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광풍 속 구석방 폐인들 낚시글로 한 세월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5.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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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 전횡 표현한 '네카시즘' 개똥녀 사건 등 폐해 줄이어

월별 신조어

1월 :

부비부비

2월 :

구석방폐인

3월 :

일락

4월 :

불임 휴직

5월 :

공시족

6월 :

낚시글

7월 :

네카시즘

8월 :

혐한류

9월 :

캔들족

10월 :

평양둥이

11월 :

위버섹슈얼

12월 :

황빠

자료도움 : 국립국어연구원 김한샘 연구사

레이거노믹스(1980년)·닷컴(1994년)·스피드데이팅(1998년)·사스(2002년)·포드캐스팅(2004년)... 이 영어 단어들은 영국의 언어학자 수지 덴트가 뽑은, 지난 100년 간을 대표하는 단어다.  해마다 어떤 단어들이 뜨고 지는지를 살펴보면 언어의 역사는 물론 사회상의 변천도 아울러 볼 수 있다. 

<시사저널>은 2005년 올해 새로 생겨난 우리말 신조어 열두 개를 통해 한국 사회를 정리해 보았다. 여기서 신조어란 올해 대중적으로 쓰였으면서도 전년도까지 국어사전에 등재된 적이 없고 국립국어연구원이 발간하는 신어 목록에 등재된 적이 없는 낱말을 뜻한다(2004년 이전에도 쓰였지만 올해 와서야 대중성을 획득한 단어도 포함된다). 분석에 기초가 된 자료와 뜻풀이는 국어연구원에 자문했다.

네카시즘   <시사저널>이 선정한 2005년 대표 신조어는 네카시즘이다. 네카시즘은 네티즌(netizen)과 매카시즘(McCarthyism)의 합성어로, 인터넷 상에서 어떤 사건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비방을 유포하여 여론을 선동하는 일을 매카시즘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흔히 ‘인터넷 마녀사냥‘이라고도 불린다.

 
올해는 네카시즘으로 시작해 네카시즘으로 끝난 한 해였다. 지난 3월30일 서울대 도서관 폭력 사건이 전형적인 사례였다. 이날 밤 도서관에서 큰소리로 옆 사람과 떠들고 있던 서울대생 김 아무개씨는 자기에게 ‘조용히 하라’며 정숙을 요구하던 뒷자리 학생을 마구 때리고 난동을 피웠다. 사건 직후 목격자들이 가해자의 신상을 인터넷에 올리며 ‘사이버 응징’이 시작되었다. 단 몇 시간 만에 가해자의 얼굴 사진과 실명·소속·고향·전화번호 등이 퍼날라졌고 가해자는 그 후 유기 정학 징계를 받았다. 5월 인천 ㅅ고등학교 유양 자살 사건의 경우는, 유양을 자살로 몰고갔다는 급우들의 사진과 실명이 유포되어 당사자들이 며칠간 등교하지 못했다. 6월에는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똥을 두고 떠난 일명 ‘개똥녀’를 두고 추적 열풍이 벌어졌다.

처음에 네티즌은 ‘불의를 바로잡는다’는 정의감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상이 변질되어 갔다. 이미 대가를 치른 개인에게 이중삼중의 명예 처벌을 가하는가 하면, 당사자 주변 사람들의 신상까지 덩달아 공개하는 일도 벌어졌다. 뜬소문에 기초한 바람몰이식 사냥도 곧잘 벌어졌다. <시사저널>은 올해 6월 제818호 기사에서 네카시즘(넷카시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쓰며 네티즌 마녀사냥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네카시즘 인터넷이 여론을 주도해 가는 사회 흐름의 한 단면이다. 네카시즘을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정의를 실현시키는 도구’이거나  ‘직접 민주주의의 한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네티즌의 열정은 잘 쓰면 약이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 네카시즘 바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1월22일 MBC <PD수첩>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 윤리 문제를 비판하자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나 MBC를 공격했다. 담당 PD의 가족 사진이 공개되고 광고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부비부비 남자가 여자의 뒤에서 몸을 비비며 추는 춤을 말한다. 일명 매미춤이라고도 부른다. 이 단어는 2004년에도 곧잘 쓰였는데 올해 초 강남이나 홍대 힙합클럽에서 대유행했다. 몸이 밀착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나 춤추는 사람이나 짜릿한 느낌을 준다. 부비부비는 (몸을) ‘비비다’라는 동사의 변형이다.

구석방 폐인 일본의 히키코모리 족과 대등한 은둔 생활자를 뜻한다. 사회 생활을 하지 않고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인터넷 따위만 하며 산다. 인터넷 폐인 현상과 높은 청년 실업률이 결합해 나타난 현상이다.

일락(一rock) 특정한 장소를 빌려 하루 동안 영업하는 록카페다. 지난 3월 한 교사가 학교 폭력 서클 일진회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일락이 사회의 비판대에 올랐다. 일락에서 공공연히 성적 행위가 벌어난다는 식의 제보도 있었다. 경찰은 부랴부랴 일진회 단속에 나섰고 ‘고딩판 공안정국’ 바람이 불었다.

불임 휴직 아기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임신을 위하여 일정한 기간 직무를 쉬는 일을 말한다. 출산율 저하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몇몇 기업들이 불임 휴직 제도를 도입해 환영받았다. 올해 신조어 가운데에는 정부나 기업이 새로 시행하는 제도와 관련된 낱말이 많았다. 예를 들어 생리공결제(생리통으로 인한 결석을 공적인 것이라고 인정하여 출석으로 처리해 주는 제도)· 스쿨폴리스(전직 경찰 등을 학교에 상시 배치해 학교 폭력 관련 업무를 전담하게 하는 제도). 대기벨트(대기 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개발을 제한하도록 설정한 지역), 마술병(군대 보직 가운데 마술특기를 가지고 부대 위문 임무를 맡은 병사) 등이 있다.

 
낚시글 인터넷상에서 눈길을 끌기 위해 사실과 다르거나 엉뚱한 내용을 올리는 글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전지현 정우성 결혼 발표’라는 제목에 혹해서 클릭했더니 ‘뻥이야’라는 조롱만 보이는 식이다. 여기서 파행되어 ‘낚시하다’ ‘낚이다’라는 말은 각각 ‘사기를 친다’‘사기 당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최근 영어권에서 fishing이라는 단어 역시 ‘사이버 사기’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공시족 각종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이르는 말이다. 기업마다 구조 조정이 심해지면서 안정적인 공무원 직에 응시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세태를 대변한다. 공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을 포함하기도 한다. 경제난과 구조 조정 세태를 반영한 신조어로는 신기러기족(중년 직장인들이 뒤늦게 의대·약대· 한의대에 진학하느라 부부 중 한 사람은 서울에서 생계를 책임지고 다른 사람은 지방에서 공부하는 가족) 교직낭인(일정한 직업 없이 학교와 학원가를 전전하며 임용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 등이 있다. 

혐한류 한류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는 풍조를 말한다. 비슷한 말로 반한류가 있다. 이 단어는 올해 7월 일본 출판사에서 출간된 만화 제목에서 유래했다. 만화 <혐한류>는 ‘일본 영토인 다케시마를 왜 한국은 침략하나’라는 등 노골적으로 한국을 비난하고 있는데 일본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캔들족 느리고 고요하게 사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캔들족은 밤 8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집안의 전등을 모두 끄고 촛불을 켠 채 생활하는게 특징이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환경운동에 슬로푸드 정신도 섞여 있어 언론의 눈길을 모았다.

 
평양둥이 평양에서 태어난 남한 아기다. 평양 문화 유적을 참관하러 방북했던 황선씨(31·통일연대 대변인)가 10월10일 〈아리랑〉을 관람하다가 진통을 느껴 평양산원으로 옮겨져 둘째 딸을 낳았다.

위버섹슈얼(Ubersexual) 남성성이 강조된 섹시함을 뜻한다. 세련된 마초 혹은 터프 가이쯤으로 이해된다. 한때 방송 드라마를 주름잡던 미소년 꽃미남 주인공이 근육질의 스포츠맨으로 뜨고 있다. 독일어로 ‘위버’는 영어의 ‘슈퍼’라는 뜻이다.

황빠 황우석 교수에 대한 애정과 지지가 도에 지나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황빠들이 모인 곳을 ‘줄기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대로 황우석 교수를 무조건 비판하는 사람을 ‘황까’라고 부른다. 과학자에 대한 사회적 존경은 바람직한 일이고 말릴 수 없겠지만, 정당한 비판마저 원천봉쇄해버리면 ‘과학국수주의’로 흐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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