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과 죽음의 지옥도”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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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장편소설 《한라산의 노을》 3권 펴낸 한림화씨

 제주의 작가 한림화(41)씨가 최근 한길사에서 펴낸 전작장편소설 《한라산의 노을》(전3권)은 ‘제주 4·3’을 다룬 최초의 장편소설로, 그 “죽임과 죽음의 지옥도”를 모성의 시각에서 그려내고 있다. “아직도 씌어지지 않은 역사”인 4·3은 제주사람들 사이에서도 최근까지 ‘금기’로 여겨져 거의 알려지지 않아왔다. 현기영씨가 70년대 후반에 중편 《순이삼촌》을 발표하면서 4·3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문학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산하씨의 미완성 장시 <한라산>이 충격을 던지던 80년대 후반이었다.

 여성의 시각으로 씌여진 최초의 ‘4·3문학’이기도 한 이 소설은 47년 제주시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시작된다. 48년 4월3일 새벽 무장봉기로 시작된 4·3은 54년 9월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풀릴 때까지의 7년7개월을 이르지만, 《한라산의 노을》은47년부터 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까지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구한말 제주땅에서 일어난 이재수의 난이나 방성칠의 난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제주잠수(해녀)의 항쟁을 떠올리며 4·3이 제주수난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 장편은 제주의 중산간마을인 용마슬과 새마슬을 주 공간으로 삼고, 무장대 총사령관으로 끝까지 제주에 남아 제주민중을 위해 죽어간 이덕구를 중심으로, 지식인 어부농민 잠수 경찰관 기자 토벌대 등 다양한 계층과 남녀노소를 아우르는데, 그것은 4·3이 제주섬 전역, 제주사람 모두를 그 당시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마흔다섯살이 넘은 제주사람들은 ‘무자년 난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며, 제주사람 누구나 멀어도 5촌 이내에 그때 죽은 이들이 있는 것이다.

 한림화씨가 처음부터 제주 4·3을 문학 속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제주 성산에서 태어나 소녀시절에 제주를 떠났다가 80년 귀향했을 때 쓰고싶었던 것은 “일만팔천여 신이 사는, 제주섬에 무진장 깔린 신화”들이었다. 그러나 굿판을 돌아다녀도 남수항쟁을 취재하러 돌아다녀도 그 이야기들은 반드시 4·3에서 응어리지곤 했다.

 “대한민국 건국의 주춧돌 즉 반공이데올로기의 강화를 위해, 순수하게 독립운동을 벌였던 제주민중이 희생당한 것이 4·3”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제주사람들은 8·15 직후 잔류해 있던 일본군이 미군정에 제주도를 넘겨주는 걸 목격하면서 “아직 독립이 안됐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작가는 순수한 민중봉기의 중간에 끼어들어 이를 이용한 남로당과, 민중봉기를 이념전쟁으로 확대시킨 미군정을 다같이 비판하면서, 제주사람들이 대를 물려온 “불의를 보면 와 일어서는 꼿꼿한 정신, 죽음을 무릅쓰고 진실을 얻으려는 정신”을 높이 산다. 나아가 잠수 대표격으로 입산한 김순덕 등 여성의 눈을 통해 모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김순덕은 대토벌이 시작되면서 무장대도 인명을 살상하자 이를 만류하는데, ‘사람 죽이기 경주’를 벌이는 토벌대와 무장대를 비판하면서 ‘죽임이 아닌 살림’을 역설하는 것이다.

 “하나의 문학작품이라기보다는 ‘4·3의 正史’로 읽혀지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을 염두에 둔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소설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은 ‘무엇’을 다루었냐는 측면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무엇을 ‘어떻게’ 다루었느냐 하는, 소설미학적 평가에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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