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죽고 깔려 죽은 조선인
  • 나가사키시 하지마·남문희 기자 ()
  • 승인 199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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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사 63명 · 병사 59 명 · · ·**등 피해 탈출하다 4명 익사



 하지마에서 조선인이 강제 노동한 진상 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25년 부터 1945년까지 당시 미쓰비시측에서 작성한 '사망진단서'와 '화장인허증 교부 신청 서'가 발견되면서부터이다. 이 문서들은 74 년 이 섬의 탄광이 폐광된 후 '고빈촌 하지마 출장사무소'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 는데, 지난 84년 섬을 조사하던 한 일본인 이 발견해 인권회에 넘기면서 세상에 알려 졌다. 자료에는 당시 일본인 1천1백56명, 조선인 1백22명,중국인 15명 둥 사망자들 의 이름 본적 사망 날짜 · 사망 원인 등이 기재 돼 있어 당시 조선인 사망 자 실태를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게 돼 있다. 

 특징적인 것은 1942년 까지는 일본인 산망비율 이 조선인 사망비율에 비 해 높았으나, 43년 같아졌 다가 44년부터 45년까지 2년 동안은 조선인 사망 비율이 휠신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태평양전쟁이 치열해진 그 무렵 일본 정부의 증산명 령을 수행하기 위해 미쓰비시측이 탄광노 동에 미숙한 조선인 노동자들을 거의 무방 비 상태에서 갱도 속으로 마구 몰아넣었기 때문인 것으로 인권회측은 추측한다. 사망 조선인은 나가사키에서 가까운 경 상남도 출신이 가장 많고 군별로는 고성군 이 23명, 진주군이 17명이었다.

식사 · 의료문제 삼각‥‥ 소화불량사망5명 

 사망 원인을 보면 당시 조선인 강제 노동의 실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망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은 사고사(63명)로, 그 대 략적 내역은 질식(23명) 압사(9명) 기타 외상 등에 의한 사고(15명) 변사(3명) 추 락사와 두부타박증 각 1명, 폭상사 2명 등 이다 그러나 뒷부분의 외상 및 두부타박증 에 의한 사망 21명은 일본인 노동자 및 감등 피해 탈출하다 4명 익사   독이 행한 ** 린치 폭행 둥에 의해 살해 된 것이라는게 인권회측 견해이다.    

 그 다음을 차지하는 것은 병사(59명)인데 급성소화불량과 급성심장마비에 의한 사망   자가 각각 5명으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소화불량으로 사망한 사람이 5명이나 된    다는 것은 식사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병사의 원    인도 대체로 페니실린 등 간단한 구급약만 있어도 치유가 가능한 질병이었다. 즉 일본    인 환자들에 비해 조선인 환자들은 발병 초 기 단계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 하는 경우가 맡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고사 중 4명의 익사자가 포함돼 있다 는 것도 눈에 띈다. 이들은 하지마에서의 강 제 노동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감행하다 익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공습에 의한 사망자도 한 사람 있는데 같은 날 일본인 사망자가 없었다는 점에 미루어볼 때, 미군 폭격이 있던 그 날 옥외작업에 조선인들만 동원됐음 이 분명하다고 인권회측에서는 지적한다. 

 조선인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고 그에 대 한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인권회측에서는 유족회와 연계해 지난해 연말 후쿠오카에 있는 미쓰비시 자사와 접촉했다. 이때 미쓰 비시측 담당자는 금년 6월 말까지 입장을 밝히겠다고 약속했는데, 미쓰미시측은 6월 말 오카 목사에게 이 기간을 7월I5일까지 연장해줄 것을 요구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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