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로 잘못보고 쏘았다? ‘객체의 착오’ 여부 초점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1.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생이 형 쏜 사냥사고, 과실 결론 아직 못내려

  형법이론서에 보면 ‘객체의 착오라는 것이 있다. 행위자 행위객체의 특성, 특히 동일성에 관하여 착오한 경우를 말한다. 학자들은 이를 인식한 행위객체와 결과가 발생한 행위객체의 성질에 따라 同가치적인 것과 異가치적인 두가지 양태로 나누고 있다. 즉 ㄱ씨를 죽이려다 잘못 보아 ㄴ씨를 죽이게 된 경우(사람 - 사람)가 동가치적인 것에 해당되고 노루로 보고 쏜 것이 사람을 잡게 된 경우(노루 - 사람)는 이가치적인 것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앞의 경우는 결과가 어찌됐건 사람을 죽이려던 의사가 분명했으므로 故意旣遂(고의에서 비롯된 살인)로 보고 있으나 뒤의 경우에는 착오가 인정돼 어떠한 경우에도 고의가 배제된다는 것이 통설로 돼 있다.

 지난 18일 강원도 횡성에서 일어난 사냥꾼 형제의 사고는 오인에 의한 것이었다는 동생의 진술로 보면 바로 ‘이가치적인 객체간의 착오’의 경우이다. 동생 宋錫榮씨(34 · 고물업 ·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는 경찰에서 과실치사 혐의로 1차조사를 받은 뒤 검찰의 불구속입건 지휘에 따라 일단 귀가조치됐다.

 그러나 송씨에 대한 수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검찰과 경찰은 ‘착오가 아닌 경우’와 관계될 수도 있는 몇가지 의문점을 풀어내기 위해 송씨를 계속 수사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객체의 착오’가 아니라 사실은 ‘객체의 정확한 인식’에 의한 고의적 발사였을지도 모른다는,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의문점 풀기 위해 불구속으로 계속 조사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원주지청의 許承泰검사는 “현재로서는 친형을 사망케 한 데 대한 피의자의 심적인 고통과 구속할 경우 두아들 중 하나는 잃고 하나는 감옥에 보내게 되는 부모의 충격 등을 참작, 과실로 인정하여 불구속 수사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구속 처리가 정상참작의 뜻이 있는 반면 “고의성 여부를 가려내기 위한 시간 확보의 의미도 포함된 조치”임을 許검사는 감추지 않고 있다. 구속이면 20일안에 기소해야 하나 불구속이면 3개월 동안 조사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횡성경찰서 형사계장 陣廣洙경사는 “형제간의 우애가 좋았다는 가족들의 말과 자가용도
못가질 만큼 재산이 많지 않은 점, 또 현장검증의 결과로 볼 때 일단은 과실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15m 거리에서 정면으로 얼굴과 목에 두발을 차례로 명중시킨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바로 이 대목이 사건의 원인을 착오로 결론내는 데 주저하게끔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사고현장에 비록 1.5~3m의 싸리나무, 찔레나무 등이 우거져 있고 숨진 송씨의 옷이 갈색계통이어서 15m 거리라면 물체를 잘 식별할 수 없었을 것이라 해도 사람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그대로 두발씩이나 쏘았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고 말한다. 송석영씨가 사용한 총은 반자동 5연발 브로닝사 제품으로, 엽사경력은 3년이라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혹시 유인한 게 아니었을까’하며 경찰이 의문부호를 찍고 있는 부분은 형을 전화로 불러 나중에 현지에 오게 한 사실, 그의 의고모 이갑록(56)씨와 함께 15일 횡성군 안흥면 지구2리 상터마을의 홍모씨집에 민박, 이날 혼자 사냥을 한차례 다녀왔고 다음날 아침 일찍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형 宋錫燦(36)씨에게 “산에 노루와 멧돼지의 자국이 많이 보인다. 형이 몰아주면 좋겠으니 빨리 내려와서 한 마리 잡아 피도 마시고 그러자”고 전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형은 이날 낮 막노동 동료인 같은 동네의 곽모(51)씨와 함께 현지에 도착, 2박3일간 몰이꾼 노릇을 하며 동생을 따라다니다 이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막판 몇 마리 더 잡기 위한” 사냥도중 변을 당했다. 곽씨에 따르면 자신과 의고모 이씨는 배낭을 지고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고 형제는 자신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산비탈을 따라 하산했었는데 얼마후 건너편 계곡 쪽으로 들어가더니 총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택시기사, “다른 응급환자 수송 때와 달랐다”
 경찰은 숨진 송석찬씨가 “술을 워낙 좋아해 여태 장가도 못갔었고 석영이가 그애를 보살펴 왔다”는 아버지 宋武龍(71)씨의 말에도 얼마간 비중을 두고 있다. 이와 함께 “다른 응급환자를 태울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고 말하는 안흥리 개인택시 운전사 김모(39)씨 등 사고발생 직후의 목격자와 송석찬씨의 주변인물들을 상대로 수사를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식을 잃은 송석찬씨를 원주기독병원까지 태우고 갔던 김씨는 일행 3명에 대해 “이미 체념했는지 현장에서부터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총이나 배낭을 침착하게 챙기는 모습이었고 환자의 맥박을 확인하거나 빨리가자고 재촉하는 등의 응급환자 가족들이 흔히 보이는 행동은 거의 없어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한 식구를 같은 식구에 의해 잃어버린 송씨일가의 불행앞에 참으로 ‘딱하게’ 제기되고 있는 이러한 의문점들. 이 비극의 일가는 진실로 ‘객체의 착오’로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문점을 풀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수사당국의 입장이라면 그 수사는 너무 비정한 것일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