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부르는 음식, 냉면
  • 성석제(소설가) ()
  • 승인 2005.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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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음식정담] 냉면

내 주변에는 냉면광들이 많다. 그들의 특징은 오랜만에 만나서, 점심으로 뭐 먹을까 하면 즉시 “냉면이지, 먹을 게 뭐 있다고”라고 대답하거나(저녁에도 마찬가지다), 몇 년 만에 전화를 했어도 바로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다정하게 “우리 ○○냉면 먹으러 가야지” 하는 식으로 말한다(죽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어떤 음식도 냉면처럼 열렬한 신도를 거느리고 있지 못하다. 비빔밥·육개장·찰떡 뒤에 ‘광’ 자를 붙였다 떼어보면 냉면의 위대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음식 이름 뒤에 ‘광’을 붙일 만한 것은 그 음식이 그만큼 중독성이 있어서일 것이다. 도대체 냉면에 무슨 맛이 있기에 사람을 중독 시키는가.

1930년대 초반에 쓴 김유정의 글에 전차 차장이 일이 끝나면 냉면이나 한 그릇 먹고 들어가자고 생각하는 것이 나오는 걸 보면 그때도 이미 냉면이 겨울 밤참으로 서울을 지배하고 있었다. 겨울에 먹는 냉면이 맛있다는 건 몇 년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알게 됐다. 서울 근처 동네에서 냉면만 전문으로 해왔다는 어느 식당 할머니가 “냉면은 겨울에 먹어야 돼”라고 했기 때문이다. “메밀이 햇거걸랑은.”

그런데 냉면 맛은 메밀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육수는 물론 중요하고 냉면김치, 달걀에 편육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식탁 위에 양념통이 제대로 갖춰졌는지도 무시할 수 없는 기준이다. 간장, 식초, 겨자, 고춧가루에 결정적으로는 설탕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식당의 전문성이며 수준이 결정된다는 식이다.

간단한 듯하면서도 이토록 까다로운 음식이 없고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은 음식도 따로 없다. 다른 음식점과 달리 냉면집 앞에서는 줄을 서도 별로 억울하지 않다. 금방 차례가 오기 때문에.  

 
내 주변의 냉면광들은 어디의 어떤 냉면이 맛있다 하면 한 다섯 시간 차를 몰고 가서 십오분 동안 곱빼기에 국수 한 사리까지 더 먹고 다시 다섯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근래에 경험한 이런저런 냉면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오는 사람들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은 아무래도 정보나 기회에서 서울 사는 사람들에게 밑지게 마련이고 그 대신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어떻든 좋은 냉면을 발견하려고 애를 쓴다. 그 냉면이 조금이라도 사줄 점이 있다면 삼천리 강토가 병동인 ‘냉면 신경정신과 환자’ 동지들에게 침을 튀겨가며 그 작은 미덕에 대해 두고두고 홍보를 한다. 그 냉면의 맛이 자기가 사는 동네, 심지어 자신의 인격에 대한 평가와 직결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륙 년 전부터 지방 소도시 농촌 마을에 살게 된 ㅇ은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인구 3만, 4만의 읍에 최소한 하나쯤은 제대로 된 냉면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샅샅이 뒤진 끝에 그럴싸한 식당을 하나 발견했다. 그 식당은 1) 가정집을 개조한 곳으로 2) 재래 시장의 뒷골목에 있었고 3) 아주 낡았으며 4) 대머리가 벗겨진 데다 늘 얼굴에 웃음기가 감도는 주인 등 그가 생각하는 전문적인 냉면집 요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결정적으로는 그날 따라 ‘냉면 전문’이라는 그 냉면 깃발의 ‘전문’이라는 말이 문자에 민감한 그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요새는 김밥집, 분식집, 심지어 중국집에서도 냉면을 팔긴 하지만 그런 곳에서는 감히 ‘전문’이라는 말을 붙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냉면을 주문했다. ㅇ은 냉면의 종류에는 물냉면과 비빔냉면, 회냉면에 칡냉면, 야콘냉면이 있고 응용으로 섞기미 냉면이나 물비빔냉면이 있다는 등 대도시 거주 냉면광들의 신경질적인 이론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냉면 전문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냉면은 오로지 평양식 물냉면, 그 하나뿐이라고 단언한다. 메밀이 주재료로 감자나 고구마 전분이 들어가는 함경도식 냉면과 달리 앞니로도 툭툭 잘 끊기는 물냉면은 면 외에 육수·달걀·편육·무절임·배·오이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식초와 겨자 외의 첨가물은 일절 인정되지 않는다. 어떻든 그가 주문한 냉면을 만들기 위해 파리채를 들고 있던 식당 주인은 주방으로 갔다.

늦은 오후여서 그런지 다른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비빔냉면처럼 달착지근하게 입에 달라붙는, 수준 이하의 냉면에 길이 든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리 인기가 없지만 어떻든 냉면에 ‘전문’임을 내세울 만한 비범한 무엇인가가 있어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 무엇을 지켜내야 하는 고독한 책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손님이 없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벽에 종이로 급히 써붙인 듯한 특육계장(‘보통’ 육‘개’장이 아닌), 돌솥비빕밥(역시 비‘빔’밥이 아닌) 따위의 식단에 대해서는 진짜배기 냉면을 지키기 위해 조금은 타협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꾀에 넘어가 낭패 본 ‘냉면광’들

화장실은 주방 곁을 통과해서 뒷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가서 있었다. 주방 옆을 지나며 그는 무엇인가 끓이고 있는 주인을 보았다. 깨끗하다고 하기는 힘든, 좋게 말해 전통적인 풍정을 온존하고 있는 화장실에 갔다오면서 그의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느려졌다.

냄비에는 물이 끓고 있었고 그 물에 주인이 막 집어넣은 면이 삶기고 있었다. 나 혼자만을 위해서 특별한 도구를 쓰는구나, 하는 감동에서 그가 빠져나오기도 전에 주인은 면을 꺼냈던 비닐봉지를 머리 높이의 선반 위에 턱 얹어놓았다. 그리고 그 봉지에서 꺼낸 또 다른 자그마한 봉지 - 우리가 라면을 끓일 때 함께 첨부된 자그마한 봉지와 비슷한 크기의 봉지를 토끼를 연상케 하는 큰 앞니로 찢었다. 이어 냉면 그릇에 수돗물을 따르고 봉지 안의 가루를 넣고는 굵직한 손가락으로 휘젓기 시작했다. 한 손을 허리에 얹고 도 닦는 사람처럼 지긋이 먼 산을 보며 손가락을 휘젓는 그 모습을 말로 표현하자면 ‘내 입에 들어갈 거 아니니까’라고 한다. 그는 선반 위의 비닐 봉지에 적힌 글자까지 보고 말았는데 그건 그가 가끔 집에서 해먹던 ‘ㅊㅅ냉면’이었다. 그게 그나마 가게에서 포장해서 파는  냉면 가운데서는 전통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 상표가 면에서 메밀 함량이 기중 높은 기라.”

그는 말했다. 그래도 함량이 10퍼센트 미만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메밀이 중국산이라는 것도.

언젠가 가짜 냉면 육수를 전국 식당에 배달·판매하던 공장이 적발되었다. 그 육수라는 것이 육수의 육(肉)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일본에서인가 수입한 조미료를 물에 풀어서 판매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한동안 육수를 자체적으로 만들지 않는 곳에는 가지 않았다. 사실은 못 갔다, 우리는 환자니까 안 가는 경우는 없다. 금단 증상으로 울면서 못 갔다.

얼마 전 냉면광으로서는 자격이 부족한 내가 황송하게도 노(老) 동지들에 앞서 냉면의 수도라 할 수 있는 평양에 가게 되었다. 막상 가보니 평양에는 냉면이 없었다, 고 한다면 동지들은 거품을 내뿜으며 쓰러질지도 모른다.

동지들, 냉면은 없었지만 랭면은 있었습네다. 기냥 랭면도 있구 평양랭면도 있었댔시요. 다시 먹는 이야기를 인차 하게 되면 랭면 이야기부터 하갔습네다. 조금만 기다리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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