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장군식 사고방식이 문제"
  • 안동현 (한강성심병원 정신과의사) ()
  • 승인 199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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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사유물로 여기는 의식 사라져야

 한국 위인전을 보면 백제의 영웅 계백장군이 임전에 앞서 자기 자식들을 모조리 죽이고 결사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는 대목이 나온다. 패전했을 때 그의 혈육이 적군의 노예가 되는 치욕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원은 다르지만. 약 10년 전 흉악범 이종대가 자신의 처자식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다 동반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그가 자식들까지 죽이면서 "살인범의 자식으로 손가락질 당하며 사는 것이 싫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같이 우리 사회에는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거나 동반자살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이 같은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 6월2일에는 어머니가 아들 · 딸을 차례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수사 초기 술취한 아버지가 처자식을 살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서울시내 한 아파트에서 발생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영아살해(infanticide)는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외아들이삭을 신음 위해 희생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종교적희생. 불구기형아나 쌍둥이 중 두번째 출산아를 죽이는 일부 사회의 관습,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자식을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경우 등 영아살해는 시대와 사회적 과습에 따라 차이는 있지마 인간 사회에 비교적 널리,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최근 인간 존중의 사상적 영향으로 인해 서양은 물론 서양에서도 아동을 중시하게 되면서, 또 아동을 부모가 택한 대로 다룰 수 있는 소유물이라는 믿음의 역사적 뿌리가 흔들리고 아동도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권리와 인권을 갖는다고 하는 사상이 퍼지면서 영아살해를 포함한 아동에 대한 가혹 행위들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이 경우를 아동학대(child abuse)의 관점에서 보고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다른 관점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우선 발생되는 빈도에서도 73-74년 1년간 일본에서는, 아동 학대 26명, 유기 1백 30명, 살해유기 1백 37명, 살해54명, 동반자살 67명의 예가 보고되고 있는데. 이는 아동학대가 많고 유기나 살해. 동반자살이 적은 서구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한국에서 정확한 통계를 얻기는 어렵지만 우리도 일본과 상당히 유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인공유산이나 원치 않는 출산의 처리방법으로 이루어진 유기나 살해도 포함되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는 모자관계의 지나친 밀착성 때문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이것은 동반자살에서 압지보다는 어머니가 자녀를 살해하는 경우가 전체의 3분의2 이상이 되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10여년 전 심한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한 어머니가 비슷한 정신질환을 앓는 세 딸을 사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딸들만 살해하고 자신은 미수에 그쳐, 후에 정신감정을 받은 경우 가 있었는데 이와 같이 부모의 정신질환에 의한 극단적인 살해는 비교적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자식을 자신의 일부, 또는 소유물로 여기는 자기애적 경향(narcissism)과, 아동이 자신의 권리와 인권을 갖는 인격체로 대우 받지 못하는 사회적 여건, 대가족 제도의 붕괴에 따른 대체부양자가 없다는 점, 사회보장제도의 불완전함, 개인보다는 가족이나 가문 등 협연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적 관습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개인의 이기적 경향이 증대되는 정도를 사회여건의 변화가 맞춰가지 못하는 한 이 같은 불행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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