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기병’ 정동영, 잘 달리고 있다
  • 고제규 · 차형석 기자 / 서기열 · 박근영 · 송진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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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열린우리당 운영위원장 1백8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정동영 후보가 당의장 될 것”이라는 응답이 69.8%에 달했다

열린우리당은 월 2천원을 내는 기간당원제를 택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기간당원은 이미 50여만명을 넘어섰다. 선거를 앞두고 종이 당원 등 유령 당원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부작용이 심해 허수가 포함되어 있지만, 기간당원은 열린우리당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이들은 지역별로 당원협의회를 구성하고, 대의원을 선출해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 후보, 당의장 등 사실상 모든 당직과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를 뽑는 권한을 가진다. 이 개미 당원들의 선봉에 바로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들이 있다.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이하 운영위원장)은 예전으로 치면 지구당 위원장이다. 그 영향력이 실로 막강하다. 운영위원장이 되면 자동으로 전당대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대의원이 된다. 당헌·당규상 대의원의 60%를 기간당원 대회에서 선출하고, 나머지 40%를 운영위원회에서 구성하는 추천위원회가 선발하는데, 그 운영위원회를 이끄는 사령탑이 바로 운영위원장이다. 따라서 운영위원장들은 당심을 알 수 있는 풍향계이자, 바로미터이다. 

지난 1월20일부터 당심의 핵인 2기 운영위원장 선거가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중앙당은 1월27일까지 선거를 끝낼 계획이었지만, 지역 사정에 따라 지연된 곳이 많다. 2월1일 현재 전체 3백여 곳 가운데 2백50여 곳만 운영위원장 선거를 치렀다. <시사저널>은 운영위원장 명부를 입수해, 2월1일부터 2일까지 전화 설문조사를 했다. 2백50여 명 가운데, 답변을 거부하거나 연락이 되지 않은 경우를 뺀 1백82명이 조사에 응했다.

지난해 <시사저널>은 문희상 의원이 당의장에 선출되기 전에도 이와 같은 설문을 벌여, 문희상 대세론을 적중시킨 바 있다. (<시사저널> 800호 참조) 


 
굳히기냐, 이변이냐. 열린우리당의 차기 대권 주자 김근태(GT)·정동영(DY) 후보가 맞붙는 2월18일 전당대회의 관전 포인트는 둘 가운데 누가 당의장이 되느냐에 있다. DY와 GT는 경선 초반부터 거친 공방을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두 사람의 정면충돌로 후끈 달아오른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최고위원과 당의장을 선출한다. 2월2일 예선을 통과한 후보 8명 가운데 득표순으로 5명(여성 최소 1인 포함)이 최고위원으로 뽑히고, 이들 가운데 최다 득표자가 당의장이 된다. 운영위원장을 포함한 대의원 1만3천5백여 명이 전당대회 현장에서 1인 2표를 행사한다. 이들 대의원은 기간당원들이 선출한다. 기간당원들의 여론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운영위원장에 대한 조사 결과는 밑바닥 표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DY, 영남 이외 모든 지역에서 고른 지지 받아

<시사저널>은 먼저 ‘최고위원으로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2명을 꼽으라’고 물었다. 복수 응답을 요구한 것은 실제로 전당대회장에서 대의원들이 1인 2표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이변은 없었다. 정동영 후보의 우세가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정동영 후보(52.2%)가 김근태 후보(38.5%)를 따돌리고 1위에 뽑혔다. 김혁규 후보(27.5%)는 김두관 후보(24.2%)를 제치고 3위에 올랐다. 40대 재선 그룹 가운데는 임종석 후보(10.4%)가 가장 앞섰고, 김부겸(8.2%)·김영춘(2.8%) 조배숙 후보(2.8%) 순이었다.

관심을 모은 DY와 GT의 격차는 13.7% 포인트였다. 지난 2월2일 4백67명의 중앙·상무위원이 1인 3표로 치른 예선전 때 격차와 거의 일치한다. 예선전 때도 복수 응답률로 따져보면, DY와 GT의 격차는 12.5% 포인트 차였다.

DY는 영남권을 제외하고 전 지역의 운영위원장들에게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 특히 호남 지역의 운영위원장 10명 가운데 7명은 전북이 고향인 DY에게 압도적인 지지(76.5%)를 보냈다. 운영위원장들이 꼽는 DY의 강점은 역시 높은 대중성이다. 수도권의 한 운영위원장은 “DY가 대중성에서 누가 뭐래도 GT를 앞선다. 지방선거 때 DY와 함께 다니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는 당원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 때 당의장을 역임하며 전국 선거를 치른 DY의 조직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난관도 있다. DY를 두고두고 괴롭히는 노인 폄하 발언은 이번에도 골칫거리다. 영남권에서 DY 지지율은 36.4%에 그쳤다. 김혁규·김두관 후보라는 지역 맹주가 버티고 있기도 하지만, ‘노인 폄하’ 발언의 여진이 남아 있다. 대구·경북 운영위원장들은 “노인 폄하 발언으로 DY는 이 지역에서 안 통한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DY가 당의장이 되어 지역을 돌아다니면 노인 폄하 발언이 다시 회자되어 마이너스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 이 지역 운영위원장들의 전언이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DY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는 박명광 의원은 “그 발언은 실언이었고 잘못되었다. DY는 그 발언으로 의원직도 사퇴했고 엎드려 사과했다. 앞으로도 사과하고 또 사과할 것이다.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인복지에 대한 정책을 계속 내겠다”라고 말했다.

DY측은 남은 선거 운동 기간에 지방선거 경쟁력을 쟁점으로 삼을 작정이다. GT측의 당권파 책임론에는 지방선거 승리를 통한 구당론으로 맞불을 놓을 생각이다.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 ‘GT가 미적거리는 행보로  무임승차했다’고 비판했던 네거티브 전략은 더 이상 펼치지 않을 방침이다.

전체적으로 DY에게 뒤지기는 했지만, GT는 이번 조사에서 수도권과 영남 지역의 운영위원장들로부터 비교적 높은 지지를 많았다. 두 지역에서 DY와의 격차를 6~8% 포인트로 바짝 추격했다. 수도권의 한 운영위원장은 “바꿔야 산다는 GT의 주장에 공감한다. DY는 총선 때 주장한 몽골 기병론을 또 들고 나왔다. 달라져야 한다, 변해야 한다는 정서를 GT가 잘 파고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GT, 대의원 지지율은 DY에게 크게 안 뒤져

장관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전국을 누비는 기동전에 돌입했던 GT는 예선전을 거치면서 고무된 분위기이다. 2월2일 예선전에서 GT(325표)가 DY(406표)에게 81표 차로 패하기는 했지만, 30%를 반영한 대의원 2천명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2.3% 포인트 격차밖에 나지 않았다.

 
GT 캠프 쪽은 밑바닥 대의원들 사이에DY 대세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한껏 들떠 있다. GT 선거대책본부 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문용식 한반도재단 사무총장은 “운영위원장이나 중앙위원 등을 상대로 조사하면 열세다. 조직표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하지만 1만여 명이 넘는 대의원이 모이는 본선에서는 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DJ로부터 ‘나보다 더 말을 어렵게 한다’는 핀잔을 들었던 GT가, 직접 화법을 쓰며 스타일의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한계에 달했다는 비판도 있다. 영남권의 한 운영위원장은 “민주화 운동 경력 외에 GT가 내세울 만한 업적이 와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호남권의 한 운영위원장은 “GT가 애쓰고 있다는 말을 당원들이 많이 한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힘이 부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강하다”라며 밑바닥 당심을 전했다.

GT 쪽은 남은 기간에 당권파 책임론을 더 세게 주장할 작정이다.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 공세의 끈을 바짝 조이겠다는 심산이다. 당권파 책임론은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아닌 정책 선거 전략의 하나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당의 얼굴도, 노선도 모두 확 바꾸자며 당심을 파고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GT 캠프의 고민은 뒷심을 발휘할 히든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도 전당대회 본선 경쟁력에서는 DY가 월등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의 선택과 관계없이 누가 당의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한 명만 꼽으라’는 질문에 DY(69.8%)가 절대 우세를 보이며 1위를 차지했다. GT는 16.5%에 그쳤다. 대세론을 묻는 질문에서도 DY는 전 지역에서 당의장감으로 꼽혔다. 서울(80%)·부산(71.4%)·대전(75%)·울산(83.3%)·충남(90.0%)·전남(55.6%)·경북(72.7%)·경남(78.6%) 등 운영위원장 사이에 ‘DY 대세론’이 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DY-GT 뒤를 김혁규 후보(2.7%), 김두관 후보(0.5%)가 이었지만, 미미한 수준이었다.

 
본선에서는 대의원 1만3천5백여 명이 1인 2표를 행사한다. 본선의 관전 포인트는 두 번째 표를 고리로 한 후보 간  합종연횡이다. 그래서 <시사저널>은 두 번째 표의 향방을 분석해보았다(표 참조). 이런 분석을 통해 후보 간 합종연횡에 따라 특정 후보군이 특정 후보군에게 표를 주지 않는 ‘배제 투표’ 경향도 짐작할 수 있다. 당 안팎에서는 정동영-김혁규-임종석 연대와 이에 맞서는 김근태-김두관-김부겸 연대가 공고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김근태 후보를 지지한 운영위원장들은 두 번째 표를 김두관 후보에게 가장 많이 던졌다(41.2%). 그 다음이 정동영 후보(32.4%), 그리고 김부겸 후보(11.8%) 순이었다. 정동영 후보에게 첫 표를 던졌던 운영위원장들의 두 번째 표심은 김혁규(32.9%)·김근태(27.6%)·임종석 후보(15.8%) 순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GT를 지지한 이들이 연대 대상으로 꼽는 김부겸 후보보다는 DY를 더 지지했고, DY를 지지했던 이들은 우호군으로 분류되는 임종석 후보보다는 GT를 더 지지했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만 놓고 보면 ‘정동영-김혁규-임종석’ 대 ‘김근태-김두관-김부겸’ 전선이 밑바닥 당원들 사이에는 그렇게 강하게 퍼져 있다고 볼 수 없다.

김두관·김혁규 3위 싸움 점입가경

하지만 김혁규 후보와 김두관 후보의 두 번 째 표 향방을 분석해보면, 배제 투표 경향은 뚜렷해진다. 김혁규 후보를 지지했던 표심은 정동영(33.3%)·김두관(27.8%)·임종석 후보(16.7%) 순으로 향했다. 같은 지역이라는 이유로 김혁규-김두관을 꼽는 영남권 운영위원장들이 많았다. 하지만 김혁규 후보를 지지했던 표심이 김근태 후보로 향한 것은 5.6%에 불과했다. 사실상 배제 투표다.

김두관 후보의 두번째 표심 향방도 마찬가지다. 김두관 후보를 지지했던 운영위원장들은 김근태 후보(56.4%)에 몰표를 던졌다. 정동영 후보에게 향한 표심은 8.7%에 그쳤다. 역시 배제 투표 경향이 뚜렷하다.

양쪽 캠프 관계자들은 본선이 가까울수록 이런 배제 투표 경향이 더 노골화하리라고 보고 있다. DY 캠프 관계자는 “1인 2표의 함정에 걸리면 DY가 패한다. 승리하려면 배제 투표를 해야 하고 그래야 5~6% 격차가 난다”라고 말했다. GT 캠프 관계자도 “역전 하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연대를 강화해야 승산이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밑바닥 당심에 민감한 운영위원장들 가운데는 다른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인천 지역의 한 운영위원장은 “우리 당의 대권주자인 두 사람이 모두 승리하는 전당대회로 만들자며, DY-GT에게 동시 투표하자는 당원들도 만만치 않다”라고 전했다.

양강 후보에 가리기는 했지만, 3위가 누가 될 것인지도 이번 전당대회의 주요 관심사다. DY와 GT의 러닝메이트가 되다시피 한 김혁규 후보와 김두관 후보가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두 사람은 경남이라는 지역적인 지지 기반까지 겹치면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2월2일 예비 선거에서는 김두관 후보(231표)가 김혁규 후보(229표)를 2표 차로 따돌렸다.

하지만 <시사저널> 조사에서는 김혁규 후보(27.5%)가 김두관 후보(24.2%)를 근소하게 앞질렀다. 김혁규 후보는 영남권 운영위원장 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김후보는 47.3% 지지를 받아 정동영(36.4%)·김두관 후보(32.4%)를 앞섰다. 흥미로운 것은 김혁규 후보가 호남권에서도 비교적 높은 지지(23.5%)를 받았다는 점이다. 호남권의 한 운영위원장은 “한 표를 정동영 후보에게 준다면, 동서화합 차원에서 나머지 한 표는 영남권 후보에게 주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정동영 연대 효과가 실제로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두관 후보는 김근태 후보의 지지도와 보조를 맞추어 수도권에서 김혁규 후보를 앞섰다. 민주당과 통합을 반대하는 김두관 후보의 호남 지지율은 이번 조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민주당과 통합을 주장한 임종석 후보(11.8%)보다 오히려 김두관 후보(17.7%)가 더 높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광주 지역의 한 운영위원장은 “흡수 통합이라면 모를까, 임종석 후보가 주장하는 당 대 당 통합론은 안 하니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통합론에 대한 찬반이 지지 후보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 지방선거 경쟁력과 개혁성이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라고 호남 지역의 당심을 전했다. 

40대 재선 그룹은 <시사저널> 조사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호남권 맹주를 자처하는 염동연 의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임종석 의원과 대구·경북의 맹주 이강철 전 수석이 밀고 있는 김부겸 의원은 4~5위 그룹으로 처졌다. 임종석 의원은 호남에서 김두관 후보에 밀렸다. 김부겸 의원도 영남권에서 맥을 못 추었다.

이들과 함께 예선전을 턱걸이로 통과한 김영춘 후보 등 40대 재선 그룹은 막판 단일화를 이루어 지도부 입성에 성공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 보다는 단일화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견해가 많다. 40대 재선 그룹에 속한 한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이 이미 제 갈 길을 간 상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영춘 후보 측은 본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 주 표적을 임종석 후보에게 맞출 계획이다.

김후보측은 지역에 기반한 낡은 정치를 비판해야 할 임후보가 오히려 지역에 안주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임종석 후보는 통합론의 기치를 더 높이 들고 호남 지역에서 확실한 우위를 선점해 김두관 후보를 맹추격한다는 복안이다. 김부겸 후보도 영남권 대의원을 발판으로 삼아 뒷심을 보일 계획이다.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후보로 나선 조배숙 후보는 여성을 배려하는 당헌·당규 때문인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당헌·당규상 여성 후보가 한 명이면, 최고위원까지 자동 진출한다. 조후보에게 던지는 표는 사표라는 심리가 대의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조후보는 끝까지 뚝심을 발휘하겠다며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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