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하니 금메달 주렁주렁
  • 이문재 편집위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2.09.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스포츠심리학, 세계 최고 수준…집중력·상상력·자신감 키워줘



추석을 전후해 태릉선수촌에 있는 국가 대표 선수들은 혼자 숲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심리적 안정감을 갖기 위해서다. 그간의 훈련이 스피드와 파워를 키우는 생리학과 기술을 분석하는 스포츠 역학에 치중했다면, 경기를 2주 앞둔 시기부터는 스포츠심리학의 섬세한 지원을 받으며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한국의 엘리트 체육은 체육과학연구원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도입된 스포츠 과학은 그동안 양궁·사격·탁구·하키 등 비인기 종목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산파 가운데 하나였다. 양궁 대표팀 김정호 감독은 스포츠 과학의 지원이 없었다면 한국 양궁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1985년부터 체육과학연구원 김병연 박사가 양궁 담당관으로 활약해 왔다.


현재 대표 선수들을 지휘하는 코치나 감독 대부분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선수로 뛰면서 스포츠 과학의 위력을 직접 체험한 세대인 데다가, 연구원 소속 전문가들과 십수 년 넘게 동고동락한 사이여서 이제는 눈빛만 보아도 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챈다.


요즘 김병연 박사는 부쩍 바빠졌다. 체력과 기술 훈련을 마친 선수와 지도자 들로부터 자주 호출을 당한다. 김박사는 선수들의 시합 전 불안을 없애주고, 집중력과 자신감을 불어넣는 데 주력한다. 가령 경기를 앞두고 불안해 하는 선수들과 마주 앉아 불안의 원인을 찾아낸다. 선수를 관찰하고 직접 인터뷰하면서 선수가 가진 그릇된 생각을 논박해 간다. 김박사는 “선수들의 불안 요인은 주위의 기대가 대부분인데, 대화를 나누며 그 기대가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집중력 향상은 불가의 참선을 응용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화두를 붙잡고 잡념을 끊는 스님들의 참선은 너무 어려워, 남방 불교의 위파사나를 차용했다. 김박사는 탁구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처음에는 호흡에 집중하라. 엉뚱한 생각이 나면 그 생각을 좇아가라.” 그러다 보면 선수 자신의 목표가 설정되고 작전도 떠오른다. 그렇게 15분씩 명상을 반복하는데, 15분이 1분처럼 느껴지는 단계까지 훈련을 거듭한다. 이 방법은 선수들이 경기 중에 발생하기 쉬운 초크(멍한)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데 큰 효과가 있다.





예산·인력 턱없이 부족


이외에도 상상력에 바탕을 두는 이미지 훈련과 자신감 훈련이 곁들여진다. 김병연 박사는 “심리 훈련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지 않은 금메달리스트는 없다”라고 말했다. 메달리스트들은 집중력과 상상력이 대단해서, 자기를 다스릴 줄 알 뿐만 아니라 결단력과 추친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지난해 엘리트 체육을 부활시킨 일본 스포츠과학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한국의 체육심리학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체육과학원은 태릉선수촌 안에 있지만 국민체육진흥공단 소속이어서 생활(사회) 체육 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양궁 대표팀 김정호 감독은 “이번처럼 큰 게임이 닥치면 스포츠 과학이 더 절실해진다. 하지만 예산이 생활 체육에 더 많이 할애되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