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진단한 중산층의 두 얼굴
  • 이성남 사회.문화부 차장대우 ()
  • 승인 199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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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변혁·안정 사이 고민하는 ‘오늘의 모습’ 그려
 중산층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소비와 왕성한 투자의 주체로 알려져 있다. 또 자유를 추구하면서 독재를 배격하는 세력이자, 권력 및 조세 남용을 견제하는 시민정신의 담당자로 파악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성향은 보수성이 강하여 급진개혁에 쉽게 가담하지 않는 완고함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중산층은 변혁에 대한 지향과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교차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87년 6월 민주화투쟁을 끌어내는 저력을 보였는가 하면, 그 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는 어느덧 안정희구세력으로 변모하는 무정형의 궤적을 그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89년 4월에 조사한 통계자료는 중산층의 의식구조를 파악하는 하나의 잣대가 된다. 전국 4천8백96가구를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중산층’에 속한다는 응답이 도시지역의 경우 61.5%에 이른다. 이들 중 42.6%가 우리 사회에 만연된 빈부격차의 원인으로 ‘자본주의 자체의 체제모순’을 꼽았으며 ‘35.5%가 정부의 정책 잘못’이라고 응답함으로써 이들의 비판성향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82%가 정부의 정책발표를 ‘믿을 수 없거나 그런 것 같다’고 응답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을 나타냈으며, 직장동료나 상사를 ‘믿을 수 있다’는 응답도 57%에 그쳤다.

  6월항쟁을 전후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 사회의 여기저기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중산층의 자화상은 어떤 것인가. 최근 중산층의 삶을 진단하는 소설 9편이 함께 묶여 출간(《그림 없는 그림책》 웅진출판)됐다. 작가들의 눈에 투영된 중산층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최인석의 <그림 없는 그림책>은 외관상 행복한 생활을 꾸려나가는 한 중산층 가정을 통해서 이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아내와 부도덕한 성적 방종을 일삼는 남편, 이들에게 가정은 이미 상호신뢰의 본래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최대이윤을 창출하는 경제단위로서만 존재한다. 남편은 혼외정사를 하면서 돈밖에 모르는 아내에게, 또 회사상사와 친구를 향해,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까지 자학의 욕설을 퍼붓는다.

  “임마, 점잖은 얼굴로 정치가 어쩌고 민주주의가 어쩌고 하지만, 이런데 와서 계집애나 끼고 자빠져 있고. 더러운 놈. 마누라가 그런 짓 안하고 다녔으면 니가 그만한 집에 살겠냐? … 너같은 놈이 대학 나와 사회 이끌어 가는 중추야? … 문 목사가 어쩌고 어째? 평양이 어쨌다구? 통일이 어떻게 됐어? … 아사리판도 니가 놀아나는 아사리판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 있겠냐?” 작중인물의 입을 빌어 작가는 가정파탄의 원인이 개인의 탓보다는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화된 세계상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서울 상계동 아파트단지를 배경으로 한 최성각의 <축제의 밤>은 이제 막 궁핍에서 벗어난 중산층 주부들의 허위의식과 집단이기주의를 풍자하고 있다. 소유에 대한 중산층 주부들의 집착과 ‘자기 것’을 지키겠다는 유별난 방어의식이 공격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집단심리를 작가는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들은 “노점상 철거시켜 쾌적한 주거환경 되찾자”고 외친다. 그리고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어떤 주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허리를 꺾으며 주저앉는다. 대개 구호를 한번 외치고나면 와 하고 밝은 웃음소리가 일제히 터지곤 한다. 한번도 이런 짓들을 해본 적이 없는데, 막상 해보니 조금 어색하지만 여간 재미있지 않다는 얼굴이다. 아파트 평수와 시세를 인생의 성패를 가름하는 척도로 삼는 그들은 자신들의 안락하고 품위 있는 삶을 지키기 위한 행위는, 그것이 비록 타인의 생존권을 짓밟는 엄청난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정당방위이고 따라서 결코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나 사회적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합리화한다.

허의의식과 집단이기주의
 이들이 모두 사회운동과는 무관한 데 반해 김만옥의 <보청기 2>에는 4·19를 직접 경험한 중년여성이 등장한다. 6월항쟁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시국에 대한 불안과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현실에 대한 관심을 차단한 채 자기 가족의 평화와 안일만을 추구하는 한 중년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그리고 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대학생 딸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라는 데에 국한되며, 혹은 마지못해 참여하더라도 선두에 나서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적이 고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네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해라. 다만 잡히지도 말고 다치지도 말아라”는 염원이나 “후배를 가르치려 들거나 방관하는 친구들에게 동참하라고 권하지마. 그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할 테니까. 제발 남앞에 나서지는 마라”는 말은 이미 작중인물만의 것이 아니다. 대학생을 자식으로 둔 모든 부모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보청기’라는 상징적 매개물을 통해 한 개인이 결코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면서도 애써 그것과 무관함을 가장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칩거해 살아가려는 허위의식을 묘파하고 있다.

  김인숙의 <부정> 역시 중산층의 기회주의적 속성과 이중성을 비판한 작품이다. 사회모순과 조직폭력에 대한 불만과 민주화에의 열망은 있으나, 그것을 공표 함으로써 발생할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침묵을 선택하는 중산층의 패배주의를 그리고 있다. ‘주민 일동의 이름으로 걸린 용공조작 플래카드’를 찢은 혐의로 경찰에 구타당한 남편은 폭력경찰을 고소하겠다고 주장하고, 이에 경찰은 여차하면 음주운전으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한다. 그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쏘아붙인다.

  “당신 얘기가 신문에 난다고 생각해 봐. 당신 회사에서 뭐라고 그러겠어? 애국자 났다고 표창줄 거 같애? 그렇잖아도 지금 사무직 노존지 뭔지 때문에 야단들이라며, 괜히 당신이 주동자로 찍히기라도 해 봐. 지금 한참 일해야 할 나이에 당신 괜히 찍히기라도 하면…”

 중산층의 부정적 속성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 위의 작품외에 막연하게나마 극복의 전망이 제시된 작품도 있다. 유순하의 <매판일지>는 외국인 투자기업에 근무하는 한국인의 왜곡된 의식과 매판적인 역할을 파헤치고 있다. 전진우의 <아로아나의 눈>은 자본과 권력의 주구노릇을 하고 있는 언론의 부정적 생리를, 김춘복의 <평교사 황보 선생의 어느 날>은 학교당국에 맞서 싸우는 초로의 평교사를 통해 교육현장까지 예속시켰던 ‘5공현실’을 폭로하고 있다.  윤정모의 <빛>은 도회지적인 생활방식에 젖은 30대 여교사가 피폐해진 농촌현실을 통해 각성되어 가는 과정을, 현기영의 <위기의 사내>는 작가의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소시민의 일상적 삶에 함몰되어 가는 중년교사가 민주화 투쟁에 동참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올바른 삶의 지표를 상실한 채 안정과 변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오늘의 중산층. “알맹이가 빠진 껍질만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건강한 시민정신의 결집체로서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작가들은 모두 동의하고 있다. 李成男 사회·문화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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