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운동’이 생사람 잡는다
  • 전상일 (환경 보건학 박사) (www.ehn21.org)
  • 승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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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를 방해하는 ‘적’들/천식 환자 야외 달리기는 ‘독’
 봄이다! 차고 메마른 기운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포근한 기운이 감도는 걸 보니. 야외로 내닫고 싶은 욕망에 마음이 울렁이는 걸 보니. 평소에 운동과 담 쌓고 사는 사람도 화창한 날에는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화만 챙겨 신고 나서면 운동을 할 수 있는 계절이 봄이다.
 
운동 참여를 유도하는 요소로는 ‘운동 시설에 대한 접근성, 운동 기회, 날씨, 안전 그리고 주변 경치와 같은 미적 요인’이 꼽힌다. 여기에다 겨우내 몸에 붙은 군살이나 성인병에 대한 두려움 등이 불러일으키는 내적 동기 부여 요소도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봄은 이같은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또한 봄날의 나른함을 떨쳐버리는 데도 운동이 한 몫 한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운동에 열 올렸다가는 몸을 상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좋은 운동도 때와 장소를 가려 해야 득이 된다.  

 야외에서 운동할 때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건 아무래도 날씨다. 너무 덥거나 추울 때는 집밖에서 심한 운동을 하기보다는 체육관을 찾아가는 편이 낫다. 수분과 영양 섭취에 신경을 써야 더위 먹고 쓰러지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다. 탈수 작용을 하는 알코올과 카페인은 멀리하고 물을 충분히 마셔야 한다. 

 봄 날씨는 운동하기 딱 좋을 만큼 따뜻하지만, 운동을 저해하는 ‘복병’도 숨어 있다. 다른 계절에 비해 유달리 강한 자외선과 꽃가루, 그리고 황사가 그것이다. 특히 천식이 있는 사람이 야외 운동을 할 때 증상 악화 요인을 피해야 한다. 

 천식은 만성적으로 폐의 기도가 과도하게 민감한 상태로, 꽃가루나 대기 오염물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음식물 등에 노출되었을 때 기도가 좁혀져 호흡 곤란을 겪는 질병이다. 천식의 증상은 기침, 숨이 차서 헐떡거림, 짧고 가쁜 호흡, 가슴 주변이 조이는 느낌 또는 통증 등이 있고, 심하면 기도가 거의 완전히 막혀 전혀 숨을 못 쉬는 위급한 상황도 올 수 있다. 
황사가 심하거나 꽃가루 같은 알레르기 촉발 물질이 많은 봄에 천식환자가 밖에서 운동하는 건 좋지 않다. 
 
대기 오염이 심할 때 바깥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운동을 하면 호흡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탁한 공기를 더 많이, 더 깊이 들이마시게 된다. 유독한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자동차들이 즐비한 도로 주변은 운동 장소로는 최악이다. 특히 오존이 끼치는 악영향이 크다. 오존은 기온이 높은 맑은 날 오후에 최고 농도에 이르기 때문에 이 시간대를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호흡기가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특히 대기 상태를 고려해서 운동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한다. 대기오염이 천식환자에게 발작과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기오염이 심한 야외에서 운동을 하면 증상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미국 남부캘리포니아 지역에 사는 어린이 3천5백 명을 4년 동안 추적한 연구에서 운동과 대기오염과 천식이 서로 관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연구를 시작한 시점에는 모든 어린이가 천식에 걸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나중에 2백65명이 천식에 걸렸다고 한다. 이때 오존농도가 높은, 즉 대기오염이 심한 곳에서 야외 운동을 한 아이들이, 야외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천식 발병률이 3배나 높았다. 그러나 오존 농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야외 운동과 천식 사이에 연관성이 없었다. 
 
운동화 잘못 고르면 발목 부상 위험

안전하고 쾌적한 운동 장소와 적절한 기구, 장비를 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통사고나 범죄를 당할 위험이 없고 공간도 충분히 넓으며, 운동 기구나 급수 시설까지 갖추었다면 훌륭하다. 운동장 상태를 개선했더니 운동을 하려는 학생의 수가 남학생은 4배, 여학생의 5배 늘더라는 미국 중학교 대상의 통계 자료에서 보듯, 장소가 좋으면 더 운동할 맛이 난다. 피트니스클럽이나 요가 수련원, 수영장 같은 실내 공간은 환기가 잘 되는지 따져보고 등록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실내 수영장은 수질도 좋아야 하지만 환기가 잘 되어야 소독약에 든 염소의 피해를 덜 입는다. 수증기 형태로 올라오는 염소 성분 때문이다. 
 
수영장 물의 염소 성분은 피부에 남아 피부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잘못해서 물을 먹었을 경우에는 장 속의 유익한 균과 박테리아를 죽여 위장병이 생길 수도 있다. 염소와 인체 배설물과 같은 유기물질이 반응하여 생성되는 ‘트리할로메테인’이란 물질은 유방암·방광암· 장암 등을 유발하는 발암 물질로 분류된다. 
 
운동 기구나 보조 장비는 몸집과 운동 강도, 운동 능력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 달리기만 봐도 발에 잘 맞는 운동화를 골라 신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뛰어본 사람은 안다. 충격 흡수를 위해 바닥에 에어쿠션 처리가 되어 있거나 푹신한 깔창을 깐 신발을 신으면 발의 감각 능력이 둔해져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발목을 움직이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발목 부상을 입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차라리 천으로 된 보통 깔창이 낫다고 한다.
 
운동을 저해하는 그 외 요소로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운동 능력 같은 신체적 요소도 있다. 최근 마라톤 인구가 부쩍 늘어나서 대회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물밀듯 몰려든다. 완주한 사람들의 성취감이야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겠지만, 심장마비로 비명횡사한 마라토너 가족의 슬픔은 얼마나 클까. 다른 운동 경기 중에도 선수가 돌연사(Sudden Death)한 예가 있어 운동 싫어하는 사람들의 핑계거리가 된다.

과다한 운동, 심장마비·무월경증 부를 수도
 
격렬한 운동을 하면 숨이 가빠지고 심장에 무리가 가긴 하지만, 운동 중에 돌연사한 사람들은 거의 다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이 보통 강도로 운동하다 돌연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연구진은 1979~1999년에 베네토 지역에 사는 12~35세 남녀 1백38만6천6백60명(남자 69만2100명, 여자 69만4500명, 이 중 운동 선수는 남자 9만6백90명, 여 2만2천1백명)에 대한 통계 자료를 분석해서 운동과 돌연사의 관계를 살펴봤다. 돌연사는 총 3백 건 있었는데, 그 중 55건이 운동 선수에게서 일어났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니 운동 선수의 돌연사 위험률은 선천성동맥기형이나 심장근육병 같은 심장질환과 관련이 있었다. 운동 자체는 사망률을 높이는 원인이 아니지만, 심장병이 있는 선수들에게 운동을 하는 동안 돌연사가 닥칠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므로 심장병이 있거나 심장마비·심장 수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운동 전에 외과의사와 상담을 해서 자신의 신체 능력을 측정하고 알맞은 운동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
 
운동은 부족해도 문제지만 과해도 문제가 된다. 알맞은 운동은 건강에 득이 되지만, 피로와 근육통이 오래 가고 집중력과 식욕이 떨어지는 등 몸이 이제 그만 쉬라는 신호를 보내는데도 운동 중독증에 걸려 무리하다가 심장마비, 체지방률 저하에 따른 무월경증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
 
운동에는 몇몇 위험 요소가 있지만, 주의 사항을 지켜나가면 그런 위험도 피하거나 줄일 수 있다. 시티은행 최고 경영자를 지낸 미국 금융계의 대부 월터 리스턴(Walter Wriston)이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인생은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지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는 게 아니다(All of life is the management of risk, not elimination).” 위기 관리가 필요한 건 운동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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