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멋 대결, 컨페드컵에서 '킥오프'
  • 대구·수원 오윤현 기자/울산 박병출 부산주재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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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원·울산 월드컵 경기장,

첫 번째 동시 가동…설비·건축·경관 '개성 겨루기'


5월30일 오후 5시, 대구 월드컵 축구 경기장. 월드컵 개막일(2002년 5월31일)을 1년 앞두고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개막전에 쏟는 한국 축구 팬들의 관심은 남다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틈만 나면 세계 최강 프랑스 팀을 꺾겠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이 날, 눈썰미가 있는 축구 팬들은 또 다른 볼거리에 눈길을 보낼 것이다. 바로 웅장한 대구경기장의 모습. 언뜻언뜻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장면을 통해서도 우아한 지붕과 그라운드의 부드러운 곡선, 바둑판처럼 잘 다듬어진 잔디의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새로운 명물 : 대구 월드컵 축구장(위·왼쪽)의 잔디는 어린아이처럼 보호받는다(맨 위). 경기를 한번 치르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사흘은 무조건 쉬도록 되어 있다. 지하 워밍업실에는 20m 육상 트랙과 인공 잔디가 깔려 있다(위·오른쪽).




월드컵 축구장









































수원경기장 울산문수경기장 대구종합경기장
대지 면적 128,560평 275,974평 155,025평(1차 개발)
규모 지하 2층, 지상 4층 지하 2층, 지상 3층 지하 3층, 지상 3층
수용 인원 43,138석 43,512석 65,857석
설계자 박 승·김관중
+ 아이메릭 쥬블레나
이강우·심성보 강철희
시공 기간 1999.3∼2001.5 1998.12∼2001.4 1997.7∼2001.5
총공사비 3,417억원 1,514억원 2,946억원
위치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울산시 남구 옥동 대구시 수성구 내환동


대구 경기장, 세계인을 한 지붕 아래 포용


5월 말 현재, 문을 연 월드컵 축구장은 모두 세 곳이다. 대구 외에 울산문수경기장과 수원경기장이 지난 4·5월에 문을 열고, 컨페더레이션스컵 경기를 두세 차례씩 치른다(79쪽 표 참조). 덕분에 축구 팬들은 6월 들어 통쾌한 슛 장면과 함께 각 지방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지닌 멋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대구경기장의 가장 큰 볼거리는 방대한 규모이다. 수원·울산 경기장과 달리 육상 경기를 할 수 있는 종합경기장으로 지어져, 경기장 안에 들어서면 엄청난 공간에 압도당한다. 높이도 최대 57.8m나 되어 반쯤 열린 듯한 하얀색 지붕이 저 멀리 올려다보인다. 설계자 정철희씨에 따르면, 관중석의 74%를 뒤덮은 지붕은 초가 지붕과 지구를 형상화했다. 세계인을 한 지붕 아래 따뜻하게 포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라운드에 깔린 잔디도 보통 잔디가 아니다. 2년 넘게 애지중지 기른 것을 지난해 10월 이식했다. 품종은 추운 곳에서도 잘 자라는 '켄터키 블루그래스'(80%)와 '퍼레니얼라이 그래스'(20%). 이 잔디들은 3월 초에서 11월 말까지 푸르다(난지형인 토종 들잔디는 4월 말∼9월 말에만 푸르다). 어린아이 머릿결처럼 부드러운 이 잔디는 늘 길이 20mm를 유지한다. 너무 길면 공이 잘 구르지 않고, 너무 짧으면 공이 빨리 구른다. 경기 뒤에는 반드시 사흘을 쉬게 되는데 그래야 '상처'가 아문다.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지만, 모든 월드컵 축구장 지하에는 갖가지 시설이 들어서 있다. 대구경기장에도 선수 전용 탈의실·샤워실·마사지실이 붙어 있고, 감독 및 코치실·화장실·도핑실·워밍업실이 이웃해 있다.


경기장 밖에도 볼거리가 넘친다. 바로 옆에 편안해 보이는 대덕산이 경기장을 굽어보고 있고, 주변으로는 포도밭·과수원·감자밭 같은 전원이 한적하게 펼쳐져 있다. 경기장 옆 공원은 마치 조각 전시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정문 쪽에 서 있는 원형 기둥 7개도 시선을 붙잡는다. 만유 생성의 일곱 가지 요소(땅·물·불·바람…)를 금속성 소재로 표현했는데, 현대미가 물씬 풍긴다.


수원 경기장, 색채 그래픽의 마술 구현




수원경기장은 건축 전문가들이 구조·설비 면에서 서울 상암경기장과 함께 '우수하다'고 꼽는 경기장이다. "디자인은 제주 서귀포경기장만 못하지만, 좌석 배치나 음향 시설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라는 것이 2002월드컵조직위 김시형 건축전문위원의 말이다.


수원경기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겉모습이다. 관중의 65%(2만6천여명)가 비를 맞지 않도록 얹어놓은 지붕 2개가 막 날아오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날개를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전통 지붕을 본떴다. 수원경기장을 공동 설계한 건축가 김관중씨는 "가장 한국적인 건축 특징을 지닌 지붕에서 공포와 처마를 이미지화했다"라고 말했다. 수원경기장 건설사업관리단 이용우 실장(설계 담당)은 "지붕 소재로 쓰인 폴리카보네이트시트는 깨질 염려가 적고, 깨져도 조각 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소재다"라고 말했다.


수원경기장에서 또 하나 두드러지는 부분은 관중석이다. 멀리서 보면 관중이 없을 때도 마치 관중이 꽉 차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색채 그래픽의 마술 덕분이다. 4만3천여 석의 의자에 수원 성곽과 경기도 마크, 축구 선수가 헤딩하는 장면을 하늘색·오렌지색·파란색·빨간색 등 12색으로 수놓아,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관중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수원경기장 의자는 다른 경기장 의자에 비해 고급스럽다. 자동차 외장용 압축 소재를 써서 내구성이 좋고 격조 있게 보이는 것이다. 의자 크기는 국제축구연맹(FIFA) 요구에 따라 좌석 너비와 등받이 높이가 각각 45cm·30cm 나 된다. 이 의자들은 '시민 1의자 갖기 운동'을 통해, 시민들에게 '분양'될 예정이다. 현재 2만여 시민이 이 운동에 동참했다.


수원경기장 그라운드 주변에는 배수로가 패어 있고, 잔디 밑에는 배수 장치가 잘 갖추어져 있다. 건축사업본부 안경태 차장은 "갈비 모양으로 고랑을 판 뒤 콩자갈을 10cm 정도 넣고, 그 위에 왕모래 5cm와 모래와 유기물을 섞은 식재층 30cm를 덮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골프협회가 개발한 이 배수 구조는 하루 500mm 정도의 집중 호우가 쏟아져도 절대 물이 잔디 위로 차 오르지 않게 한다. 그라운드와 좌석 사이에는 훌리건의 난입을 방지하기 위해 깊이 3m 너비 2.5m짜리 호를 파놓았다. 3m는 사람이 뛰어내렸을 때 다치지 않으면서도 가장 얼떨떨한 충격을 받는 높이이다.


경기장 2층에 자리잡은 32개 '개별 관람실'(회원실)은 한국에 처음 선보이는 공간. 4백만 원을 내면 작은 사무실과 좌석 12개를 분양 받는다. 회원은 그 공간에서 업무를 볼 수도 있고, 친척이나 직장 동료 12명과 함께 모든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다(다른 축구장도 개설).


월드컵 축구장에서 또 하나 중요한 공간은 중앙통제실이다. 이곳에서는 조명·음향·전광판을 관리한다. 조명은 2000룩스로 경기장을 밝히게 된다. 책을 볼 때 필요한 빛의 밝기가 400∼600 룩스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밝기이다. 모든 경기장에는 자체 발전 시설이 있어, 정전이 되어도 1500룩스 이상의 조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음향 시설도 최첨단이다. 수원경기장은 국내 처음으로 응원 효과 확성 시스템을 설치해, 관중이 적더라도 사방에서 응원하는 듯한 효과를 낼 예정이다.


국내 월드컵 축구장 가운데 가장 먼저 개장한(4월28일) 울산문수경기장은 조형성과 기능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이한 점은 경기장 내부에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이 단 한 개도 없다는 것이다. 경기장 둘레에 거대한 철 지지대를 세우고, 지붕을 초강력 인장 케이블로 당겨 고정하는 최신 공법을 사용했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다 보니, 사각지대도 없다. 관람석 역시 국제축구연맹이 권고한 대로 1층은 17°, 2∼3층은 34° 기울기를 주어 앞쪽에 아무리 키 큰 사람이 앉아도 시야가 훤하다.


울산 경기장, 한 무리 학이 춤추는 모습




멀리서 보면 울산경기장은 마치 한 무리의 학이 둘러서서 춤추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울산시의 상징 새인 학을 설계에 반영한 것이다. 야경은 또 다르다. 지붕 위의 경관 조명이 켜지면, 경기장 형태는 신라 시대 왕관 모습으로 바뀐다. 주변 산책로의 가로등에는 갓을 씌워, 도열한 문무백관의 형상을 연출했다.


이 밖에도 경기장 곳곳에는 '울산 이미지'가 투영되어 있다. 지붕 안쪽 트러스는 고래를 닮았다. 철골을 마름모꼴로 연결해 가장 튼튼한 결합 구조를 취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래의 모습을 빚어냈다. 투명한 소재를 사용한 전광판 위쪽 지붕을 올려다보면, 매끄럽게 헤엄치는 고래떼와 푸른 하늘이 잘 어울린다.




울산문수경기장 감리단 양효섭 공사관리부장(POS-AC사)은 "양면성이 강한 울산의 이미지를 함께 살려내는 것이 설계의 주안점이었다"라고 말했다. 대도시이자 고대 문화가 담긴 유적지, 공업단지이면서 동해를 낀 수려한 자연 환경 등을 조화시켜 '인공과 자연' '공업과 문화'를 함께 담아 내려고 고심했다는 설명이다.


울산경기장에는 장애인 관람객을 위한 별도 통행로가 필요 없다. 정문에서 경기장에 이르는 공간을 완전 평면으로 구성한 것이다. 휠체어 이용자는 1층으로 입장해 맨 뒷줄 장애인 전용석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경기를 관람하면 된다.


선수 경호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선수들이 탄 차는 지하 2층 대기실 문앞까지 들어가 선수들을 극성 팬들과 분리한다. '선수 보호 터널'도 다른 경기장에서 보기 힘든 시설이다. 경기가 열릴 때는 출입구 위를 전동식 강화 유리 터널로 덮어, 관람석에서 날아드는 병이나 깡통 등으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한다.


울산 시민들은 경기장보다 주변 경관에 더 많은 점수를 준다. 문수경기장이 자리한 곳은 드넓은 울산 체육공원 안. 주변이 나지막한 구릉에 둘러싸인 분지로, 자연 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경기장에서 몇 걸음 내려가면 드넓은 호수가 자리잡았다. 주변 논이 택지로 바뀌면서 농업용수 기능을 잃은 옥동저수지다.


그러나 문제점도 없지 않다. 울산경기장은 10mm 가랑비에 경기장 지붕이 새어 말썽을 빚었다. 대구경기장의 경우, 그늘이 적어 시민들이 편히 앉아서 쉴 공간이 거의 없다. 수원경기장은 주변에 물이 없고, 큰 경기를 두 번 치렀는데 그때마다 교통 혼잡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더 큰 문제는 월드컵 이후이다. 경기장마다 여러 수익 사업을 통해 적자를 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그다지 미더워 보이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월드컵 축구장 역시 과거의 다른 운동장처럼 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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