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해 빚은〈꿈〉속의 언어
  • 노순동 기자 (soon@e-sisa.co.kr)
  • 승인 2001.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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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성동은 〈꿈〉을 통해 나이 오십이 되면 불교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온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평소 그는 〈만다라〉에 대해 "젊은 시절을 마감하는 잿빛 노트와 같은 것일 뿐 본격 구도 소설이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꿈〉은 수행승 능현과 여대생 정희남의 사랑을 축으로 삼고 있다. 능현은 남다른 눈빛의 여대생을 만난 뒤 번뇌에 휩싸이는데, 절을 떠난 그녀가 릴케의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에게〉를 부쳐오면서 능현의 화두가 그녀가 책을 부친 뜻을 묻는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


얼개는 승려와 여대생의 사랑이지만, 그들의 사랑은 예토(穢土)에서 정토(淨土)를 일구려는 구도 과정과 겹침으로써 구도 소설에 다가선다. 중반 이후 희남은 반야(般若)라는 이름으로 능현과 동반한다.


일반 독자에게 〈꿈〉은 소설로서의 극적 서사보다는, 말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일찍이 작가의 호흡은 매끄럽고 유장했으나 〈꿈〉의 언어는 절차탁마한 기색이 짙다. 풍광에 대한 묘사나 불법에 대한 능현의 강의는 염불과 판소리의 사설을 연상시키며 매끄럽게 흘러간다.


평소 "우리말이 주술성과 가락을 잃었다. 앙상한 뜻만 남았으니 모르스 부호와 다를 게 없다"라고 개탄했던 작가답게 말의 효험을 되살리려 애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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