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억자리 꿈에 몸 단 지방대들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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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학 ‘국책대’ 경쟁…‘특혜 시비’우려도

지난 85년 창원으로 이사오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단 국립 창원대학교는 요즘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다. 일이 잘만 풀리면 명문 대학으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기 때문이다. 전국이 유례 업는 가마솥 더위로 푹푹 지는 요즘, 지방대 가운데는 창원대처럼 단꿈에 젖어 더위마저 잊은 대학이 여럿 있다. 바로 국책대 지원 사업 1차 심사에 통과한 12개 지방 대학들이다.

 7월18일 교육부는 국책대 지원 사업 1차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32개 신청 대학 가운데 1차 심사를 통과한 대학은 12개로 모두 지방대이다. 지역간 균형 발전을 위해서나, 지역 산업체 요구에 부응하는 고급 산업기술 인력 양성을 위해서 애초부터 수도권 대학을 신청 대상에서 제외한 결과다. 지난해 교육부가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내건 취지는 ‘주요 산업권역별 현지 인력 양성 및 활용을 위해 교육 중심의 지방 공대를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1차로 선정된 12개 대학에 대해 2차 현지 실사를 거친 뒤 8월 안으로 국책대 사업을 최종 마무리지을 예정이다.

 현재 교육부가 1차로 선정한 분야는 모두 공과 계통이다. 예컨대, 강원대가 1차 심사를 통과한 분야는 환경 기술 및 생물 자원 에너지 분야다. 경북대는 전기·전자 분야에서, 충북대는 반도체 정보통신 분야에서 각각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또 경상대는 재료공학 쪽에서, 경남대·부산대·영남대·창원대는 기계공학 분야에서 심사를 통과했다. 그밖에 울산대·원광대·전남대·전북대는 자동차공학 분야에서 1차 선정됐다(아래 표 참조)

 국책대 사업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책대로 선정된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가 매년 1백억원씩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사업 기간이 5년이므로 한 대학에 지급되는 지원금 총액은 5백억원이 된다. 지금까지 정부가 특성화 목적으로 대학에 지급해온 지원금 규모는 많아야 20억원 안팎이었다. 규모가 이처럼 유례없이 큰 데다가, 국책대로 선정받는 대학에 대해서는 지역 산업체에서 국고 지원금 못지 않은 규모의 대응자금, 이른바 ‘매칭 펀드’를 내놓게 되어 있다. 이번에 국책대 신청서를 낸 한 대학의 경우는 기업체로부터 지원을 약속받은 대응 자금 규모가 8백억원에 이른다. 국책대 사업이 대학은 대학대로, 지역은 지역대로 발전과 도약을 위한 획기적인 기회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각 대학은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다. 기획평가위원회에 제출해서 심사받게 되어 있는 발전계획안 내용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대학의 발전 가능성과 지역 특성을 내세우는 등 온갖 지혜를 짜냈다는 것이다. 그 예로, 강원대는 환경공학 분야로 1차 심사를 통과한 유일한 대학이라는 점과, 그동안 이 분야에서 이룬 연구실적이 많다는 점을 내세웠다. 기계 공학 분야에 신청서를 낸 창원대는 국내에서 대표적인 기께 공업 단지인 창원공단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집중 홍보했다.

지역 주민들도 가세, 과열 조짐

 창원대·영남대 등과 나란히 기계공학 분야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부산대는 다른 강점을 내세웠다. 부산대는 먼 앞날을 내다보고 지난 20년간 기계공학을 중점 육성해 왔으며, 그 결과 지난해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실시한 학과 평가에서 최우수 판정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이 대학 기획연구실장은 “국책대로 지정되기만 하면 부산지역 산업체로부터 대응 투자자금을 끌어들여 국내 최고 수준의 특성화 대학을 남들 수 있다”라고 자신한다.

 지역 주민의 성원도 전에 없이 뜨거웠다. 지원 규모가 엄청난 데다가, 파급 효과까지 적지 않아, 신청서를 낸 대학이 속한 지역 주민들은 그 지역 출신 국회의원, 시·도 의원은 물론 도지사나 시장 등 각급 기관장까지 총동원해 자기 지역에 국책대를 유치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교육부의 한 담당자는 “각 지역마다 ○○국책대 추진위원회 같은 모임들이 만들어졌다. 내용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경쟁이 도를 넘어선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책대 사업이 자칫 지역간 대결 양상으로 번질까 걱정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과열 양상까지 보이며 추진되는 국책대 사업이 과연 온당한 방식에 따라 진해오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일고 있다. 먼저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애초에 3~4개 권역을 설정한 뒤 권력별로 1~2개 대학을 선정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그런데 교육부가 1차 심사과정에서 결정한 권역은 중부·호남·영남권이었다. 만약 원칙대로 지역간 형평을 고려해 권역을 나누고자 했다면 중부권은 당연히 강원권과 충청권으로 세분화했어야 옳다는 것이다.

선정 기준 분명치 않아 잡음 소지

 또 이번 사업에서는 이미 특성화 대학으로 지정되어 지원을 받았던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을 어떻게 구분해 심사할지에 대해서 기준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책대 기획평가위원회가 심사할 평가 항목에는 각 대학이 국책대 사업을 달성하기 위한 기반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이미 특서오하 대학으로 선정되어 지원받았던 대학이, 그렇지 않는 대학보다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을 것은 당연하다. 강원대 이신영 교수는 “이번에 신청한 대학 가운데 한번도 특성화 대학으로 선정되지 못했던 대학에는 가산점을 주어야 옳다”라고 주장한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국책대 사업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현재 4개대로 정해진 국책대 선정 대학 수를 2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사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투자를 집중한다는 발상으로 선정 대학 수를 4개 대학으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12개 대학이 저마다 국책대 선정을 학수고대하는 상황이어서 교육부의 이같은 발상은 자칫 잡음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치종 선정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한 대학 총장은 말한다. “한 대학, 그것도 공대에만 5백억원을 준다면 이유야 어떻든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지원금을 반으로 줄어더라도 선정 대학 수를 늘리는 것이 사업 취지에 더 어울린다고 믿는다.”

 그러나 교육부의 고민은 특혜 시비를 벗어나기 위해 균등 시혜를 베풀 수도 없다는 데 있다. 지방 대학들의 5백억짜리 싸움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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