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정복 ‘대로’ 열었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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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가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해 배아 줄기세포 를 배양하는 데 성공해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시사저널>은 황교수의 영국 일정을 동행하고 인천 공항 도착

 
그는 역시 ‘프로’였다. 세계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놓고 지난 5월20일 인천공항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52)의 얼굴에서 여독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황교수는 1주일 동안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세계 과학자들과 언론에 그토록 시달렸는데도 기자회견 내내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전 날 영국 런던에서 세계 언론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했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황교수는 회견장에 들어서자마자 흥분을 가라앉히며 ‘변변치 못한 연구 결과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잘 이해해주고 격려해준 국민 여러분들에게 감사한다’며 깎듯이 예의를 갖추었다. 연구팀과 과학정책 관계자, 국내외 언론, 체세포와 난자 제공자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두루 감사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환자·난자 제공자가 한국인인지는 밝힐 수 없다”

황교수 연구팀은 환자의 체세포를 복제해 배아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복제를 통해 배아 줄기세포를 만든 데 이어 두 번째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척수 손상으로 팔 다리가 마비된 환자 9명과 선천성 면역글로블린 결핍증 환자 1명, 소아당뇨 환자 1명 등 모두 11명의 환자에게서 피부 세포를 떼어내 복제한 뒤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 이번 연구로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로 질병에 걸린 인체 세포와 조직을 치료할 날이 멀지 않게 되었다(그림 참조). 

 
그의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되었고, 5월19일 런던에서 가진 기자회견 뒤 지구 곳곳에 알려졌다. 한국 기자들과는 5월20일 인천공항 VIP실에서 만났다. <시사저널>은 영국 스코틀랜드 심포지엄 현장, 인천공항 기자회견장 그리고 공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황교수 승용차 안에서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황교수팀의 이번 연구 결과와 앞으로의 파장을 입체적으로 취재했다. 다음은 지난 1주일에 걸쳐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황교수와의 인터뷰를 종합 정리한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연구의 성과는 무엇인가?
우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환자의 체세포에서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다른 사람의 체세포를 이용할 경우 치료 과정에서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날 수 있지만,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하면 그런 걱정을 덜 수 있다. 또 이전과 달리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바탕 영양 세포로 인간 세포를 활용했다. 전처럼 생쥐 세포를 이용하면 동물의 병이 환자에게로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 배아 줄기세포 확립 성공률이 지난해보다 15배 이상 높아진 것도 이번 연구의 성과이다. 지난해에는 난자 2백42개에서 줄기세포를 단 1개밖에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난자 1백85개에서 배아 줄기세포를 11개 만들어냈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로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고 평가한다. 언제쯤이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 가능한가?
구체적인 시기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이렇게 표현할 수는 있겠다. 지난해 연구로 치료를 향한 첫 번째 대문을 열었다. 더 큰 대문이 4개 남았는데, 이번 연구로 그 대문을 한꺼번에 열었다(세계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수년에서 10년 넘게 해야 할 일을 앞당겼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최종 목적지인 안방까지 가려면 아직도 열어야 할 작은 사립문 3~4개가 더 남았다. 줄기세포를 특정 세포로 분화하는 연구도 더 필요하고, 동물실험과 임상실험 등의 과정을 거쳐야 실제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지금 단계에서 환자들에게 지나친 기대를 갖게 하고 싶지 않다.

환자의 체세포에서 확립한 줄기세포여서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에 얻어낸 줄기세포는 모두 건강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확인했다(같은 연구팀인 서울대 의대 안규리 교수는 설사 건강하지 못한 줄기세포라고 해도 질병 원인을 밝히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가치는 충분하다고 보충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척수질환·소아당뇨·선천성면역 글로블린 결핍증 등 세 가지 질병만을 대상으로 한 이유가 무엇인가?
나이 먹어서 병에 걸리면 고통 당하는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다. 그러나 척수질환이나 소아당뇨는 한창 나이 때 또는 어린 나이에 만나는 질병이다. 너무 이른 나이부터 고통당하는 환자들부터 도와주고 싶다. 

그렇다면 어떤 질병 연구를 가장 빨리 성공시킬 수 있는가?
그것 역시 답해줄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내 연구의 피크(꼭대기)는 넘었다고 본다. 다음 단계의 연구는 의학자의 몫이다.

치료법을 개발하려면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는 성과도 있지 않나?
신약을 개발하는 데는 우리 연구 결과를 지금 당장에라도 써먹을 수 있다. 환자의 체세포로부터 줄기세포를 확립하는 과정을 통해 질병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해낼 수 있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맞춤 약’을 개발하는 기간을 예전보다 훨씬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국내외 과학자나 의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하겠다는 것도 그 때문인가?
그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다(딸린 기사 참조).

공동 연구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어떻게 진행되나? 영국 로슬린 연구소 윌머트 박사와의 공동 연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면?
윌머트 박사와 나는 서로의 약점을 잘 안다. 따라서 연구도 서로 보완해 주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실무적인 문제는 우리 연구팀에 있는 안규리 교수와 강성근 교수(서울대 수의과대학) 등이 로슬린 연구소 실무진과 협의해 결정하게 된다.

어떤 결과를 기대하나?
스티븐 호킹 박사 덕에 루게릭병이 아주 특별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을 호전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스코틀랜드 정부와 우리 정부가 상당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요즘도 ‘황박사와 윌머트 박사가 손잡은 것만 해도 나에게는 희망이다’라는 e메일을 자주 받는다. 그 환자들을 위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인간 체세포를 복제해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데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어떻게 극복해 갈 것인가?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난자 공여에 대한 윤리성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난자를 공여받지 않고 직접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러나 근시일 내에 달성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에 전세계 수억 명의 난치병 환자들은 고통을 받는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가? 윤리적 물음에 대해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답이 없다고 한다. 시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번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국내 생명윤리법을 철저하게 지켰다.

난자 공여자와 체세포 제공 환자는 모두 한국인인가?
그것은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

제공자들은 어떻게 찾았나?
우리 연구팀은 100명 가량 되는데, 업무에 따라 팀이 나뉘어 있다. 난자와 체세포 공여자 문제는 내가 직접 관여한 부분이 아니라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황교수 연구팀의 다른 연구자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황교수 연구 소식을 알게 된 여성들과 환자들이 자원했다고 한다). 다만 보고를 받을 때 공여자 모두 아무런 경제적 대가를 받지 않고 기꺼이 응했다고 들었다.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여성들이 너무 많아 즐거운 비명을 지른 것은 아닌가?
그렇게 물어보는 안기자도 자원하지 않는데, 자원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웃음).

난자를 제공하면 불임이 되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는데 어떻게 자원하겠나?
(펄쩍 뛰며) 무슨 소리…. 그런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다만 이론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다. 

한국의 체세포 줄기세포 연구가 너무 빨라 미국이나 유럽 학자 가운데는 주도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하거나 시기하는 이도 있는 것 같다.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내가 만난 과학자들은 우리의 연구 성과를 칭찬하며 호의적이었다. 동양에서도 선도하는 학문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오히려 격려하는 분위기였다.

황교수 팀은 이번 연구로 난치병 치료의 새로운 물길을 열었다. 그러나 황교수 말대로 이번 연구 결과가 곧 환자 치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당장은 줄기세포의 어떤 부분이 특정 세포로 분화하는지 더 정확하게 규명해야 한다.

차바이오텍 정형민 대표(포천중문의대 교수)는 “분화 속도를 늦추는 것도 과제다”라고 말했다. 분화한 세포가 계속 자라면 암세포가 되는데, 지금은 그걸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로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에서 세계 생명공학계의 ‘프로’로 우뚝 선 황우석 교수와 그의 연구팀에게 다시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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