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공산당도 개혁 기지개
  • 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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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급변에 위기의식 고조

佛. 伊 .스페인 좌익 정당 새 노선 수립 구체화

  동유럽 국가들의 위기적 분위기가 심화되고 선거에서 反사회주의 정당이 승리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자 서유럽 좌익 정당들의 이념적 혼돈이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  동유럽의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의 실패가 사회주의 일체의 몰락으로 선전되는 위기를 맞이해서, 공개적으로 그러한 사회주의를 지지하던 서유럽 공산당들 중에는 국내외의 변화된 현실에 맞게 새로운 노선을 수립, 현재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공산당의 경우 81년부터 84년까지 사회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가 실패한 경험 때문에 사회당에 대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 차원에서 사회당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공산당계 시장들은 당중앙의 이같은 대립노선을 따르지 않고 있는데 이들의 발언권이 지난 88년의 선거를 계기로 강화되고 있다. 샤를 피테르방 전 교통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세력은 임시 당대회의 소집과 정치국원 전원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은 보수파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서독 공산당 당원 40% 탈당에 재정난까지

  포루투갈 공산당은 지난 5월20일 임시 당 대회에서 알바로 쿤할을 서기장으로 다시 선출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교조적 성향을 지닌 카를로스 카르발하스를 부서기장, 즉 쿤할의 후계자로 선출함으로써 스탈린주의 노선을 고수하기로 결의했다.  이 대회에서 개혁파는 몇가지 강령 조항을 수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당 지도부에까지는 진출하지 못했고, 몇몇 중요한 개혁당원은 대의원으로도 선출되지 못했다.  29년 전부터 서기장을 역임해오고 있는 쿤할은 이 대회에서 한편으로는 동유럽 국가들의 변화를 잘못 판단한 점도 있다고 자기 비판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나라의 형제당들이 “공산주의의 이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비난했고 페레스트로이카를 거부하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서독 공산당은 3월말에 열린 당대회에서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하고 새로운 정관을 채택, 개혁의지를 선언했지만 분열된 모습은 극복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는 당을 해체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출생지에는 공산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통일 후에는 동독 민주사회당(구 공산당)과 제휴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창당이래 동독공산당의 노선을 거의 맹목적으로 추종해왔기 때문에 동독 공산당의 위기는 서독 공산당의 위기로 직접 이어져, 당대회를 앞두고 몇 달 사이에 40%의 당원이 탈당했으며 심한 재정난까지 겪고 있다.  부당수였던 엘렌 베버는 당대회에서 당이 그동안 “잘못된 사회주의상에 집착했다”고 자기비판을 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는 주로 북부독일 지역에서 젊은 당원을 중심으로 개혁분파가 형성되고 있지만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당내 개혁에 한계를 느끼고 탈당했다.  서독 공산당 내 노선투쟁은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활동적인 젊은 당원들 사이에서는 개혁파가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서유럽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이탈리아 공산당은 일찍이 스탈린을 거스른 그람시의 전통이래 서유럽 공산당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공산당으로 평가되어 왔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몰락되기 직전에 열린 루마니아 공산당대회에는 독재에 항의하는 표시로 공산당으로서는 유일하게 대표를 보내지 않았었다.  전국적으로 25%내외의 지지를 받으면서 기민당 다음의 제2당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15개 지구 중 3개 지구에서는 사회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작년 3월의 당대회에서는 당지도부의 세대교체와 함께 전략 수정이 이루어졌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그동안 ‘역사적 타협’이라 불리는 기민당과의 연립정부 구성전략을 채택해왔으나 기민당의 계속적인 우경화 때문에 최근에는 그같은 전략의 실현 가능성이 없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대신 “모든 진보적 세력파의 폭넓은 연대”를 구하면서 그들과 ‘그림자 내각’을 구성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당명을 노동당으로 바꾸어 모든 생산대중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총체적 개혁’을 추진하려는 오케토 당수의 노선에 대해 <일 마니페스토> 지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갈수록 그 힘은 줄어들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공산당뿐만 아니라 사회당 사민당 노동당과의 관계개선에도 적극 노력하고 있다. 

 

스페인 공산당, 사회당과 연립정부 가능성

  스페인 공산당은 지난 5월초에 가진 임시당대회에서 당내 민주주의의 강화와 ‘유럽 좌익’으로의 지향을 결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당의 통일성은 신성하다”는 보수파의 주장도 있었지만 분파활동을 허용함으로써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공산당의 주도하에 사회주의 행동당, 공화주의 좌파 등으로 구성된 좌익동맹인 ‘이즈퀴에르다 우니다’(Izquierda Unida)가 작년 10월의 선거에서 1백만표 이상을 추가, 제3당으로 부상함으로써 개혁 공산주의 노선의 현실성이 입증되었다.  이에 힘입어 ‘이즈퀴에르다 우니다’는 집권당인 사회당과의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 동맹 출신의 유럽의회 의원 페르난도 페레즈 토요는 ‘신비주의로부터 벗어나자’ 글에서 지금까지 공산당 노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회당과의 대결에 종지부를 찍을 것을 촉구했다.  사회당은 작년 선거에서 표를 잃은 데다가 이미 2년 전부터 사회당의 정책에 불만을 가진 사회당계 노조가 사회당과 거리를 두면서 공산당 계 노조와 행동통일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금년 초부터 불가피하게 좌경화하고 있다.  공산당과 사회당의 이러한 접근 경향이 적어도 지역 차원에서는 머지않아 연립정부로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공산당 서기장을 역임한 바 있는 산티아고 카리요는 한걸음 더 나아가 “미래는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접근을 강요할 것이고 마침내는 단 한나의 좌파 정치집단만이 있을 것” 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서유럽 공산당들의 이러한 혼돈은 단지 동유럽 사회주의의 위기에만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유럽 좌파들 사이에서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이론적·실천적 정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으면 그 대표적인 예가 70년대의 ‘유로코뮤니즘'이다.  현재의 혼돈을 극복하려는 서유럽 공산당들에게는 적어도 세가지 이론적 과제가 주어지고 있다.

  첫째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몰락과정에 있다는 공산당의 과거 주장은 적어도 80년대 후반부터는 그 타당성을 잃었다.  둘째는 새로운 변혁주체를 확립하는 것이다.  공산당의 전통적인 핵심기반이던 노동계급의 ‘일관된 혁명성'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허구였음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그 수가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식 프콜레타리아트'가 주목받고 있다.  셋째로는 새로운 ‘인간적,민주적 사회주의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동안 동유럽의 사회주의 모델은 일부 공산당 이외에는 누구도 원치 않는 사회주의였다.

  유럽의 경제적·정치적 통합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서유럽 공산당들에게는 유럽 차원에서 국제협력이라는 실천적 과제가 주어지고 있다.  이 과제에 대응해서 이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세력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려는 민주세력도 포함하는 ‘유럽좌익’이라는 폭넓은 연합전선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는 사민당과 사회당 내 좌파 및 녹색당 내 ‘환경사회주의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우파 사회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공산당이 2차대전 후 동유럽에서 스탈린의 지원을 받아 그들에게 가한 가혹한 탄압 때문에 공산당에 대한 의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동유럽에서 실시된 자유선거에서 패배한 공산당들이 순순히 야당이 되고 소련 공산당의 ‘인간적. 민주적 사회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전략적 동맹상대로 규정됨에 따라 그 의혹은 점차 해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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