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5백 노동자 중 4천명 해고
  • 베를린.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1.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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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베를린 최대 기업 EAW

"유감스럽지만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 공영신탁기구가 우리 기업의 장래에 대해 여러 신문ㆍ잡지에 난 기사를 보고 함구령이 내렸다“ 동베를린에서 가장 큰 기업인 ‘베를린 전기기기 유한회사’(Elektro Apparate Werke Berlin Gmbh. 이하 EAW) 운영에 관한 ≪슈피겔≫지의 어떤 내용이 공영신탁기구를 자극했는지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6천5백명이 고용되어 있던 이 기업이 겪고 있는 전환과정은 사회주의 국영기업을 몇 달만에 자본주의 민영기업으로 바꾸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인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예이다.

24개 기업을 포괄하는 콤비나트(종업원 3만4천명)의 중심기업은 EAW는 한때 8천5백명까지 고용해 5만가지 이상의 전기제품을 비롯, 컴퓨터까지 생산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전기콘체른(기업그룹)에 속하는 AEG가 1928년에 세운 이 기기공장은 2차대전 후 소련군령에 따라 EAW로 바뀌었다. 동독의 공산당정권이 무너지자 서독에 본사를 둔 AEG는 재빨리 사절단을 보내 협력과 합작투자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 기업체를 중심으로 한 동서독 협력사업은 “비누방울 터지듯이”무산되었다.

작년말에 이르러서는 어떤 서독기업도 EAW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거창한 협력사업 계획 중 현재 남은 것은 AEG 하청을 받아 계량기를 생산하는 30명 규모의 사업뿐이다. 서독에서 파트너로 온 기업의 한 매니저는 “생산엔 관심이 없고 우리 시장에만 관심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거래선들은 한결같이 지불능력이 떨어진 데다가 재고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EAW와 더 이상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달이 갈수록 매출액은 떨어졌고 매번 예상을 훨씬 밑돌았다.

작년 10월부터 이 기업을 관리하기 위해 서독에서 ‘수입’된 볼프강 텔쇼우 사장은 “내가 이곳에 온 이래 우리가 한 일은 계획치를 하향 조정하는 것뿐이었다”고 실토하고 있다. 텔쇼우 사장에 따르면 남아 있는 노동자 중 이미 1천9백65명의 해고가 결정돼 1천명 정도가 이미 2월말에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신임사장의 인사관리 계획에 따르면 2천5백명만 남고 전부 해고될 것이다.

이 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1백여명의 전문인력이 전부 서독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더욱 가중되고 있다. 주로 마케팅분야에서 일하던 이들은 고객리스트를 통째로 가지고 AEG로 자리를 옮겼다.

EAW 경영진은 새 고객을 구하기 위해 멀리 이집트ㆍ브라질가지 대표단을 보냈고, 환경보호설비 제작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것은 너무 먼 장래의 일이다. 공영신탁기구가 재촉하고 있는 기업합리화 방안조차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EAW 자체의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전망이 밝은 상담조차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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