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간선도로 답사하는 유학생 도도로키 히로시씨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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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땅 옛길을두발로 증언한다

  ‘조국땅을 떠나 이국 땅을 떠도는 고독한 일본 시민,’현재 서울대 대학원에서 역사지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 도도로키 히로시(30)씨는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 이러한 자기 묘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는이미 3년째 한국의 끊어진 옛길을 잇기 위해 말 그대로 고독하게 이국 땅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가 스스로 고독하다 함은 대부분의 옛길 답사를 순전히 혼자 힘으로 이루었기 때문이다.그가 이국땅을떠돈다 함은,정작 주인인한국사람들에게 조차 이제는기억에서 희미한 옛길만을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찾아 해맸다’는 표현만으로는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하다. 매번 여전에 나설 때면 해뜰녘부터 해질 무렵까지 그는 걷고 또 걷기를 되룰이 한다. 조선 시대에 어깨짐을 진 장꾼들이 반을 도와 떠돌던 바로 그 길들을, 그는 옛 지도에 표시된 그대로 고개를넘고 덤불을 헤쳐가며 찾아 해매는 것이다.

  영남대로  의주대로 삼남대로가 그가 걸었거나 현재 걷고 있는 한국의 옛길목록이다.가장 긴 거리인 의주대로 (한양 ~의주)답사 여정은 분단 상황 탓에 아쉽게도 임진나루에 서 끝내야 했다.

그의 옛길 겅험 중 백미는영남대로 (한양~동래)이다. 영남대로는 의주대로에 이어 한양과 동래를 잇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조선시대 제2의 고속도로였다. 고지도 연구가인 이우형씨의 설명에 따르면, 용인  충주 대구  밀양을 경유해 동래에 닿는이 길을통해 조선 시대 공문서와 우편물이 오갔고, 세금과 조긍으로 바치는 특산물 따위가 운반되었으며,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가 출몰하기도 했다.

  히로시 씨는사연 많고 곡절 많은 이 길을 지난해 1월3일부터 6월13일 까지 일요일마다 열아홉 차례 나누어 걸었다 최근 그가 직접 써서 펴낸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한울)는 한국인들조차 감히 엄두를내지 못했고 전례도 찾아 보기 어려운 ‘대장정’의 생생한 기록인 셈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출발 예정지는있었으되, 도착 목표지점은 없어다. 답사를이어가기 위해 ‘지난번 답사를 끝낸 곳’으로 열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 외에는, 순전히걷기만으 고집했기 때문이다.

 비록 ‘대로’라고 부르지만 영남대로를 오늘날 고속도로나 국도와 같은 같은 것으로 여기면 여간 큰 착각이아니다. 도로 너비는 넓은 경우 10m에 이르는것도 있지만, 중간 길은 7m. 좁은 길은 3m에 불과한 소로였으며,곳곳에 험준한 고개와 비탈, 난떠러지가 있었던 것이다.

  히로시 씨가 영남대로 답사 기간에 걸은거리는 하루 평균 25㎞,하지만 그는 겨우 10㎞만 걷고 하루 여정을 마친 때도 있었다. 저수지나 논바닥으로 변한 길을 만나 막막해 했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반대로 그는 옛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데다 평탄하기까지 한 경남청오~밀양 구간을걸었을때는 하루에 꼬박 40㎞를 강행군하기도 했다.

  히로시 씨는 한국의 옛길을 접한 때는 1998년 10월께, 그러니까 서울대에서 석사 과정 2학기째를 맞던 무렵이었다. 당시 히롯씨는 석사 항rdnl 논문 주제로 일제 시대에 건설된 사설 철도 노선 가운데 하나인 ‘수여선’(수원~여주0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전북철도(이리~전주), 조선경남철도(장호원~천안~장항)등 수많은사설 철도(지역 철도)가경의선등 간선 철도망에 가려 연구가 부진했다는 점에 주목하고,이같은 사설 철도 중하나인수여선을 자신의 연구 과제로 골랐던 것이다.

  이때 그에게 낯선 책한권이 손에 들어왔다. 지도 교수인 이정만 교수가 고려대 지리학과 최영준교수의 <영남대로>(현재 절판)르 추천한 것이다. 수여선을 이해하는데 <영남대로>는 쾌 도움을 주는 책이었다. 영남대로이 일부 구간이 수여선 구간과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자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렇다,한국의 옛긱을 직접 걸어보자.’

“옛길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관심 아쉬워”
 일본 가나가와 현 출신인 히로시 씨는 유년시절 꿈이 ‘버스운전기사’나 ‘여차 기관사’가 되는 것이었을 정도로 유난히 교통 기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또 중학교1학년때 열차를 타고 일본 국철의 모든 노선(당시 총연장 1만9천㎞)을 다녀보겠다고 결심하고 3년만에 목표를 이루었을정도로 독한 구석도 있었다. 교통 기관에 대한 동경은 성장한 뒤에도 그대로 이어져,그는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뒤 한 때는 여행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영남대로 답사를 마친 그는 지난 2월부터 삼남대로(한양~제주)를걷고 있다.이미 그의 여정은경기  충청 지방을 지나 전북 정읍에까지 닿아 있다그 사이 그가펴낸 책이 알려지면서 그에게는 한국 사람도 해내지 못한 ‘쾌거’에 감동해 따라나서겠다는 사람도 생겼다. 앞으로 그는 관동대로(한양~평해)  경흥대로(한양~서수라)등남한의 조선 시대 옉ㄹ을 모두 답사할 계획을 갖고 있다.

  ‘왜 하필 한국의 옛길을 걷는가’라는 질문에 히로시씨는 ‘어려서부터의 취미와 역사지리학도로서 갖게되는 당연항 호김’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또 옛길을 실제 답사해 한 일 양국의 전통 지리학을 비교할수 있는것도 적지 않은 소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며 옛길에 e한 한국인의 무관심을 따끔하게 꼬집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국의 김정호에 비견되는 이본의 지도 제작자로는 이노우 다다타카()가 꼽히는데,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는 그를 길기 위해 일본 정부와 언론은 ‘이노우 워킹’이라는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2년째 운영하고 있다 또 df본에서 가장 대표적인 옛기도 도카이도(東海道  도쿄~쿄토 현재 정부 차원에서 보존 홍보 댁이 수립되고 있다 개발 우선 청책과 무관심 때문에 방치된 한국의 옛길이 처한 상황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서두르지 않는한 한국의 옛길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옛길을 증언할 생존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보존  복원을 우한 조사작업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라고 히로시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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