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냐 우회냐 갈림길에 선 노대통령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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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강공 한계 … 여야 ‘광역정국’으로 전환 시도

 5월정국이 최대의 고비를 맞으면서 盧泰愚 대통령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대통령의 선택은 정면돌파냐 우회냐 하는 양자택일로 압축된다. 14일 치러진 姜慶大군 장례식, 광주민주화운동 11돌인 18일 대집회, 신민당의 19일 대전 국정보고대회 등이 노대통령의 결심을 다그치고 있다.

 金大中 총재가 19일 대전 집회에 이어 서울 집회를 25일로 잡은 것도 노대통령의 선택을 재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총재는 광역의회선거 전에 내각사퇴 등 최대한 결실을 얻어내야만 한다. 만약 노대통령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채 선거정국으로 끌려갈 경우, 신민당으로서는 정당공천제로 실시되는 광역의회선거에서 큰 부담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의 선택의 시기는 5월 넷째주인 20~25일 사이일 듯하다. 강경대군 치사사건 이후 줄곧 정면돌파만 고집한 여권수뇌부는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만났다. 치사사건 발생 17일만에 처음으로 노대통령과 당 수뇌부가 시국수습책을 논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이 가운데 민자당은 22일, 신민당은 20일 각각 시·도 광역의회 의원후보 공천자를 발표하기로 했고, 각 당은 내부적으로 13, 14일부터 공천심사에 들어가는 등 선거체제를 가동했다. 여야 모두 현 비상시국을 매듭짓고 광역선거 정국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데는 같은 입장을 보인 셈이다.

 시국의 흐름을 결정지을 변수중 노대통령의 선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신민당 김총재의 태도이다. 제154회 임시국회에서 민자당은 경찰·국가보안법을 강행 처리했다. 다음날인 12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 농성을 끝낸 김총재는 1주일간의 시간을 준 뒤 3개항의 요구조건을 받아주지 않으면 재야와 함께 장외 연대투쟁을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盧在鳳 내각 사퇴 주장에서 “노태우씨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총재가 강경 일변도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신민당의 최대 관심은 6월 광역선거에서의 승리이다. 신민당이 대여 공세의 수위를 조절하며 고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능한 한 여권에 깊은 상처를 주되 ‘치명상’을 입혀 정치판을 깨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김총재의 기본적인 시국인식이다. 강군 사건이 터진 직후 재야 및 운동권과의 장외투쟁 동참 여부를 놓고 김총재가 갈짓자 걸음을 보인 것, 장외투쟁을 선언하면서 동시에 19일 대전 집회 전까지 1주일간의 행동 유예기간을 둔 것 등은 김총재의 이런 시국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처럼 신민당의 공세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강행 처리한 직후 민자당의 일부의원들은 “김대중 총재도 내심 바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안 표결을 놓고 민자당 의원과 신민당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심한 몸싸움을 벌이자, 민주당 의원들은 “정치 쇼 그만하라”며 두 당을 싸잡아 공격하기도 했다. 신민당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이번 임시국회에서마저 3년간 끌어온 개혁입법이 아무런 성과 없이 또 유야무야될 경우 신민당도 부담이 될 것이며, 신민당으로서는 광역선거에서 민자당의 단독 처리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를 얻을 수 있어 적당히 대처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신민당은 노재봉 내각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10일 오전 金令培 총무는 의원총회에서 “노재봉 총리는 이미 멍이 들었다. 그냥 놔둬도 총리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할 것이다. 사퇴는 시간 문제다”라고 진단했다. 같은 날 오후 민자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보안법을 강행 처리했다. 법안 통과 후 민자당 민주계 중진 ㅎ의원은 “이제 노총리와 내각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노대통령이 야권의 주장에 밀려 내각을 사퇴시키는 모습으로 비쳐질까봐 주저하는 것 같다. 노대통령이 통치권 차원에서, 시국 수습책의 일환으로 내각을 사퇴시킴으로써 최대한 모양새를 갖추려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군 치사사건 이후 가두시위가 계속되는 동안 국회는 개회중이었다. 그러나 민자·신민·민주·민중당 등 여야는 시국수습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민자당내 계파간 알력은 여전했다. 국가보안법의 강행 처리 때 있었던 민정계와 민주계의 치졸한 머리싸움은 얄밉기까지 했다.

 김대표 측근인 한 중진의원은 “본회의 강행 처리 직전에 열린 민자당 의원총회에서 법안 강행처리의 책임을 김대표에게 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상시 의총에서 김대표가 먼저 발언을 하곤 했다. 그런데 강행 처리의 불가피성을 논의한 이날 의총에서 김대표의 발언 순서가 맨 뒤로 잡혀 있었다. 김대표로 하여금 결론을 맺게 함으로써 책임을 지우려는 속셈이었다. 지난 7·14날치기 때는 金在光 국회부의장(민주계)을 내세우더니 이번에는 김대표를 이용하려 했다”고 민정계를 비난했다.

 정부와 여당은 석가탄신일에 시국관련 구속자를 대거 석방해 일방 처리한 국가보안법의 혜택을 생색내면서 달아오른 시국의 열기를 누그러뜨리려 하고 있다.

 때아닌 5월의 살얼음판 정국에 또 다른 대형사건이 터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는 정부 여당이나 신민당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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