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찍는 데도 로열티 나간다
  •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4.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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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만원짜리 지폐 위조 방지 장치 사용료로



 새만원짜리는 위조가 거의 불가능하다. 올해 들어 통용되기 시작한 이 지폐는 종전의 만원권에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네 가지 장치가 덧붙어 있다. 이것들은 눈으로 보아서도 위조 여부를 쉽게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이 장치들을 아예 위조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경제 사범인 위조범들이 경제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만원짜리 지폐를 이용한 범죄는 위조바다는 변조(기존 화폐에 손을 대는 범죄 행위) 쪽에 쏠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원짜리의 앞뒤 면을 가르고 한 면에 창호지를 붙인 지폐와 같은 변조 지폐가 나돌리라는 것은 어느 전도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최근 들어 이런 종류의 원시적인 변조 지폐는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위조범들의 채산성을 악화시킨 이 새 만원짜리는 조폐당국에서 똑같이 경제적 부담을 주고 있다. 위조 방지 장치를 첨가함으로써 제조 원가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79쪽 상자 기사 참조)

로열티 액수는 ‘비밀 사항’
 특히 로열티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일부 장치는 세계적인 특허권이 외국 회사에 있어 로열티(특허권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가장 강력한 위조 방지 장치로 꼽히는 지문 모양의 ‘물결 무늬’(통상 명칭)이다. 새 지폐에 단순한 원형 무늬로 각인된 이 장치는 컬러 복사기나 레이저 스캐너로 복사하면 모양이 변한다. 푸른 빛 지문 모양 무늬에 보랏빛 모래 시계 모양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사진참조). 이 장치는 날이 갈수록 발달해가는 복사 기술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미국의 한 업체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시에 있는 위커그룹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 로열티를 내지 않고 이 장치를 사용할 방법은 없다. 한국조폐공사의 한 관계자도 ‘물결 무늬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로열티 액수를 비롯한 구체적인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꺼렸다.

 물결 무늬 도입 계약에 관여했던 조폐공사의 또 다른 직원은, 구체적인 로열티 지급 조건을 밝힐 수 없는 이유로 특허권자와 맺은 계약서상의 ‘비밀 유지 조항’을 들었다. 잉 조항에 따르면, 계약에 관한 비밀이 새나가 문제가 생길 경우 모든 책임은 한국 조폐공사측에 있다. 다분히 특허권에게 유리하고 조폐공사측에 불리한 조항인 셈이다. 계약 담당자는 “계약을 맺을 때 참고할 만한 계약의 예를 찾기 위해 수소문해 보았지만 허사였다. 모범으로 삼을 에가 없어 애를 먹었다”라고 털어놓았다. 당시에는 이 첨단 장치를 도입한 나라가 거의 없었다는 반증이다.

 조폐공사측이 로열티 지급 계약을 맺은 회사는 영국의 중앙 은행인 ‘뱅크 오브 잉글랜드’의 자회사인 포탈사이다. 물결 무늬에 대한 전세계적인 특허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워커그룹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조폐공사측은 다만 포탈사가 위커그룹의 특허권에 대한 대리인이거나 아니면 그 반대일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조폐공사측은 포탈사와 포괄적인 로열티 지급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다른 위조 방지 장치에 대해서도 로열티를 지불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조폐공사측은 이미 세계적인 특허권자가 외국 회사임이 널리 알려진 물결 무늬 외에 다른 장치들에 대해서는 로열티 지급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특허권이 우리나라에 없는 다른 위조 방지 장치들에 대해서도 로열티를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결 무늬 외의 위조 방지 장치는 △앞면(세종대왕 초상이 들어 있는 면)의 ‘만’자와 ‘원’자 사이에 넣은 부분 노출 은선 △앞면의 물시계 밑아 아주 작게 새겨 넣은 ‘한국은행’이라는 글씨 △세종대왕 초상 오른 쪽 앞면과 뒷면 맞춤 부분에 세로 방향으로 작게 써 넣은 ‘10000’이라는 숫자이다.

 이 안전 장치들 가운데 일부는 위조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눈으로도 위조 지폐인지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데다가 일부 장치는 고성능 복사기로 복사할 경우 색깔이 바뀌거나 원판과 다른 무늬들이 생겨난다(《시사저널》제201호 시사안테나 참조).

 물론 기존 만원짜리에도 위조나 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는 있었다. 일반 종이의 질과는 다른 지질을 사용했고 형광 잉크나 색사, 적외선이나 엑스선을 쬔 부분을 넣었다. 대표적인 것이 뒷면의 여백에 숨겨 놓은 그림. 밝은 빛에 비추면 보이는 세종대왕의 초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장치들은 일상 거래에서 일일이 점검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은 92년 12월21일 위조 방지 장치 네 가지를 추가해 넣은 새 지폐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지폐는 올해부터 기존 만원짜리와 혼용하고 있다.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고급 제품이 등장해 기존 상품을 대체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그러나 새 만원짜리를 쓸때마다 그돈의 일부가 로열티로 나간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이 때문에 유통 될수록 값어치가 증식되는 화폐의 속성이 훼손될지도 모를 일이다.
金芳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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