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얼굴’이 달라지고 있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1.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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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본문 ‘읽히기’에서 ‘보여주기’로 …편집과 미술의 관계 “아직도 종속적”

 잡지 표지는 그 잡지가 세상을 읽는 눈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표지는 그 잡지에 대한 첫인상이며 창문이다. 표지는 그래서 ‘유혹'이다. 잡지를 만드는 이와 독자 사이의 경계에 놓여 있는 표지는 설령 아름다운 낯빛으로 웃고 있다 해도 기실은 ‘매우 초조'하다. 독자의 손에 들리지 않는 잡지는 잡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6월호로 첫선을 보인 ≪아이 매거진≫(발행인 이종환)이나 월간 ≪예감≫(발행인 박형규)은 그 표지에서부터 기존의 대중잡지와 다른 ‘얼굴'을 내놓고 있다. 우선 널리 알려진 대중문화의 스타가 아니고 ‘총천연색'을 쓰지 않았으며, 본문 구성과 판형에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당연히 잡지의 내용도 ‘나이 많은' 잡지와 다르다. 광고에서 사용되는 개념인 차별화 전략에 바탕한 이들 창간호에 대한 일차적 반응은 좋다 나쁘다의 차원이라기보다는 잡지문화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외에도 ≪샘이깊은물≫ ≪월간 오픈≫ ≪세계와 나≫ 등 비교적 지령이 길지 않은 잡지들이 같은 성격의 기존잡지들과는 다른 표지를 선보이고 있어 잡지문화의 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시각 디자인 이해하는 편집자 드물어
잡지 창간호는 기존 잡지의 모든 틀을 거부하고 나선다. 잡지의 창간정신이란 무릇 否定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아이 매거진≫이나 ≪예감≫의 등장은 한국 잡지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반작용이다. 미술평론가 정진국씨는 “저급잡지와 고급 전문잡지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매체의 가능성과 상업주의 문화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세련미 그리고 외국문화 침투에 대한 저항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이미 80년대부터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라는 기치가 낯익어 왔지만, 아직 그 슬로건이 깊이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보는 잡지는 편집장과 미술편집장(아트 디렉터)과의 ‘행복한 결합'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두 잡지는 대중문화를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잡지 성격의 새로움도 눈길을 끌고 있지만, 특히 ≪아이 매거진≫은 시각적 이미지에 좀더 비중을 두고 있어 보는 잡지 시대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기존 잡지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잡지 디자인에 대한 필요성이 있는 현실에 비추어 디자이너들의 증가되고 적응력은 낮은 편”이라는 출판디자이너 정병규씨(정디자인 대표)의 지적처럼 한국 잡지계에서 디자이너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아직 뚜렷하지 못하다. 표지 한 분야만 놓고 보더라도 편집(부)장과 미술(부)장과의 관계는 아직 “지시와 수행의 종속관계"이다.

시각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잡지일수록 ‘종속관계’는 마찰을 일으킨다. 결국 이 마찰이 잡지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간신문사 출판국에서 펴내는 여성지의 미술편집장인 한 디자이너는 “여성지 표지에서 디자인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편집장은 디자이너가 만든, 만들려는 표지를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하는 것이다. 시각 디자인에 대한소양을 갖춘 편집책임자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편집자들에게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고집하는 경우처럼 일부 디자이너들은 저널리즘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것이다. 이같은 배경에서 발생하는 갈등관계는 잡지의 표지 및 본문 디자인의 개성을 죽여버린다.

“제호만 가리면 어느 여성지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물론잡지의 기획 · 취재 단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편집자들의 매너리즘이 ‘지금과 같은 잡지'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지적은 비단 여성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잡지계에 미술장 제도가 도입된 것은 70년대 중반 ≪뿌리깊은 나무≫가 창간되면서부터였다(이상철씨 인터뷰 참조) ≪뿌리깊은 나무≫는 한국 잡지사에 큰 획을 그었는데, 그 획 가운데 하나가 잡지에 있어서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한 것이었다. 80년대 들어 ≪마당≫≪멋≫≪샘이깊은물≫ 등이 단단한 디자인의 틀을 갖추고 나타났다. 그러나 ≪멋≫을 제외한 매체들은 디자인의 틀을 중시하면서도 읽는 잡지의 성격이 강했다.

보는 잡지가 본격적 시도된 것은 80년 전후의 여성지, 특히 미혼여성을 상대로 한 잡지에서였다. 잡지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인력들이 잡지 미술부에 들어가면서 잡지 디자인은 한 단계 올라섰지만, 표지에 관한 한 여성지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전략에 바탕하고 있다.

여성지 이외에 종합월간지나 주간지, 각종 전문잡지들의 표지나 본문 디자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 역시 “아직 디자인 개념이 정착되지 않고 있다"는 안타까움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상철씨 이후 출판에 디자인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정병규씨와 안상수씨(안그라픽스 대표)는 최근 창간되는 매체들에 대해 “잡지 문화의 다양화 측면에서는 반가운 현상"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양적 변화가 질적인 수준을 끌어올리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안상수씨는 디자이너들이 잡지 제작 과정에서 자기 공간을 확보하는 단계라고 지적하면서 “디자이너들이 시류에 편승, 아류를 만들어내는 안이함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디자이너의 역할은 판형에서부터 책을 넘기는 방식, 종이 재료, 활자크기, 본문 구성 등 책에 관한 모든 설계를 담당하는 것이라며 보다 공격적인 디자이너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독자는 기존의 ‘고여 있는 잡지' 거부
“표지 제작은 잡지 전체를 만드는 노력과 같다"고 규정하는 정병규씨는 지금까지 잡지들이 내용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룩했지만 그 내용을 표현하는 디자인 분야에서는 기본전략마저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 잡지계의 아트디렉터란 ‘자리'로서의 그것이지 디자인을 상상하고, 개념화하고 이를 관리하는 ‘역할'로서의 아트디렉터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아이 매거진≫ 발행인 이종환씨는 “잡지제작진과 독자들 사이에 문화적 지체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잡지인들이 독자들의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잡지 판매 동향은 ‘전례없는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독자들이 기존의 ‘고여 있는 잡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비해 서울의 변화가 서점에서는 일본 미국에서 수입된 잡지들이 꾸준히 팔리고 있는 형편이다.

텔레비전 같은 거대매체가 ‘일방적으로' 전달해주는 정보의 신속성은 날로 팽창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신문들이 텔레비전과의 경쟁에서 뒤쳐지고 있는 반면, 잡지광고 단가가 올라가는 등 잡지의 꾸준한 성장은 한국 잡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양화 · 다원화 사회 속에서 잡지라는 “주관적이고 정서에 호소하는 개성적 매체"는 큰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잡지문화의 발전은 독자들에게 우선 ‘새로운 표지'로써 확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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