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聯政 고개 넘어 統獨 달음질
  • 본 · 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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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뒤흔든 ‘프락치’파문 진정…社民黨참여 정부구성, 통화동맹 등 본격협상 시작

 총선을 전후해서 동독정국을 강타했던 국가보안부 프락치 바람, 이른바 동독 정치지도자들의 비밀경찰 관련 파문이 잠잠해지면서 동독에서는 大聯政이 성립됐고 본격적인 통일의 제1단계인 통화 · 경제 · 사회동맹에 관한 협상이 시작되고 있다.

 동독의 국가보안부는 해체된 후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선거 직전에 ‘민주적 출발’의 슈누르 당수를 정치무대에서 밀어내버린 ‘국가보안부 프락치 경력’은 한동안 동독 기민당의 드 마지에레 당수와 키르히너 사무총장을 흔들더니 마침내는 사민당의 이브라힘뵈메 당수가 사임하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드 마지에레 당수와 키르히너 사무총장 관련설은 뜬소문임이 확인되어, 이들은 정치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뵈메 당수의 경우는 약간 복잡하다.

뵈메 당수 사퇴, 석연치 않은 뒷맛 남겨

 선거 전부터 《슈피겔》이라는 서독의 권위있는 잡지-슈누르 당수도 이 잡지에 실린 기사 때문에 결국 사임했다-에 ‘프락치 경력’에 관한 기사가 실렸지만 뵈메 당수는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였었다. 선거 후 당선된 의원 전체에 대한 ‘프락치 경력’ 유무가 밝혀져야 한다는 요구가 주요 정치쟁점이 되자 뵈메 당수는 당수직을 정직시켜놓고 ‘국가보안부 해체를 위한 시민위원회’에 보관되고 있던 자신의 기록부를 들여다보았다. 발견된 기록부상의 내용은 “뵈메 당수가 프락치였다”는 기사를 뒷받침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뵈메 당수는 주말을 넘긴 뒤 당수직을 다시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다음주 월요일 기자들에게 전달된 것은 뵈메의 사퇴성명서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낸 것이었다. 한데 그의 사퇴는 당의 간부회의에서 만류하거나 해명을 들은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며칠 후 그의 측근 동료인 울만전무임소장관(‘즉각 민주주의’소속)이 밝힌 바에 따르면 뵈메의 사임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다. 총선 직후에 대연정이 논란되고 있을 당시 뵈메는 기민당과 서로 의사를 타진하면서도 “독일 사회연맹이 참여하는 연정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의 공약”이라는 원칙을 되풀이하여 밝혔었다, 그러나 그가 당수직을 정직시켜놓은 동안에 협상은 ‘독일 사회연맹’문제를 제쳐놓고 진행되어갔다. 이에 뵈메는 더 이상 당수직을 맡을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주요 정치인들의 ‘프락치 경력’이 한꺼번에 ‘폭로’되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씩 한사람씩 이루어지자 이 ‘폭로’의 배후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았다. 이와 관련해서 모드로 전총리가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지난 1월 중순 시민들이 국가보안부 건물에 들이닥치기 바로 며칠 전에 국가보안부 한 부서의 전체요원이 서독으로 넘어갔으며 시민들이 들이닥친 날 그 현장에는 ‘서독 시민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사민당은 대연정에 대해 거부 · 승낙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참여했다. ‘독일 사회연맹’이 선거전에서의 ‘이전투구’에 대해 사과하자 사민당으로서는 더 이상 ‘독일 사회연맹’을 이유로 대연정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연정을 거부해야 할 이유로서, 소수로 참여하는 대연정에서는 사민당의 입장을 충분히 관철시킬 수 없다는 점과 콜 서독총리가 선거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되었을 때에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행정구역 개편이 새 정부의 주요 과업

 대연정에 참여해야 할 명분으로, 기민당 주축의 ‘독일연합’이 서독정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웠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야당으로 남아 있을 경우 민주사회당이 ‘뒤에서 껴안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당초 새로운 全독일 헌법의 제정을 포함하는 통일과정을 공약했던 사민당은 연정 협상과정에서 이를 포기하고 서독헌법 제23조에 따르는 절차에 동의했다. 그러므로 새 정부의 주요 과업의 하나는 동독의 행정구역을 다시 5개주로 개편하는 일이다.

 서독정부는 오는 5월6일의 동독 지방의회선거 이전에 통화동맹 협상을 마무리짓기 위해 매우 서두르고 있다. 사민당은 서독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서독헌법을 ‘보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동 ·서독 사이의 힘의 관계에서 볼 때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사민당이 ‘보완’하려는 내용은 주택권 · 노동권 · 환경권으로서 서독의 집권당이 결사반대하는 사회주의적 권리들이기 때문이다.

 서독 정부가 연방은행의 권고를 대체로 받아들여 동독 인민의회 개회에 즈음하여 공표한 ‘통화 · 경제 · 사회동맹에 관한 국가조약안’은 동·서독에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서독 사민당은 동독 2마르크 對 서독 1마르크의 환산비율이 관철될 경우 동독은 저임금국가로 전락할 것이며 이는 서독의 임금을 압박할 것이므로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자민당의 람스도르프 당수도 이 비율은 “동독 국민에 대한 食言”이라 비난했다. 동독의 자유노조연맹은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다.

 예상할 수 있었던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독정부가 2대1 환율을 예정한 것은 순전히 산술적인 계산의 결과였다. 동독의 노동생산성이 서독의 2분의 1보다 낮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독 정부는 한편으로는 동독 선거전에서 약속한 생활개선을 조속히 실현시켜주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서독에서 세율을 내리고 사회보장지출을 줄여가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포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이 모순된 과업을 앞에 두고 책임을 분담하기 위해서 콜 총리는 총선 결과가 밝혀지자마자 ‘독일연합’과 사민당의 대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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