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김연수씨의 친일 행적. 경성방직 사장으로서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낸 김씨는 일제 말기 ‘학병에 입대하여 죽을 때에야 조선이 제국의 일원이 될 수 있다’(<경성일보>)며 학병을 적극 권하고 다닌 전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002년 ‘민족정기를 위한 국회의원 모임’과 광복회가 발표한 친일파 7백8명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이런 인물을 기린 현판을 전주의 심장부에 걸어놓는다는 것은 전주 시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최재흔씨는 주장한다. 그러나 미당 시 기념관과 채만식 문학관을 놓고 지역에서 시비가 벌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여전히 소수이다. ‘친일은 나쁘지만, 지역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지 않느냐’는 식의 친일파 옹호론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만주에서 풍찬노숙하던 독립군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고 했다. 그러나 낙담도 잠시, 연내에 수당문을 철거해야 한다며 그는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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