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의 ‘와해작전’
  • 김재일 정치부 차장 ()
  • 승인 1992.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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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의원 빼돌리기


최종 목표는 鄭周永 대표 ‘주저앉히기’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국민당 와해작전에 나섰다.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후보 당선의 여세를 몰아 무소속은 물론 국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영입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장기인 세몰이 바람 앞에 국민당은 파죽지세로 교란당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33석이던 국민당 의석이 20석 밑으로 내려가 교섭단체 구성도 못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위기감이 국민당 관계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대권’ 고지 점령 2백일 작전에 돌입한 김대표가 국민당 교란으로 결국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김대표측이 손을 뻗치고 있는 국민당측 인사는 이미 탈당을 선언한 조윤형 의원 외에도 양순직 고문 김효영 사무총장 윤영탁 정책위원장과 박희부 김찬우 송영진 정태영 김범명 원광호 윤항렬 이호정 김해석 의원 등이다. 조윤형 의원은 조만간 민자당에 입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의원 중 상당수는 이미 국민당에서 마음이 떠났거나 흔들리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21명 중에서도 김길홍 최돈웅 이승무 의원 등은 이미 민자당에 입당했고, 하순봉 정필근 서석재 의원 등은 입당 의사를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밖에 정호용 박헌기 성무용 허화평 김상구 현경대 양정규 의원 등과도 물밑 대화를 통해 영입을 꾀하고 있다.

 김대표는 민자당 의석수 부풀리기를 당면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종찬 의원이 당을 뛰쳐나갈 경우, 무소속 영입으로 겨우 만들어놓은 여대야소의 국회가 자칫 여소야대의 국면으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대권 가도에는 적신호가 켜진다. 설혹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여소야대의 상태로는 국정운영을 주도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야당 파괴 공작’이라는 따가운 여론의 눈총과 정주영 대표와의 우호적인 관계에 금이 갈 것을 감수하고 우선 국민당 의원들을 빼내오기로 작정한 것이다.

 김대표의 ‘영입 세몰이’는 경선 거부 이후 당내 체류냐, 탈당이냐를 놓고 고심중인 이종찬 의원의 운신 폭을 좁힐 것으로 보인다. 이의원과 그를 따르는 의원들이 탈당해도 여소야대 국면이 되지 않는다면 민자당에 별 위협이 안되기 때문이다.

 

“화해의 중심에 서겠다”…박철언의원도 대상

 김대표의 국민당 교란작전이 국회의원 몇 사람 빼오는 것에만 멈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관측통들은 교란작전의 최종 목표는 정주영 대표를 주저앉혀 대통령 선거에 못 나오게 하는 데 있다고 본다. 정대표의 대선 출마는 김대표의 집권에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그룹의 한 간부는 “정대표는 손해보는 장사는 안하는 사람이다. 막판에 당선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서슴지 않고 김대표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한 정치 관측통은 국회의원 선거는 정대표에게 밑져봐야 본전치기였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는 양상이 다르다. 여기서 지면 정대표의 정치 생명은 끝나고 국민당은 망한다“고 말해 정대표의 막판 타협의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나 국민당측은 이러한 주장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정대표 출마 문제와는 별도로 김영삼 대표는 정국을 양김 구도로 묶어놓고 선거를 몰고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관측통들은 김영삼 대표가 선거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민주당의 김대중 대표와 만나자고 한 의도를 이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고 있다. 현재는 선거 구도가 두 김씨에 유리하나 분위기가 달아오를수록 ‘세대교체 바람’ 등 돌발변수의 출현 가능성이 높다.

 천신만고 끝에 여당 대통령 후보 티켓을 따낸 김대표는 국민당 와해작전을 꾀하면서 범여권의 결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규하?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은 범여권의 결속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임은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단행된 당직 개편에서도 그는 의도적으로 민주계를 배제함으로써 다른 정파를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김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김대표가 후보로 선출된 후에 말한 “화해의 중심에 자리하겠다”고 한 대목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그의 전 전대통령 예방은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바탕으로 계층과 정치세력 간 조정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해야지, 전 대통령이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의 구체적인 협조를 받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김대표의 ‘포용 정치’를 염두에 두고 반김영삼 입장의 최선봉에 섰던 박철언 의원과의 화해를 점치는 사람도 있다. 한 측근은 “후보가 된 마당에 당의 테두리 안에서 누구와도 손잡고 일하겠다는 것이 김대표의 입장이다. 김대표는 문을 열어놓고 있는 상태다. 박의원이 사과하고 엎드리면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경선거부 사태 이후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뚜렷한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종찬 의원 처리 문제에 대해서 김대표는 조만간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의원을 기습 방문해 포용하려는 제스처를 보일지도 모른다. 가능하면 끌어안고, 그것이 안 되더라도 그의 탈당 명분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다.

 김대표측은 최근 대통령 선거 기획팀을 비밀리에 구성, 운영하고 있다. 청와대 요원들까지 합세한 이 비밀팀은 서울 태평로 소재 뉴서울 호텔에서 선거 관련 자료와 정보를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김대표측은 수권 능력자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김대표측은 이를 위해 공보팀 보강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김대표의 공보팀은 비서실과 대변인실의 3명으로 원고 작성이나 기자접촉이 고작이었다. 비서실의 박종웅 국장은 우선 당 내에서 적격자들이 차출돼 공보위원회가 구성될 것이라고 말한다. 후보가 되기 전에는 민정?민주계의 유기적인 협조가 어려웠으나 이제부터는 민정계 인적 자원의 보강으로 민주계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협조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질론 시비’에 맞서 대응논리 개발에 주력

 공보위원회는 김대표의 연설 문안을 작성할 뿐 아니라 미이지 메이킹에 주력할 방침이다. 텔레비전 영상에 관한 것 등 특수한 기술을 요하는 부문에 대해서는 외부 인사를 영입할 계획이다.

 김대표측은 민주당의 김대중 대표가 들고나올 자질론 시비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강인섭 의원은 자질론 시비의 논거는 허구라고 잘라말한다. 탄압이 극심한 정치상황 하에서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야당의 당수를 4차례, 원내총무를 5차례나 했으면 됐지 더 이상의 무슨 자질이 요구되느냐 하는 것이다. 더구나 김대표는 2년 넘게 집권당 대표로서 국정수행 능력을 충분히 쌓았다고 주장한다. 숫자로 볼 때 3분의 1 밖에 안되는 민주계를 끌고 여당에 들어 와 친화력을 발휘하고 타계파를 포용해 후보 자격을 따낸 저력도 그의 뛰어난 정치력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황병태 전 의원은 강한 소신?결단?책임?추진력 등 김대표의 강점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야 말로 가장 좋은 미이지 메이킹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대표의 아들인 김현철씨가 운영하는 ‘민주사회연구소’의 박태중 실장은 경제문제 해결의 전문성?사리사욕이 없는 도덕성?여론을 중시하는 민주성?결단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지도력에 김대표 이미지 메이킹의 중점이 두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자질론 시비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한 분야의 전문인일 필요는 없으며,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고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국정 운영의 요체라고 주장한다. 홍보 분야와 관련해 김대표 진영은 민주당 김대중 대표의 ‘경제?통일 대통령’ 구호에 맞서 ‘큰 정치?큰 인물’ 등 선거 구호 개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김대표측은 87년에는 ‘국정 종식’이란 구호가 잘 먹혀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당시 평민당의 김대중 후보 진영은 이 구호를 빼앗기고 못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대권 전략과 관련, 김대표 진영은 8월로 예정된 총재직 이양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가 총재직을 겸하는 것이 반드시 선거를 치르는 데 유리하냐 하는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종필 최고위원은 선거 전 총재직 이양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0년의 경험으로 볼 때 행정부의 지원이 없는 집권당은 유명무실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당과 무관함”을 밝혔고, 당권은 김종필 총재가 맡고 있었다. 따라서 말만 여당이지 소위 ‘여당 프리미엄’을 누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군부의 움직임을 알아도 제재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민자당의 인기가 떨어진 판에 여권의 분열을 막기 위해 대통령이 총재라도 맡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측근은 이 문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고, 지금처럼 협조가 잘 될 것을 전제로 대통령이 총재직을 계속 겸임해도 괜찮다는 견해를 밝혔다.

 당연히 반길 것으로 생각되는 총재직 인수를 늦추는 문제까지 고려하면서 김대표는 ‘마지막 기회’를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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