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지울수 없는 악몽의 인두자국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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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여성, 죄의식·우울증·정신장대 등으로 시달려

 사례1:김부남씨는 국민학교 2학년때 이웃집 아저씨인 35세인 송백권씨에게 강간당한 후, 아무에게도 말못하고 결혼했으나 그 충격을 감당 못하고 심한 강간쇼크 증후군에 시달렸다. 두분의 결혼에 실패한 그는 올 1월 21년 전 자신을 강간한 가해자를 살해했다. 재판을 받던 중 심한 정신장애자로 판명돼 공주 치료감호소에서 가료중인 그는 우울증과 정서불안,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

 사례2:88년 5월, 한강가를 산책하던 23세 ㅇ씨가 신원을 알 수 없는 치한에게 강간당한 후, 89년 1월 여아를 분만하자 수치심 때문에 아이를 질식사시켜 화장실에 사체를 버린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사례3:결혼 전에 강간당한 후 다른 남성과 결혼, 두아이를 낳았으나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혼생활 5년만에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 경우도 있다.

 사례4:친오빠에게 근친강간을 당한 동생이 결혼하여 버젓하게 사는 오빠를 보고 남자에 대한 혐오감이 깊어져 결혼 후 자신의 아들을 마구 때리는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 사건들에서 보듯이 강간의 후유증은 평생 지속되는 경우가 많으면 특히 사례1에서 드러났듯이 기억의 저편에 묻어놓은 어린 시절에 당한 강간의 후유증은 언제 어떤 형태로 이 사회에 분출될찌 알 수 없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피해자의 절반 “결혼은 이제 틀렸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조사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강간 미수와 강간의 후유증은 신체적·경제적·정신적 피해로 나눌수 있다(22쪽 도표참조). 그중 피해 여성의 가장 큰 고통으로 드러난 정신적 피해를 다시 심리적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수치심과 우울증·남성에 대한 두려움·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대별할 수 있다. 때로는 수치감과 분노를 넘어서 ‘죽고싶은 마음’으나 ‘타락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자포자기의 심정이나 타락에의 충동은 실제로 매춘으로 유입되는 계기나 경로로 작용한다.

 여성의전화 교육부장 한우섭씨는 “피해자의 절반쯤은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30%쯤이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흡집난 여자’라는 심리적 좌절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하고 매춘으로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피해 여성들은 성폭행을 당하는 순간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동물로 취급되었다”는 모멸감과 자괴감으로 자기파괴를 일삼으며 그 점은 매춘 여성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에 상담한 내용을 보면 피해 여성들의 고통이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신체적 피해 내용에는 임신과 관련된 두려움이 크며, “강간당한 다음날 약혼자와 관계, 임신해 누구 아이인지 모르겠다”는 성인 만화 같은 호소도 있다.

 정신적 피해로는 순결이데올로기의 극복이 어렵다는 점이다. 혼전의 여자가 ‘도장 찍기식’ 강간을 당하면 심정적으로 정조를 바친 남자와 결혼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그와 결혼해야만 강간당한 사실이 죄가 안되기 때문이다.

 또 결혼을 앞둔 여성의 상당수는 처녀막 파열에 대한 공포를 호소해온다고 한다. 여성의전화 상담원 신윤옥씨는 “의학적으로 이미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규명된 처녀막의 출혈에 집착하는 이 사회의 통념이 바뀌지 않는 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더욱 참담한 억압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성폭력을 지속적으로 당하고 있는 여성들은 절망감 속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분석 능력이 마비된 나머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가해자에게 계속 노예가 되어간다고 피해 여성의 심리상태를 설명한다.

 피해 여성들의 후유증은 앞의 여러사례가 입증하듯이 결혼 후에도 지속된다. 대개의 경우 남편을 속이고 있다는 죄의식 때문에 성폭생 사실을 남편에게 이야기할까 말까를 놓고 전전긍긍한다. 이에 대해 상담원은 “폭행이 그 부위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상처가 아물고 난 이 시점에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이사회가 열려지는 문화가 될 때 이야기 해도 된다:고 입을 모은다.

 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총무는 60세된 남자가 10년 전에 아내가 강간당한 사실을 두고 가해자를 벌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길래 공소시효가 지나 방법이 없다고 답하자 “가해자를 찔러죽이고 내가 감옥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겠다”면서 전화를 끊더라고 들려준다. 이처럼 가정주부가 강간당했을 때 대개의 남편들은 위기상황 속에서 아내가 살아나면 일단 안심하면서도 더럽혀졌다는 생각에 하고잡혀 고통받거나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고발하고 보상금도 받아내야
 대낮 주택가에서 5세 여자 아이 2명이 30대 남자에게 잇따라 추행당하고(89년 4월·서울 도봉구) 빨래하던 임신 6개월의 주부를 폭행하고(90년 8월·경기도 성남) 20대 공원이 잠자는 64세 할머니를 강간한는(90년 3월·서울 성수2가) 세상에서 한 여자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죽음을 각오하고 강간밤의 혀를 깨물어 위기를 모면하거나(89년 7월·서울 구로구) 아니면 이들을 피해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강간당했다면, 순결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한 평생을 질식할 것 같은 진공의 정신병 상태 속에 가뒤두어야 하는가.

 반면 더러운 욕정으로 한 여자를 고통 속에 가둔 가해자는 대개 그 사실조차 잊은채 이 사회에서 대접받으며 버젓하게 잘 살고 있다. 그럴 때 피해 여성들은 그 가증스러움에 죽이고 싶은 분노의 싹을 틔우는 것이다. 그 대상은 자신일 수도, 또는 강간한자일 수도, 아니면 이 세상 모든 남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명백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수치심 때문에 신고할 생각을 못할 뿐 아니라 “치사하고 더러워서” 보상금 받을 생각도 안 갖는다고 한다. 이에 최소장은 가해자를 구속시키거나 보상금을 받는 것은 강간범이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억울하고 기막힌 피해 여성의 자기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동북신경정신과 김원순 원장은 “노이로제나 우울증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환자 중에는 어렸을 적에 당한 성폭행이 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하고 “사람이니까 넘어질 수도, 다칠 수도 있는데 너무 그 사실 자체에만 매달리는 것은 불건강하다”고 진단하면서 억압된 복수심이나 적개심을 자살 살인 매춘등 자기파괴적인 충동으로 발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은 버려지기도 하고, 깨뜨려지기도 하는 유리그릇인가. 여성도 생각과 정신, 모든 걸 가진 인간이다. 성기 하나만으로 여자를 판단하려는 통념은 깨져야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소장의 말은 이땅의 모든 여성의 항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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