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파도와 싸우며 바다 밑 노다지 찾는다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1.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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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시추선 두성호 현지취재 / 가스전 발견 확률 4%기대

 울산 앞바다 동남쪽 70km 해상. 북위 35도14분25초. 동경 129도59분14초. 수심 1백43m의 바다한 가운데에 우뚝 솟은 시추선 두성호 갑판위. 오렌지빛 조명의 홍수 속에 둔탁한 시추공의 기계음이 한겨울 깊은 밤바다의 찬 공기를 가른다. 전장 1백m의 갑판 위로는 헬기착륙장의 청색 유도등과 함께 여러가지 색의 비상등이 깜빡인다. 두성호 주위에는 갈매기 떼가 거친 파도를 조롱하듯 가볍게 날며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먹이찾기에 열중하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수평선은 수백미터 밖 오징어잡이 배에서 쏟아져나오는 백색 탐조등으로 뿌연 실루엣을 드리우고 있다. 바다의 사나운 일렁임은 이곳이 지구상에서 강인한 생물들만 사는 곳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그러나 ‘찾는 이’들은 갈매기떼만 아니다. 4층 구조의 두성호에서 시추작업의 최일선격인 맨 윗층 굴착조정실에는 7명의 굴착기술자들의 오늘밤에도 천연가스를 담고 있을 ‘그릇’을 찾기 위해 각종 계기판과 동력전달장치의 끊임없는 회전을 응시하며 시추봉의 굴착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금속성의 마찰음 사이사이를 메우는 갈매기 울음소리뿐이다.

 두성호가 현재 뚫고 있는 6광구7호공은 한국 대륙붕에서 24번째로 이루어지는 시우이다. 잦은 지각운동으로 복잡한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한반도 대륙붕에서 개발가치가 있는 유전이나 가스전을 발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 기적을 이루기 위해 한국석유개발공사 직원 70여명은 망망대해에서 지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시추는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24시간 이어지기 때문에 이곳 두성호에는 낮과 밤이 따로 없다.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드는 도박”
 우리나라 대륙붕에서 상업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가스전을 발견할 확률은 4%. 이미 석유가 생산되는 중동지역에서 새로운 유전이 발견되는 확률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도박을 ‘내가 이길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하는 것’이라고 정의 할 때, 자원개발 역시 큰 도막임에 틀림없다. 석유개발공사에서 해저 시추공 선정을 담당하고 있는 金性勳박사는 “시추는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드는 배팅입니다. 신념없이는 이 같은 엄청난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시추공 하나 뚫는 데 비용 1백억5천만원이 그 엄청난 규모를 말해준다. 기자가 두성호를 방문했던 12월 중순 두성호가 파내려간 지점은 목표지점인 5.5km에서 약 1km를 남겨놓은 곳이었다. 바다 밑 땅속으로 1m 파고 들어가는데 약 2백만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추공의 깊이가 더해갈수록 암반이 견고해져 요즈음 작업속도는 하루 50m에 불과해 2백~3백m씩 파고내려가던 초기단계에 비하면 거북이걸음이다.

 두성호는 6개의 대형 원통형 기둥이 수면 아래에 잠긴 물탱크를 딛고 선체를 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른바 반잠수식인 이 시추선은 물탱크와 기둥의 부력을 이용해 수면에 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갑판 네 귀퉁이에서 뻗어나간 무게가 12톤이나 되는 닻줄 8개가 1km 밖 해저면에 박혀 시추선을 잡아준다.

 향해하는 선박에 비하면 흔들림이 거의 없어 바람 잔 날이면 당구를 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시추선은 바다의 흐름에 따라 완만한 진동을 계속한다. 닻 등을 내려 균현을 잡긴했지만
시추작업은 출렁이는 바다 한 가운데서 진행되기 때문에 시추공을 목표방향으로 내려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추공 안에 들어가는 철제 파이프의 무게만도 수백톤에 이르러 시추선에서 파이프 무게를 지탱해주시 못하면, 파이프가 자체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시추가 불가능해진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어둡고 깊은 바닷속을 헤매며 지하자원을 찾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해저탐사는 원격조정 로봇 소형잠수정이 등장하는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 같다. 시추과장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사고도 영화 속의 긴박한 장면과 비슷하다.

 지난해 8월 두성호는 가스暴噴으로 비상사태에 직면했다. 8월4일 새벽 2시 시추선에는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고, 시추선은 일순간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다. 밤새 내려가던 시추공이 예상 밖의 지점에서 가스층을 건드린 것이다. 치받쳐오는 가스압력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틈도 없이, 시추선은 바닷속에서 부글부글 피어오르는 하얀 가스포말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천연가스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유화수소가 다량 함유된 경우가 종종 있어, 예기치 않은 가스분출은 위험천만이다. 정체미상의 가스에 휩싸인 두성호의 갑판 위는 물론 선실에서도 모든 화기를 꺼야 했다. 수면이 포말로 가득차면 부력이 갑자기 떨어져 거대한 시추선이 단숨에 전복될 위험도 있다. 시추작업에서 가장 위험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시추선이 총지휘부의 뇌리에 얼마전 캐나다에서 비슷한 사고로 시추선이 전복된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10여명의 핵심요원만 남은 채 나머지 인원은 평소 훈련한 대로 헬기 등을 타고 두성호를 탈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 사령탑은 시추선을 위험지역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닻줄을 느슨하게 풀어 약 1백50m 이동 시켰다. 첫 가스폭분이 있은 지 약 열흘 뒤 해저에서 올라오던 가스는 언제 그랬느냐 싶을 정도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긴급대피 상황에서도 혹시 거대한 가스층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하는 한가닥 희망이 시추팀의 포기할 수 없는 미련이었다. “시추선의 운영은 흥분된 분위기보다는 모든 것이 조용하게 돌아가는게 가장 바람직하다”라는 남궁용 계장의 말처럼 시추선에는 이처럼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으로 막연한 긴장감이 감돈다.

시추선에 오르면 일밖에 없다.
 시추선 위의 생활은 겉으론 보긴 차분하지만, 70여명의 탐사기술자와 육체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은 일단 시추선에 오르면 일밖에는 할일이 따로 없다. 술은 입에도 못 대도록 되어 있다. 한 근로자는 “시추선의 12시간 근무제도는 한국인에게 무리한 작업조건이다”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고된 일과를 마치면 대부분 오락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깊은 잠에 빠진다. 2~4주만에 들어오는 ‘육상으로의 탈출’을 손꼽아 기다리며.

 석유탐사로부터 시작해 시추·생산까지 거쳐야하는 단계는 때로는 위험하고 복잡하고 긴 과정이다. 석유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질·지층연구부터 시작된다. 해양탐사는 육지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탐사선을 띄워 에어건으로 해저면에 충격파를 쏘아 되돌아오는 반사파를 분석함으로써 천연자원을 담고 있을 만한 ‘그릇’을 찾는 물리탐사를 거친다.

 물리탐사가 끝나고 시추가 결정되면, 정확한 시추대상 지역을 정하고 시추선을 그 지역으로 이동시킨다. 망망대해에서 한 점에 불과한 좌표를 찾아내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좌표를 정확히 잡기 위해서 4개의 인공위성이 보내는 신호를 받는다. 시추선이 좌표에 가까워지면 닻이 바다 깊숙이 내려져 해저면에 박히고 닻줄의 길이와 각도를 조절함으로써 목표지점으로 서서히 접근한다. 두성호는 원래 목표지점에서 현재 약 10m 벗어나 있지만, 일반적인 해양 시추선의 앵커링에 비하면 거의 오차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시추선이 목표지점에 자리 잡으면 본격적인 시추작업이 시작된다. 시추봉 맨끝에는 굴착장치인 비트가 달려 이것이 회전하면서 땅속으로 파고든다. 비트는 시추선 갑판 위에 있는 동력장치로 돌아간다. 비트가 계속 땅속으로 파고들면 흙과 돌조각들이 비트와 연결돼 있는 파이프를 통해 위로 올라온다. 초기단계에는 직경 36인치 구멍이 뚫어지지만 시추 깊이가 더해지면서 시추공의 크기는 점점 작아져 몇 단계를 거치면 그 크기는 4분의 1정도로 작아진다.

 실제 시추작업은 매우 원시적인 작업의 연속이다. 시추공의 외부압력을 막아내는 케이싱을 설치하기위해서는 각 단계마다 수백미터씩 내려가 있는 드릴링 파이프를 갑판위로 끄집어내야만 한다. 시추작업 도중 파이프의 이음새가 풀려 시추공 안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진흙과의 기나긴 싸움
 석유시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진흙물(이수)이다. 이수는 비트가 땅속을 파고 내려가면서 생기는 작은 돌조각을 띄워 올리고 자체 수압으로 주위 압력을 견뎌냄으로써 시추공을 깨끗이 유지시켜준다. 그리고 마찰에 의해 발생하는 비트의 온도를 식혀주는 냉각제 역할도 한다. 이수에 의해 떠오른 뜨끈뜨끈한 암편을 분석해 지층의 성분과 석유나 가스의 함유량 등을 측정할 수 있다. 시추작업은 어떻게 보면, 진흙과의 싸움 그리고 드릴링 파이프를 넣어다 뺐다 하는 굴착작업의 반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추선의 갑판 위에서 고된 일을 하는 근로자들 가운데 무거운 쇠파이프를 부리다가 허리 부상을 당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가스층의 발견 순간은 과연 어떤한 것일까. 두성호의 현장책임을 맞고 있는 유개공의 李柄俊 부장의 말을 빌면 “땅속으로 파고들던 시추봉의 회전속도가 빨라지고, 굴착레버를 잡고 있던 굴착공의 손이 갑자기 허전해지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를 석유 전문가들은 “드릴링 브레이크가 걸린다” 라고 한다. 지층에 함유된 진흙층을 만나 회전이 더딘 시추봉이 석유매장 가능성이 높은 바삭바삭한 사암층에 들어서게 되면 회전속도가 빨라진다. 베테랑 굴착공은 드릴 레버로 전해지는 진동만으로도 지층의 성분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드릴링 브레이크가 걸리면 시추선을 시추를 중지하고 정밀한 지층검사를 위해 이른바 ‘코어링’이라는 암편채취와 정밀분석을 하게 된다. 유전이나 가스층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액체가 가스 등 유체가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암층을 이루고 있는 모래 사이사이에 끼어 있다.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과 같이 사암층이 가스나 석유를 머금고 있는 것이다. 코어링에 의해 올라온 암편을 조사함으로써 비로소 지층의 공극률·투수율 등을 기초로 가스함유량을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이와 함께 전기·화학·방사능 검층을 통해 지층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를 가린다.

 이같은 종합적인 기술은 필요로 하는 시추작업에는 국제적인 탐사전문회사들의 기술지원이 필수적이다. 두성호에도 미국의 트라이톤사와 프랑스의 슐렘버저사 등 국내외 28개사에서 파견된 기술자들이 석유개발 공사의 총괄 아래 일하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추지점의 지하자원 부존 가능성이 높을 경우, 생산가능성을 측정하기 위해 생산성실험인 DST를 실시한다. 시추공을 아래 위로 막은 뒤, 수천미터 아래 지하에서 소규모의 폭발을 일으켜 작은 튜브를 삽입해 기름이나 가스를 시추선 위로 뿜어올린다. 그 다음에는 유전의 크기를 알아보기 위해 3~4개의 평가정을 주위에 뚫어 유전의 매장량을 알아보고 이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실제적인 생산을 결정지을 수가 있다.

 생산은 시추작업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한 일인지도 모른다. 생산된 가스나 원유를 육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낡은 유조선을 이용하거나 해저송유관을 설치해야만 하는데, 이에 따른 비용이 엄청나다. 현재 동자부와 유개공은 이 7호공에서 4개의 천연가스층을 확인함에 따라 가스층에 대한 생산성 시험을 실시, 정확한 매장량과 생산규모를 파악할 계획이다. 유개공에 따르면, 천연가스층이 확인된 곳은 대륙붕 지하 3.3~3.7km 까지 사이의 4개 구간이다.

뻗어가는 산유국의 꿈
 지난 26년간 우리나라에서는 포항일대에서 이루어진 육상시추 19개 구멍과 대륙붕시추 24개 등 모두 42개의 시추공을 뚫었다. 그러나 경제성이 있는 천연가스전이나 유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지구상의 어느 지역을 파보더라도 지각은 미량의석유나 가스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문제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발할 만큼 경제성이 잇는 매장량을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확인된 바로는 6광구에서 발견된 가스총은 어느 하나도 경제성이 없는 것이다. 그만큼 시추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좌절의 쓴맛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정신적인 노동도 함께 해야 한다.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는 보람을 빼면, 이 일에 종사할 수 없다”라는 이부장의 말에서 자원개발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두성호가 지금 시추하고 있는 돌고래 6구조는 지난 해 가스층이 발견된 5구조에서 서쪽으로 약 40km 떨어져 있다. 6구조에서 2천 3백억입방피트 이상의 가스매장량이 확인되면 5·6구조를 하나로 묶어 개발할 수 있다고 한다. 두 가스전을 하나의 단위로 해서 개발하려면 두개 가스총의 매장량이 모두 3천억입방피트 이상이 되어야 한다.

 70년 해저자원 개발법을 만들어 국내 대륙붕에서 유전탐사를 시작한 우리나라는 불과 20년의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동해 6-1광구 돌고래 구조에서 잇따라 가스를 발견하고 마두라유전 등 해외유전개발에서도 일부 성공을 거두는 등 산유국의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국내 유전개발은 아직 이렇다할 성과가 없지만, 지난 20여년의 국내 탐사기술이 크게 향상된 것도 부수적인 성과로 꼽을 수 있다.

 페르시아만사태가 몰고온 에너지위기는 우리에게 자원자립국과 철저한 에너지절약 둘 가운데 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까지 국내 소요 원유량의 20%를 국내유전 또는 해외에서 개발한 원유로 충당한다는 장기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작년에는 6천km, 올해부터 97년까지 해마다 2천km의 물리탐사를 실시하고, 매년 4개공의 탐사시추를 해나가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해양탐사와 생산은 현재지구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해저석유와 가스개발이 투자가치가 있을 때까지 탐사인들은 또 다른 해저의 노다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어떠한 심연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두성호에서서 일하고 있는 이들은 부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헬기를 기다리고 있는 기자에게 “의무감이 앞선다. 이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따라서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고 특히 과거와 같이 특정한 목적에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라며 석유탐사 관계자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작은 점으로 사라지는 두성호를 뒤로 하고 헬기에서 내려다본 부산상공은 각종 차량과 공장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가득했다. 뭍의 ‘쓰는 이’의 방만함이 바다의 ‘찾는 이’의 노력과 뚜렷하게 대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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