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의 불청객 ‘불면증’
  • 전상일(환경보건학 박사) ()
  • 승인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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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 한다는 강박이 더 문제…낮에 가뿐하다면 걱정 ‘뚝’
 

지난 며칠, 무더위 탓에 밤잠을 못 이룬 사람이 많았다. 낮 최고 기온이 30℃를 웃돌고, 밤 기온이 25℃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 현상’은 한낮의 더위로 삶이 팍팍했던 이들로부터 단잠마저 앗아가는 가혹한 형벌이다. 잠을 푹 자지 못하면 깨어나서도 피곤이 가시지 않고, 한창 활동해야 할 낮에 졸음이 몰려와 일의 능률이 뚝 떨어진다.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자꾸 깨거나, 잠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충분히 자지 못하면 짜증도 늘고 무기력해지고 마음도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잠자리가 불편하거나 걱정거리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또는 심한 통증 때문에 사나흘 정도 잠을 설치는 일이야 누구나 겪는다. 그렇지만 불면증(insomnia)은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상황이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가는 만성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아침에 일찍 깨거나 잠을 적게 잔다고 모두 불면증은 아니다. 대개는 7~8시간을 자야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지만, 유달리 일찍 일어나거나 잠을 적게 자도 멀쩡한 사람이 있다. 작년에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아침형 인간’도 이미 몸 속에 프로그램 된 수면 타입일 뿐, 자신의 24시간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무작정 따라 갈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주종이다. 불면증 환자와 잠이 적은 사람의 차이는 일과 시간을 얼마나 활기차게 보내느냐에서 판가름 난다.  

탄산음료·술·커피 피하고, 운동은 세 시간 전에

수면의 질이 낮아 피로하고 잠자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잠을 못자는 악순환이 계속되면 없던 병도 생길 것이 뻔하다. 불면증은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의 대표적인 공통 증상으로 꼽히지만, 최근 연구들을 보면 반대로 불면증이 정신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난 6월 하순, 미국 덴버에서 열린 수면전문가연합학회 연례 학술대회에서 로체스터 대학 수면신경생리학연구소 연구진이 발표한 결과도 같은 맥락이다. 불면증이 있는 우울증 환자는 불면증이 없는 우울증 환자에 비해 1년 뒤에도 여전히 우울증을 겪고 있을 비율이 17배나 높았다. 우울증이 없는 경우에도, 불면증이 있는 사람은 불면증이 없는 사람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6배나 높았다.

특히 여성과, 밤에 반복적으로 잠에서 깨는 사람일수록 불면증과 우울증의 상관관계가 뚜렷했다. 만성적인 불면증을 방치했다가는 심각한 정신 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경고로 보아도 좋다.

또한 연구진은 우울증과 수면 장애를 동시에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항우울제 프로작과 불면증약 루네스타를 모두 처방했다. 그랬더니 불면증 치료만 한 환자에 비해 회복이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불면증 치료가 우울증을 완화하는지, 만성 요통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불면증 치료가 통증 경감 효과를 거두는지도 현재 검증 단계이다.

불면증이 고혈압이나 비만에 의한 제2형 당뇨병 같은 질병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이미 상당히 쌓여 있다. 여느 질병과 마찬가지로 불면증도 만성이 되기 전에 치료하는 것이 좋다. 불면증은 약물 치료와 긴장을 풀어주는 행동 요법 위주로 치료한다. 그러나 열대야로 그저 며칠 잠을 못 이룬 것을 불면증으로 단정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면 금방 원상태로 복귀할 것도 오히려 상태가 악화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잠이 잘 오도록 약간만 주의를 기울여도 충분하다. 예를 들면 탄산음료, 술, 카페인이 많이 든 커피나 차, 너무 맵거나 속을 더부룩하게 만드는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밤늦게 격한 운동을 하면 몸이 자극을 받아 잠이 안 올 수 있으니 운동은 적어도 잠자기 세 시간 전에는 끝내야 한다. 잠자리에서 만큼은 흥분과 스트레스와 걱정을 벗어두고 마음을 가라앉히면 달콤한 잠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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