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世衡 평민당정책위의장
  • 편집국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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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통합 분위기 성숙”

趙世衡 평민당정책위의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사무실인 국회의원회관 212호를 찾았을 때, 그는 넥타이를 풀어버린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부랴부랴 양복을 차려입고 자리에 앉은 그는 느닷없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알고보니 서둘러 신은 구두가 ‘짝짝’이었다. 그는 여비서를 불러 짝짝이가 된 구두 중 나머지 한 짝을 가져오라고 시킨 뒤 “내 별명이 털털이요” 하며 또다시 웃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76년 그가 기자였을 때 특파원시절의 체험을 살려 쓴 《워싱턴특파원》을 펴내고부터다. 이 책은 당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만 해도 기자의 취재현장 이야기를 담은 책이 흔치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서슬푸른 유신치하에서 의회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활짝 핀 워싱턴 정가의 분방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흥미를 끈 듯하다. 그는 78년 〈한국일보〉편집국장을 마지막으로 25년간의 언론생활을 마치고 정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는 이듬해 10대 총선에서 당선돼 그해 3월 ‘금배지’를 단다. 그러나 이른바 10·26사태로 국회가 해산되는 바람에 그의 의원직은 단명에 그치고 80년초 그는 정치활동규제조치에 묶여 어두운 나날을 보낸다. 84년 2차해금으로 정치를 재개했으나 12대 총선에서 낙선하는 쓴잔을 마셔야 했고, 13대 총선 때 당선됐다.


● 5·18 광주항쟁이 10돌을 맞았습니다. 광주의 ‘한’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합니다. 광주특위도 사실상 실종상태입니다. 평민당은 광주문제를 어떻게 매듭지으려 합니까?
 
광주문제 해결에 중요한 것은 돈에 있지 않습니다. 배상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명예회복입니다. 광주의거에 참여했다가 폭도로 몰려 죽거나 유죄판결받고 징역살게 돼 전과자로 낙인찍힌 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재심의 길을 터주어야 합니다. 정부 스스로가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이름했으면서도 민주화운동한 분들을 전과자로 남겨두어서야 되겠습니까. 앞뒤가 맞지 않지요. 지금은 ‘한 시대’를 매듭지어야 할 시점입니다. 역사의 제자리에 앉혀주어야 합니다. 배상을 한답시고 1천~2천만원을 먼저 타가라며 신청을 받는 정부의 처사는 마치 광주의 울분을 매수하려는 듯한 겸허하지 못한 방법입니다. 재심의 기회를 마련해줘야 하는데, 정부여당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광주매듭과 관련해 배상법 처리에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또 광주특위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에 제출토록 되어 있는데 특위를 해체하고 보고서 작성을 법사위에 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정말 무책임합니다. 13대 국회에서 매듭짓지 못하면 7공화국에 가서라도 제대로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 평민·민주(가칭·이하 가칭생략) 양당간의 야권통합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당 3역 중 한사람으로서, 또 서울 출신 중진이란 입장에서 통합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만, 2년 전 대통령선거 직후 통합논의 때보다는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지금은 통합을 하라는 국민적 압력이 굉장히 큽니다. 집권 거대여당이 정치를 형편없이 하고 있는데 불만이 크고, 대체세력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지요. 통합여건이 이처럼 성숙되어 있어요. 이런 기운은 평민당이나 민주당 의원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특정한 몇몇 사람들이 이런 국민적 요구를 거부하는 것도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어려운 고비를 넘어 통합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위 지분문제로 막혀 있지만, 사실 어려운 문제, 즉 당대장의 통합, 집단지도체제, 경선 등 3개항은 쉽게 합의를 이루고 있어 큰 진전을 보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지분을 얼마씩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통합된 뒤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통합이 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각계에서 신선한 이미지와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이럴 경우 새로운 바람이 불겠지요. 그러면 다음에 정권을 이어받을 대체세력으로 등장하게 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기득권을 가진 분들이 불안해 할 염려가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염치없는 바람인지 모르지만, 야권이 통합하라고 데모라도 벌여주었으면 해요. 그런 국민적 압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2백 44개 지구당을 단위로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대표로 인선해서 평민·민주 양당이 假통합상태에서 과감히 통합을 추진해보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평민당과 민주당이 같은 수로 조직강화특위를 만들어보자고 하는 일부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야권통합에 참여하고자 하는 재야나 각계의 인물들도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겠지요. 미국의 예비후보 선거제도처럼 말입니다.


● 조의원의 말씀을 정리하면, 평민·민주에 구애받지 않고 재야 등 각계 인물들까지 포함시켜야 하고 창당작업을 지역구에서부터 시작해 국민운동 차원으로 승화해나가는 이른바 상향식 창당을 주장하는 것입니까?
 
예, 그래도 좋고 여러 가닥의 정치세력에서 예비후보를 내놓아도 좋겠지요. 아무튼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방식을 대담하게 추진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통합협상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식인 상부작업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상부의 이해관계가 얽혀들어 막혀버리지요. 이 매듭을 어떻게 푸느냐가 문제입니다. 다시 하부로 내려보내면 자연스레 풀릴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준통합상태로 들어가게 되고 통합협의체를 통해 국민여론을 조성해나가자는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그 지역구를 맡을 지구장위원장·대의원을 인선할 수 있을 것이고, 경합하게 된다면 투표로 뽑을 수 있겠지요. 그때까지는 평민당이나 민주당을 해체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경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엄청난 난제들이 합의에 도달해 있습니다. 언론에서 이런 합의에 대해서는 더이상 보도하지 않고 합의되지 않고 있는 지분문제에 대해서만 보도를 하니까 통합협상 자체가 난항만 거듭하는 것으로 비쳐지게 된 듯합니다. 합의된 것은 십 중 아홉인데 비해 합의되지 못한 것은 하나에 불과합니다. 합의된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 때문에 아홉을 깰 수 없지요.


● 이야기를 잠시 되돌려, 평민당내 서울지역 출신 몇몇 의원들이 민주당이 요구하는 50대50 비율의 지분배분을 수용하자는 주장도 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공식적으로 거론된 바는 없습니다. 그런 주장이 나왔다면 이번 통합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뤄져야 한다는 간절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50대50의 당권배분으로 통합하자는 주장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13대 대통령선거 직전에 金大中·金泳三 두 분이 50대50의 지분으로 통일민주당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런 방식의 통합을 한 결과, 통일민주당은 움직일 수 없는 배처럼 되고 말았지요. 두 분이 배의 핸들을 반반씩 똑같은 힘으로 꽉 쥐고 있어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정치는 멀리 보고 해야 합니다. 당장 내 몫이 얼마나 되느냐에 연연해서는 안됩니다. 통합된 야당은 커야 하겠지만, 그 모양새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통합의 골격이 궁색하게 짜여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국민들로부터 좋은 정당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아야 다음 총선에서 승리도 할 수 있겠지요. 억지춘향격이나 난파선처럼 통합을 해선 안됩니다. 지분시비로 한두달 동안 싸우고 나면 통합의 가치조차 퇴색할 소지가 있고, 결국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말 것입니다.


● 李基澤 민주당창당준비위원장을 비롯하여 민주당 일각에서는 김대중총재의 2선퇴진을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고집하고 있는데…그 이유는 김총재가 통합야당에 있는 한 민주당은 평민당에 흡수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란 우려 때문인 듯합니다.

 특정인이 통합야당의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통합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좁은 발상입니다. 누가 대표가 되든 아름다운 모양새로 통합되면 호남이든 부산이든 다음 총선에서 압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현평민당의 협상대표로 나온 분들 대부분이 김총재의 측근이며 당료파 의원들이라는 점을 들어, 그들의 속셈은 당초부터 통합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 평민당이 야권통합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이용해서 전당대회를 연기, 시간벌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답변하시기가 다소 껄끄러운 듯합니다만….

 그럴 것 없습니다. 5명의 대표는 평민당의 당론이나 김총재의 의중을 함께 묶는 신경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뇌신경에서 방향과 책무를 주면 손발이 움직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어떤 사람과는 협상이 안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협상대표에 김총재의 측근이 많이 섞였다는 이야기를 나도 들었어요. 총재가 신임하는 분을 대표로 보내야지, 불신임하는 분을 대표로 내보낸다면 총재가 통합에 대해 관심이 없고 협상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요. 韓光玉 총재비서실장이 대표단에 들어 있는 것은 총재가 그 협상에 명예를 걸었다는 의지로 봐야 할 것입니다. 협상대표가 어떤 사람들인가를 보지 말고, 과연 통합을 하려는 자세인가를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 지난해 연말, 3당합당 이전에 평민·민주 양당의 통합을 주장했던 소장의원들 가운데 李相洙·李海瓚의원 등은 합당선언을 먼저하고 당대표를 양당의 동수 대의원에 의해 뽑은 뒤 지역구부터 철저한 경선을 통해 상향식으로 창당해 통합하자며 서명운동을 펴고 있습니다. 지분문제가 협상과정에서 타결돼 통합이 된다 해도 얼마 안가서 이해를 달리하면 다시 분당해나오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런 우려는 한국야당사를 돌이켜보면 단순한 기우만은 아닐 듯한데요….

 先합당 선언은 고려해봄직하지만 양당의 先당해체 後창당추진이라는 방법은 공작정치가 상존해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정치현실에선 무모한 짓입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 화제를 바꿔, 5월말로 예정된 임시국회의 개회·회기·의제 등에 대해 민자당측과 절충중인 것 같은데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임시국회를 여는 데에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위기정국을 풀 수 있는 정부여당의 처방이 먼저 나와야 합니다. 우리 당은 지난 7일 시국선언을 통해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盧泰愚대통령이 시국을 보는 자세가 안이할 뿐 아니라 정치적 처방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어요. 공권력으로 누르면 된다는 행정적인 처방으로 정국을 끌고가려 하는 듯합니다. 이런 차원의 처방으로 정국을 극복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당은 물가·땅값폭등, 부동산투기 등 민생문제를 폭넓게 다루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총체적 위기라고 말해놓고 국회를 열지 않으려 해요. 먼저 국회를 열어 극복책을 물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국회가 열리면 148회 임시국회 때부터 미뤄왔던 국가보안법·안기부법·경찰중립화법 등 반민주악법의 개폐, 올 상반기에 실시하기로 명문화되어 있는 지방자치제의 조속한 시행, 광주배상법등을 집중적으로 다뤄 처리토록 할 작정입니다.


● 정치적 처방이 없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는 현정국이 민주주의를 깰 수 있는 위기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3당통합으로 현국회는 대표성을 잃었습니다. 총선을 다시 해서 민의를 반영하는 국회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총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거국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현정부는 정국을 끌고나갈 능력도 신뢰도 없습니다. 그래서 거국적이고 중립적인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당이 통합되면 정치적으로 안정이 온다고 큰소리쳤지요. 2백18석이란 거대여당이 들어서면 국회는 일사천리로 운용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지난 148회 임시국회가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고, 한건도 법안다운 법안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노대통령은 6·29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서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평민당이 거국 내각에 끼자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부를 회복시키자는 것이지요. 예컨대 노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겠다고 수차례 약속을 해왔습니다. 장기간 실무팀이 연구까지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없애버렸어요. 이런 정부를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투기억제대책은 일단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부가 여러번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국민이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 김대중총재는 그동안 거국내각구성을 수차례 제의한 바 있습니다. 그때마다 정부여당은 단 한번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중심 체제하에서의 우리 현실로는 채택되기 어려운 제안이 아니겠습니까?

 노태우대통령더러 물러가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밖에 노대통령이 처방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공권력으로 끌고가겠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우리는 과거에 실패를 많이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민자당이 창당전당대회를 갖던 5월9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시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읽어야 합니다.

 

●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은 적잖은 파문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과거 식민통치에 대한 日王의 사과발언 문제를 놓고 국민감정까지 악화되어 있습니다. 일부에선 사과않겠다는 일본에게 억지로 사과하라고 매달릴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국내가 위기정국인데 굳이 일본만은 가야겠다고 고집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서독 2차대전 때의 폴란드침공을 사과하기 위해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로 직접 찾아가서 사죄하며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또 유태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금도 당시 학살책임자를 찾아내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일본은 정말 왜소한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본이 중국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다는 점입니다. 노대통령이 일본에 가려면 이런 문제를 일찍 제기해 해결해야 했지요. 순서가 틀렸어요. 경제적 도움과 첨단기술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일본에 간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일본이 아무런 대가없이 우리의 요구에 응할리가 없습니다. 엄청난 정치적 대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일본돈이 세계금융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92년부터 국내 자본시장이 개방되면 일본자본이 마구 들어와서 증권시장은 물론이고 부동산·기업까지 사들일 것입니다. 이럴 경우 우리경제가 일본에 예속되고 말 것입니다. 일본의 개방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위험한 게임입니다. 노대통령이 정권적 차원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그런 기술·경제적 협력을 구하러 일본에 간다면, 국회에서 여야간에 협의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얻운 뒤 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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