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일이 서글픈 까닭
  • 박홍규(영남대 교수, 법학) ()
  • 승인 200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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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어제 누가 2005년에 가장 ‘기뻤던’ 일을 묻기에 선뜻, 얼마 전 이른바 인혁당 사건이 ‘사법 살인’으로 밝혀진 것이라고 답하자 몹시 의아해 했다. 사실은 그 내용을 잘 모른다고 하면서도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이냐고 되묻는 상대방에게 길게 설명하면서, 나 자신 그게 과연 올해 가장 기쁜 일일까라는 의문이 차츰 들었다. 기껏 다행한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2005년이 어떤 해였기에 고작 그런 일이 가장 기뻤다는 것인가? 겨우 날조된 과거를 밝힌 것이 유일한 기쁨이란 말인가? 오히려 ‘서글프기’ 짝이 없지 않는가?

그 사건은 무고한 시민들을 ‘반체제’라고 조작하고 최종 판결이 내려지자마자 즉각 처형한 반인권의 극단이었다. 그런데 과거의 진실은 밝혀졌어도 ‘반체제’라는 괴물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심지어 글 한 줄 쓸 때마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그런 괴물이 등장하지 않을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법률 하나 만들 때마다 그런 딱지가 붙고, 위험한 적들이 야기하는 반체제라니, 국가 위기라니, 헌법 위반이라니 하는 등의 험악한 소리들로 엄청난 ‘적과 동지’의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그런 표현과 절차가 다 민주주의라고 하니 어쩔 수 없는가?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그런 것은 아니리라.

가령 사립 학교는 그 설립자의 재산이니 그 이사 일부의 임명 방식을 공익적 차원에서 제한하는 법률이 우리 체제의 근본 원리인 재산권을 부정하는 ‘반체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딴 민주주의·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사립 학교만이 아니라 모든 기업의 이사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의 그것은 과거의 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와 같은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아니 그런 말은 ‘인혁당’ 시절의 것으로서 벌써 한물 지나 이제 누구도 사용하지 않으니 시세에 맞게 ‘한류 민주주의’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체제를 수입할 나라는 없으리라.

이런 근본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반체제 논쟁은 국제적으로도 벌어지고 있다. 바로 최근 미국 정부의 돈으로 북한인권대회가 열려 북한에 대한 ‘반체제’ 운동이 본격화한 것이다. 그 근거인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북한을 원조하는 다른 나라에 대해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최근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는 우리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문제 삼았고, 그에 맞서 북한은 세계식량기구 철수를 요구했다. 게다가 그 법에 규정된 비인도적 원조의 요건은 북한에 종교적 자유 등 인권이 완전하게 보장될 것을 요구하여, 사실상 그 법은 ‘경제 제재’가 되고 있다. 반면 탈북자에게는 엄청난 돈을 준다고 하니, 그 법은 결국 ‘탈북 지원법’일 뿐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탈북 지원법’일 뿐

북한 인권 문제는 심각하고, 이제 누구나 그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러나 탄핵이나 행정수도 이전이나 또는 최근의 재산권에 대한 ‘인정투쟁’ 이상으로, 북한 인권 문제의 근본에는 서로의 인권 개념이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에서 나오는 ‘인정투쟁’이 있다. 모든 나라의 헌법이 그렇듯이, 인권도 대단히 폭넓은 것이어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으나, 그것이 극단적으로 악용되면 언제나 헌법이나 인권 그 자체를 파괴할 우려가 있다. 그런 파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체제 논쟁을 벗어나 헌법이나 인권 자체의 내재적 원리에 충실하는 길이다.

이제는 인권을 말해야지 체제를 들먹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정상이고 너희는 비정상이라는, 우리는 절대 선 체제이고 너희는 절대 악 반체제라는 본질주의적 구분이나, 그러한 식의 조작이야말로 가장 반인권적인 것이다. 바로 옛날 권위주의나 제국주의가 항상 써먹은 수법이다. 우리의 인권만이 아니라 북한 인권에 대한 논의도 체제가 아니라 인권 자체를 논의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화를 위한 상호 인권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대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반체제라고 몰면서 상대의 인권이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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