

만재도 선창은 몸집이 큰 선박을 수용할 수 없어 여객선이 도착하면 선창에서 종선이 나와 손님을 태워 나른다. 하나뿐인 마을에 들어서면 돌담이 구불구불 산비탈을 따라 띠처럼 이어져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김화예 할머니(78) 댁은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집이다. 그 집 마루에는 발짱(김발), 딱가리(생선 말리는 채반), 바구리(해산물 바구니), 옹딩이(작은 바구니)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할머니는 조도면 옥도가 고향이라고 말했다. “여서는 땅이서 해묵고 살게 없어라. 여 시집온께 여 아들은 일궈여덟만 디두 바다에 나가 물에 폭 들어갔다 쏙 나오고 그라드라고. 내야 갱변을 가드라도 히엄바를 못칭께루 발등에 물만 쟁기면 죽지라.”

만재도 마을 앞은 몽돌 밭이다. 파도가 들고날 때마다 차르르 차르르 몽돌 구르는 소리가 마을에까지 들린다. 몽돌 해변을 끼고 왼편에는 선창이 있고, 오른편에는 반도처럼 나앉은 해벽 봉우리가 길게 펼쳐져 있다. 선창에서 왼쪽으로 돌아 큰 산 밑에 이르면 누군가 조각해놓은 듯한, 수직으로 솟은 주상절리 해벽이 펼쳐진다. 또한 마을에서 마구산 자락을 넘어가 만나는 외마도와 내마도가 솟구친 움퉁개와 오동여 풍경도 비경이다.

하태도 <섬마을 선생님> 촬영지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약 125km 떨어진 섬. 최근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의 촬영지로 알려진 하태도는 태도(苔島)의 세 섬(상태·중태·하태) 가운데 가장 크다. ‘태도’는 섬과 바다가 한데 어울려 푸르게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갯바위에 돌김(석태)이 많아 ‘석태 나는 섬’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지형이 타래처럼 둥글게 틀어졌다고 하여 ‘태사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섬에는 현재 모두 5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거나 민박집을 운영한다. 하태도 역시 만재도처럼 여객선이 선착장에 닿을 수 없어 종선이 손님을 부린다. 배 위에서 바라보면 하태도는 커다란 말발굽처럼 보인다. 반도처럼 길게 뻗어 나온 산자락은 나무가 드물어, 마치 대관령 목장을 뚝 떼어다 놓은 듯 푸른 초원이다. 우묵하게 휘어져 들어간 지형에 장부래 해수욕장이 있고, 그 주변을 따라 돌담을 두른 집들이 올망졸망 앉아 있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하태분교(학생 5명)에는 요즘 새초롬한 달맞이꽃과 탐스런 수국이 한창이다.

하태도 마을은 웃말·고랑·장골·석멀이 합쳐 한 마을을 이룬다. 과거 하태도에는 웃말에만 100여 가구가 모여 살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웃말에서 만난 최일례 할머니(75)는 더운 날씨에 고생한다며 집에서 직접 담근 탁주를 내밀었다. 삶은 ‘배말’도 안주로 내왔다. 처음 먹어본 배말 맛은 쫄깃쫄깃하고 고소했으며, 해초 냄새가 물씬 났다.

하태도에는 스무 명이 넘는 해녀가 있다. 이들이 물질하는 몽여와 굴개 쪽은 물빛이 온통 옥 빛깔이다. 천혜의 비경인 데다 가마우지가 많아서 녀석들의 물질도 덤으로 볼 수 있다.

■가거도·하태도·만재도에 가려면: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짝수 날 08:00시에 운항하는 배를 타야 한다. 요금은 가거도 44,150원(4시간~4시간 20분), 하태도 33,850원(3시간30분~3시간40분), 만재도 40,000원(4시간40분~5시간)이다. 문의:목포 여객선터미널 061-243-0116, 244-9915, 숙박: 가거도 남해장 061-246-5446, 하태도 김관수 061-246-2437, 만재도 최용석 061-275-6962.
목포에서 남쪽으로 94km,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45km 떨어진 섬. 한반도와 제주 본섬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 추자도는 목포항에서 2시간30분, 제주항에서 1시간 정도 걸린다. 가래나무가 많아 추자도(楸子島)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섬에는 상추자·하추자·횡간도·추포도 등의 유인도가 있고, 38개의 무인도가 딸려 있다.

추자도는 행정구역은 북제주군에 속하지만, 생활권이나 언어는 목포권이나 다름없다. 추자도의 중심은 추자항이 있는 대서리. 여기에는 아직도 풍어제를 지내는 최영 장군 사당이 남아 있다. 상추자 사람들은 음력 2월 보름날 영흥리 산신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나서 이곳 최영 장군 사당에서 장군제와 해신제를 지낸다.

상추자와 하추자는 추자대교로 연결되어 있어, 정기적으로 섬을 도는 버스가 운행한다. 상추자에서 추자교를 건너 묵리를 지나면 신양2리에 닿는데, 여기서는 맑은 날이면 푸랭이 섬 너머로 제주도 한라산이 코앞처럼 보인다. 이렇게 맑은 날이 1년에 며칠 안 되지만, 운 좋은 사람은 신양에서 한라산을 볼 수 있다.

신양1리 선창에서는 돌미역 작업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돌미역은 모두 이 마을 해녀들이 딴 것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신양리에만 모두 50여 명의 해녀가 있고, 묵리에 30여 명, 예초리에 30여 명, 대서리에 20여 명, 영흥리에 30여 명이 있다. 추자도 전체에 1백50명이 넘는 해녀가 있다는 얘기다.

신양2리 노을은 감동 그 자체다. 푸랭이와 밖미역섬과 하추자 본섬 사이로 해가 떨어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바닷가 석지머리에서 두 해녀가 아직도 물질을 하고 있다. 금빛으로 물든 바다에서 해녀가 자맥질을 하자 금빛 물살이 튀어올랐다.
횡간도는 추자도에서 뱃길로 10여 분 거리에 있다. 1주일에 네 번 행정선이 들어가지만, 한번 들어가서 머물려면 이틀을 기다려야 한다. 물론 예초리나 대서리에서 낚싯배를 빌려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8만~10만 원쯤은 족히 주어야 한다. 주민이라야 고작 10여 가구이고, 한 가구 빼고는 모두 노인들뿐이다. 횡간도 사람들은 이 섬을 ‘빗갱이’라고 부른다. 섬의 모습이 비껴서 길게 누운 모습인 데서 유래한 것이다. 횡간도(橫干島)는 바로 빗갱이를 한자로 옮겨놓은 셈이다.

섬은 작지만 이 곳에도 네댓 명의 해녀가 있고, 추자도처럼 돌미역을 주로 딴다. 해녀 박선애 할머니(67)도 톳을 베고 오는 길이었는데, 여행객을 보자마자 뜬금없이 밥을 먹고 가란다. 낚싯배가 선창에서 기다린다고 하자 그럼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며 부엌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외지인이 거의 찾지 않는 횡간도의 인심이고, 평생 물질을 해온 외로운 할머니의 인정이다.

■추자도·횡간도에 가려면: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간다. 목포항에서 매일 14:20분에 쾌속선이 운항하며, 요금은 31,200원이다. 제주항에서도 09:30분에 쾌속선(16,900원)이 출발한다. 진도에서도 06:30분에 배(12,000원)가 있으며, 완도에서는 08:00시에 배(12,000원)가 있다. 완도에서 떠나는 배는 하추자 신양리 선창으로 가는 배다. 횡간도까지는 1주일에 네 번 대서리에서 13:00시에 행정선이 출발하며, 요금은 무료다. 문의:상추자사업소 064-742-3788, 하추자 매표소 742-8365, 제주 726-9542, 행정선 742-8406, 추자면 742-8400

거문도 이 땅의 마지막 비경

우리 나라 최대의 동백섬으로 알려진 거문도는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약 115km 떨어져 있다. 뱃길로 1시간50분이 걸리는 먼 섬이다. 거문도의 해안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거문항에서 낚시꾼을 실어 나르는 어선을 얻어 타야 한다. 안노루섬, 오리섬, 보로봉, 신선암, 기와집 몰랑, 둥글섬을 비롯한 해안 절벽은 배를 타지 않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비경들이다.

그 중에서도 작은 바위섬인 안노루섬은 거문도에서도 아주 특별하다. 여기에 고등어를 부른다는 ‘고두리(고등어) 영감’을 모셔놓았는데, 해마다 이곳에서 풍어제를 올린다. 고두리 영감제는 현재 거문도 전체의 축제로 자리 잡았는데, 사람들은 이날 그 유명한 <거문도 뱃노래>를 부르며 매구굿놀이(풍물놀이)를 즐긴다.

거문도를 이야기할 때 거문도 등대를 빼놓을 수 없다. 동양 최대의 등대로 알려진 거문도 등대는 일제 때인 1906년 생겨났으며, 가장 큰 프리즘 렌즈를 자랑한다. 이 등대의 또 다른 매력은 한 장소(관백정)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않고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등대 주변에는 동백나무 밀림이 펼쳐져 있고, 동백 이슬을 먹고 산다는 동박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거문도는 고도·서도·동도 세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문리가 있는 고도가 중심지 노릇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근대 열강들과 뒤엉킨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군 묘지다. 이 묘지에는 1885년부터 1887년까지 2년 동안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점령했을 당시에 사망한 영국 수병 9명이 묻혀 있다.

■거문도에 가려면:여수에 가려면 호남고속도로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바꿔 탄 뒤, 순천 인터체인지로 빠져 나가 17번 국도를 타고 가면 된다. 여수항(061-663-0116)에서는 하루 네 번(07:10, 08:00, 14:20, 14:50) 배가 운항하며, 요금은 26200~28650원. 문의:거문도관광여행사 061-665-4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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