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교수의 자연다큐⑤] 원숭이들도 '문화' 만든다, 이파리 뜯기 풍속 등 다양
  •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 승인 200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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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떤 한 사람의 새로운 발견이나 기발한 고안이 사회 전체의 생활 양식을 변화시킨 사례들이 흔히 있다. 어느 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만 지키던 풍습이 다른 집단으로 전파되어 그곳의 풍습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해 전세계가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여 가는 느낌이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한 이후 변화한 우리의 삶을 보라. 며칠씩 걸리는 편지를 이용해야만 겨우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던 때가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사진설명 조상에게서 배운 '교양' : 일본 고시마 섬에서 '이모'라는 원숭이가 맨 처음 모래투성이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한 뒤, 그 원숭이 집단에서는 흙 묻은 음식을 씻어 먹는 풍습이 전해졌다. ⓒAFP연합

동물 세계에도 문화가 있고, 새롭게 형성된 문화 중 어떤 것들은 성공적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1953년 이웃 나라 일본 고시마 섬에 서식하는 짧은꼬리원숭이 집단에서 발생한 일이다. 어느 날 공원관리인이 원숭이들에게 주려고 고구마를 한 바구니 들고 가다가 실수로 모두 모래사장에 쏟았다. 원숭이들은 배가 고픈 나머지 제가끔 고구마를 하나씩 들고 먹기 시작했으나 입안 가득 씹히는 모래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 때 '이모'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살배기 소녀 원숭이가 그 모래투성이 고구마를 물가로 가져가 씻어 먹더라는 것이었다. 일본 영장류 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그 후 그 원숭이 집단에는 고구마는 물론 다른 음식도 모래가 묻으면 씻어 먹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이모는 또다시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번에는 공원 관리인이 모래 바닥에 쌀을 엎질렀는데 이모는 또 침착하게 엎질러진 쌀을 모래와 함께 한 움큼 떠서 물로 가져가 뿌렸다. 모래가 물 속으로 가라앉은 후 물위에 뜬 쌀을 손으로 모아 건져 먹더라는 것이다. 다른 원숭이들이 이모가 개발해낸 이 기발한 방법을 배워 그 후로 그 동네에 사는 원숭이들은 모두 쌀을 걸러 먹을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생활의 지혜는 어머니로부터 자식에게 전달되어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지고 있다. 한 '위대한' 선각자 덕분에 새로운 문화가 창출된 것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들에게는 언제부터인가 이른바 '이파리 뜯기' 풍습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로부터 이파리를 소리 내어 뜯어내는 이 행동은 무서운 속도로 침팬지 사회에 퍼져나갔다. 그런데 이 행동은 집단에 따라 서로 다른 기능을 갖게 되었다. 탄자니아의 마할리 침팬지들이 이 행동을 구애 행위의 일부로 발전시킨 데 비해, 기니의 보수 지방에 사는 침팬지들은 기분이 상하거나 불만에 가득 찼을 때 이러한 행동을 보인다. 똑같은 행동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상이한 용도로 쓰이는 예는 우리 인간 사회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나는 어렸을 때 타잔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항상 아름다운 새들이 지저귀고 온갖 기기묘묘한 동물들이 뛰노는 깊은 정글 속 커다란 나무 위에 꿈 같은 통나무집을 짓고 사는 그 '털없는 원숭이'가 나는 무척 부러웠다. 무더운 한낮이면 야자수 우거진 그늘 밑의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고, 출출해지면 길섶에 주렁주렁 열린 바나나를 따먹을 수 있는 그 곳이, 어린 나에게는 천국이 있다면 아마도 저런 곳이려니 싶었다.

미국 유학 시절인 1984년 여름 나는 꿈에도 그리던 타잔의 나라에 가게 되었다. 중미 코스타리카의 어느 정글에 도착한 이튿날 온갖 신기한 곤충들을 따라 혼자서 숲 속을 헤매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올려다보니 저만치 나뭇가지 위에 원숭이 한 무리가 앉아 날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흰 얼굴을 가진 꼬리말이원숭이 가족이 모여 앉아 뭐라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동물원의 철책 사이로만 보던 원숭이들을 실제로 숲 속에서 만났다는 흥분에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조이며 오랫동안 그들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얼마 후 그들도 말을 멈춘 채 자기들을 올려다보는 기이한 영장류를 조용히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상당히 오랫동안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는 동물행동학자로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지만, 어느 순간 문득 그들도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들을 올려다보며 무언가 생각하고 있듯이 그들의 눈망울도 나를 내려다보며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들의 눈동자가 그림처럼 뚜렷하게 떠오른다.


철책 안에 갇혀 있는 불쌍한 한국의 침팬지들


우리 인류와 가장 가까운 동물인 영장류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들의 서식지를 우리가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인류 역사의 비밀을 미처 우리에게 풀어 보이지도 못한 채 그들의 눈이 감기고 있다. 몇 년 전 제인 구돌 박사가 우리 나라를 방문했을 때 어느 동물원을 둘러보게 되었다. 우리도 이렇게 훌륭한 동물원을 가지고 있다고 으쓱대려 모신 것이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좁은 방안에 쭈그리고 앉아 벽만 쳐다보던 침팬지를 보았다. 그 날 저녁 나와 함께한 자리에서 구돌 박사는 내게 그 침팬지를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한국에 침팬지 동물원을 만들면 손수 침팬지 가족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일본의 영장류 학자들이 내게 역시 침팬지 가족을 데려오고 싶다고 전해 왔다. 시설만 갖추면 사육에 필요한 모든 기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침팬지 동물원을 만들고 싶다. 멸종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사촌을 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데 우리도 한몫을 할 수 있는 학문적인 기회도 얻을 것이다. 동물행동학을 천직으로 삼겠다며 나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 침팬지를 연구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런 고상한 이유가 아니라 순전히 경제적인 면만 보더라도 침팬지 동물원은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곧 우리나라에도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건전한 시설을 찾을 것이다. 침팬지 동물원은 침팬지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질도 높여줄 것이다.

네덜란드의 아른헴 동물원처럼 수로로 둘러싸인 섬을 만들고 그곳에 침팬지들을 풀어놓으면 된다. 그리곤 건너편 언덕에 전면이 둥그런 건물을 짓고 그곳에 망원경을 수백 개 설치하여 침팬지를 관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철책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뜰에서 뛰노는 침팬지들을 보러 몰려오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이미 훤히 보인다. 철책 안에 가두어 놓고 '저게 침팬지라는 동물이란다'라고만 해도 신기해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침팬지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 감동이 얼마나 클까 상상해 보라. 그야말로 이윤과 명분을 한꺼번에 낚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이 될 것이다. 정부 또는 현명한 투자자의 손길을 기다린다.

※ 최재천 자연 다큐는 이번 호로 끝이 납니다. 다음 호부터는 젊은 식물학자 차윤정씨의 '나무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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