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러시아 ‘고철’ 왜 샀나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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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일본 기업 중개로 구식 잠수함 40척 수입…부품 재사용·고철 판매 가능성


 얼마전 북한이 러시아 잠수함 40척을 사들이는 일을 한국계 일본 기업이 중개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일본의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구형 공격용 잠수함 40척을 북한에 중개한 것은 도쿄 오가쿠보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토엔상사로, 사장은 한국계 일본인인 시바타 아리요시(柴田在慶)씨다.

 시바타씨의 한국 이름은 徐在虎로서 4년전 일본에 귀화한 인물. 82년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통해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후 3년전 자본금 3천만엔으로 사원 4명인 토엔상사를 도쿄에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등기부에 기재된 이 회사의 주요 사업 목적은 식료품·잡화·건강 기구 판매와 한방약 원자재 수입 판매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철 판매와 같은 업무는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아 이 회사의 정체를 둘러싼 의혹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 회사는 어떤 경위로 잠수함 거래에 개입하게 되었는가.
 <아사히 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주간 아사히》에 따르면 이 회사가 잠수함 거래에 손을 댄 것은 작년 10월. 이산 가족인 시바타씨가 북한의 친척을 통해 북한계 상사와 관계를 맺고 하바로프스크로 건너가 잠수함 거래에 보증을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토엔상사 둘러싼 의혹 날로 커져
 《주간 아사히》는 또한 이 회사가 작년 봄부터 러시아의 낡은 증기기관차를 고철로 만들어 중국에 판매하는 사업을 해왔으며, 이번 러시아 잠수함도 북한의 나진항에 예인해 해체한 후 고철로 중국에 팔아 넘길 예정이라고 이 회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또 국제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대금 지불을 보증한다는 취지에서 이 거래를 중개하게 되었다고 《주간 아사히》의 취재에 대답했다.

 그러나 잠수함을 고철로 해체하여 중국에 수출하려고 거래를 중개했다는 이 회사의 주장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일본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토엔상사가 중개한 문제의 잠수함은 20~30년 전의 구식 디젤 잠수함. 즉 옛 소련이 독일의 U보트를 개량해 60년대에 취역시켰던 낡은 잠수함들이다. 설령 북한이 이 잠수함들을 반입해 개조하더라도 미사일 같은 최신형 무기를 탑재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 낡은 잠수함들을 사들인 속셈은 어디에 있는가. 영국의 군사 연감 《밀리터리 밸런스》에 다르면,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은 모두 26척에 이른다. 예전에 옛 소련과 중국에서 도입한 것들인데 연료와 부품이 부족해 최근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정보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가동 불능 상태에 빠진 옛 소련제 잠수함의 부품을 얻으려고 이 거래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군사 전문가들도 북한의 심각한 외환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 하나는 토엔상사의 주장대로 외화벌이를 위해 북한이 이 거래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이다. 한 예로 작년에 일본에서 북한으로 수출되는 중고 자동차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요코하마 세관 조사에 따르면, 93년 7월 한달 수출 대수는 총 2천50여대로서 이는 92년 같은 시기의 20여 배와 비슷한 물량이었다.

 요코하마 세관은 또한 종전에 남포항이던 이 중고차의 행선지가 중국 길림성과 가까운 청진항에 집중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소식통들은 외화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이 일제 중고차를 중국에 다시 전매할 목적으로 대량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대당 3천달러에 수출되는 일제차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갈 때는 1만달러를 호가한다는 얘기도 있다.

 북한의 이같은 궁상을 감안한다면 앞서 지적한 외화벌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즉 러시아의 퇴역 잠수함을 헐값에 들여다 쓸 만한 부품은 뜯어내고 고철로 중국에 재수출해 꿩 먹고 알 먹겠다는 속셈일 수도 있다. 토엔상사 관계자도 중국의 호경기로 고철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점을 들어 외화벌이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의문은 남는다. 즉 자본금 3천만엔, 종업원 4명에 불과한 영세 무역회사가 어떤 인연으로 총 1천만달러에 이르는 거래를 중개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도 북한의 국가적인 사업을.

 이런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토엔상사라는 회사를 좀더 구체적으로 해부할 필요가 있다. 《주간 아사히》는 이 회사의 임원 4명이 모두 통일교와 관련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시바타씨는 82년에 국제 합동 결혼식을 거쳐 일본에 건너 왔고, 나머지 임원3명도 88년 합동 결혼식에 참가했었다. <주간 아사히>는 이러한 사실을 들어 지난 2월5일자 기사에서 ‘북한과 러시아간 잠수함 거래에 통일교의 그림자가 엿보인다’고 지적하고, 잠수함이 고철이 아닌 부품으로 이용되는 경우 무기 거래의 중개 무역을 금지한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통산성이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중국에 출장중인 것으로 알려진 시바타 사장은 이에 대해 자기의 경력은 대체로 시인했으나 통일교와의 관련 부문에 대해서는 극구 부인했다. “나는 이미 극성파 신자가 아니며, 만약 통일교가 북한과 거래하려 한다면 김일성과 직접 계약하지 왜 영세 무역회사를 거치겠는가”라는 것이 그의 반론이다.

 일본 통일교측도 신앙의 자유를 들어 이들의 신분 확인을 거부하면서 토엔상사와의 관계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교 문제 전문가 아리타 요시후씨는 여러 가지 방증으로 보아 “토엔상사가 통일교계 기업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주장하고, 91년 11월 문선명 교주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회담한 뒤로 통일교의 북한 진출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일본 기업도 위장 거래 나서
 아리타씨는 《주간 문춘》 2월3일자 ‘북한에 잠수함을 판 것은 통일교계 기업이었다’는 기사에서는 아예 토엔상사를 통일교 산하 기업으로 못박았다. 그에 따르면, 토엔상사는 문선명 교주의 직접 지시에 의해 설립된 직할 기업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회사의 시바타 사장은 평양을 드나들면서 요도호 납치 범인들과도 접촉이 있었던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일본의 북한 전문가들도 설립된 지 3년밖에 안된 영세 무역회사가 북한의 국가적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잠수함 거래를 중개한 데 대해서는 고개를 크게 갸우뚱거린다. 우선 토엔상사가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적인 친분 관계로 이만한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북한의 조직 특성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이 중개하는 상거래의 경우 어떤 상부 조직의 개입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북한을 아는 사람들의 상식이다.

 아무튼 일본 주간지들의 보도처럼 통일교가 북한의 잠수함 거래에 개입되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다. 그러나 이 잠수함 거래 파동은 지금까지 일본 기업·조총련계 기업으로 대별되던 북한의 밀무역 루트에 한국계 기업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일본 기업을 이용한 위장 거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도쿄 경시청은 최근 요코하마 기계무역이라는 회사를 COCOM(대공산권수출통제기구)이 수출을 금한 물품을 수출한 혐의로 가택수사를 실시한 바 있다. 대당 3백만엔에 달하는 고성능 주파 분석기 3대를 중국을 경유하여 북한에 부정 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주파분석기는 일본 국내에서는 통신기기의 연구 개발이나 검사에 이용되고 있는 기계이지만 미사일의 조준도를 높이는 데도 유용하다. 따라서 경시청은 이 기계가 북한이 개발중인 중거리 탄도미사일 ‘노동 1호’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처럼 북한의 노동 1호 미사일 위협을 강조해온 일본에서 기업들이 북한의 전력 증간을 뒷받침해 왔다는 것은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이러한 밀무역에 한국계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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