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이 달려오고 있다
  • 남문희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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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한 핵 협상 ‘ 끝내기’ 멀지 않아 북한,한국과 ‘통일 대화’외길 걸을 듯



멀게만 느껴졌던 남북정상 간의 회동이 발등의 불로 다가오고 있다.특히 《시사저널》제 235호가 ‘중국을 중재자로 남북 정상회담 극비 추진’사실을 보도한것과 거의 같은 시점에 “ 김일성 주석이 한국 방문을 희망했고,김영삼 대통령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용의가 있다고 몇 차례에 걸쳐 말했다”라고 윌이엄 테일러 미 전략 문제연구소 부소장이 폭탄 발언을 하면서,남북 정상회담 문제는 관계 전문가들 사이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테일러의 발언에 대해서는 일부 회의적인 견해도 있지만, 현재의 미묘한 상황에서 김일성 주석이 직접 등장해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자기 견해를 피력했다는점에서 가볍게 봐아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또 《시사저널》의 보도대로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 정상회담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 사실이라면, 김일성 주석의 발언은 이에 대한 화답 차원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시된다.

 북한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들이나,북한 핵 문제 이후 주변 관계의 미묘한 변화 움직임을 추적해온 전문가들이 남북 정상회담이 극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미?북한 협상을 축으로 전개돼온 그동안의 협상 국명이 미?북한 3단계 고위급 회담을 계기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남북한 간의 직접 협상이 전면에 떠오르게 될것이라는 상황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혁 협상의 궁극적 목표는 서울
 북한 핵 문제의 변화 추이를 면밀히 추적해온 한 전문가는 “ 이제 핵 협상의 서막이 끝나가고 있다.멀지 않아 본무대의 막이 오를 것이다”라는 현재의 국면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그는 이어 “ 핵 협상에서 북한의 궁극적인 목표는 위싱턴이 아니라 서울이다. 지난 1년간은 서울에 진입하기  위싱턴을 경유하는 과정이었다. 위싱턴과의 협상이 마무리되면 북한은 곧 서울과의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 라고 말했다. 위싱턴에서 서울로 협상 무대를 전환하기 위해서도 남북 정상회담은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지적이다.

 《시사저널》이 보도한 ‘중극을 중재자로 한 남북한 정상회담 극비 추진’에 대해 관계 전문가들은, 이를 남북한 극비 직접 접촉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북한 극비 직접 접촉설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12월초 국내 한 일간지가 위싱턴의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세차례 보도한 바 있다. 이보도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미국과 북한 간에 전개되는 뉴욕 실무 접촉과 별도로 남북한이 극비의 막후 접촉을 통해 핵문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는점,이를 위해 한국측 밀사가 극비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 고위층과 담판을 벌였을 가능성,지난해 11월2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측에 북한과의 접촉 사실을 전하고,북한과의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결정을 한국 정부에 맡겨줄 것을 요청해 미국측의 동의를 얻어냈다는 점 등이었다.

북한,회담 장소 평양 원해
 남북한 비밀 접촉설은 김영삼 대통령 측근들의 행보와 관련해서도 관측통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특히 민자당 사무총장에서 사퇴한 직후 최형우 현 내무부장관이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목적이나,일본에 모무르던 서석재 전 의원의 행보 등이 관측통들의 안테나에 잡히기도 했다.

 이러한 물밑 넙촉 움직임 중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이 환병태 주중대사의 역할이다. 오랜 관료생활 경험과 뛰어난 정치 감각을 가진 황병태 주중대사야말로 남북간 막후 접촉의 실무 주역일 것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다. 2월25일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갑작스럽게 꺼낸 배경이나, 한?중 정상회담 당시 황대사의 기자회견 파동 등로 정상회담 실현에 대한 황대사의 자신감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된다.

 “ 지난해 연말 남북간 직접 접촉설이 나돌다가 최근에 와서 뜸해진 것을 보면, 직접 접촉을 통한 정상회담 실현이 벽에 부딪힌 것은 아닌가.” 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정부 최고위층이 중국을 정상회담의 중재자로 내세웠다는《시사저널》보도와 관련해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그는 “ 회담 장소에 대해 이견이 발생한 것 같다 ” 고 원인을 진단했다. 제3국에서 한다면 어느 모로보나 북경이 가장 유력한 장소로 거론된 터인데, 자존심 강한 김일성 주석이 민족 문제를 북경으로 끌고가려 하지 않을 것 같고, 더군다나 김영삼 대통령보다 고령인 그가 먼저 서울에 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대통령이 먼저 평양을 방문할 수밖에 없을 텐데,정부 핵심층의 의견 조정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회담 장애 요인 거의 사라졌다”
 전문가들이 남북 정상회담 실현을 먼 미래가 아닌 발등에 떨어진 불로 인식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미?북한 협상을 주축으로 하는 핵 협상의 현재 국면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그 다음은 남북 간의 직접대화라는 외길 수순만이 남게 된다는 상황 인식에서 비롯한다. 핵사찰을 둘러싼 미?북한 간의 협상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해온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카드를 양날을 지닌 칼로 인식한다. 한쪽 날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협상 수단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올해 안에 평앙에 무역대표부 또는 얀락사무소를 세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일부 보도에서 나타난 바와같이, 미?북한 3단계 고위급 회담이 끝나가는 시점이 되면 미국의 대북 엠바고(외교?경제 봉쇄)가 해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미국의 엠바고 해제는 베트남의 사례에서 보듯이 북한에 세계 무대로 진출할 깃을 열어줄 것이고, 서방 자본의 활발한 대북 투자로 인해 북한 경제의 재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한국과의 50여년에 걸친 비정상적인 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만이 북한에게 과제로 남는 것이다.

 북한 핵카드의 또 다른 축면이 바로 이 점에 모아지고 있다. 즉 지난 1년간 미?북한 협상과정에서,북한의 핵카드는 앞으로 남북 협상에서 제기될 장애 요인을 사전 제거하는 수단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이다. 북한문제 전문가 김남식씨는 “ 북한이 그동안 한국에 요구해온 조건을을 미국 과의 회담을 통해 관철해 왔다는 점이 미?북한 회담의 또 다른 의미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4월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 회의는 새로 출범한 문민 정부에 대해 △ 통일문제에서의 외세 배격△팀스피리트 등 군사훈련 중지 △주한미군 철수 의지 표명△미국의 핵우산 제거를 요구 조건의 상당 부분이 지난해 6월 미?북한 1단계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측에 의해 대신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 북한은 그 동안 한국에 대해 △전술핵 철거 △국가보안법 폐지△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주한미군 철수 △대미 관계 개선 등 5대 요구 조건을 내세워 왔다라는 지적한 뒤, 현재 이런 요구 조건의 상당 부분이 미국측에 의해 수용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미?북한 회담 과정에서 남북관계 정상화의 장애 요인이 상당 부분 희석됐다고 북한이 판단하고 있다면 ,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민족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한국과의 통일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리 정부 처지에서도 진공 상태에 빠진 남북간 핵 협상 통로문제 및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 더 나아가서는 국내 정국의 위기 탈출이라는 다각적인 포석의 일환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절실해진 상황이다. 핵 협상 통로와 관련해 특사교환 철회 이후 정부는 핵통제공토위원회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국제원자력 기구의 추가 핵사찰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핵통제공동위원회는 시기상으로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우세하다.또 남북관계는 이미 91년 몇 차레 총리 회담을 툉해 남북기본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채택한 상황이므로, 정상회담 이외에 더 이상의 고윕급 회담이 필요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상무대 자금문제, 이회창 총리 전격 사퇴등 난조를 보이는 정국 돌파를 위해서도 정상회담은 매력적인 카드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지난 50여년 간의 남북 분단 체제 극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만큼이나 남북 양측에 정치적 부담을 수반한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우리 정부로서는 지나 1년간 핵카드를 앞세운 북한의 교묘한 정치 공세로 인해, 통일 방안을 둘러싼 협상이 남북간 내부문제로 좁혀져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있다.

 싫든 좋든 앞으로 있는 북한과의 협상은 우리 스스로의 판단과 결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이에 대한 대비책들 지금부터라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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