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인권, 南은 경종 北은 실종
  • 김 당 기자 ()
  • 승인 1990.08.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 앰네스티《연례보고서》에 나타난 인권 상황 요약

 지난호 《시사저널》(제39호) 경제면을 보면 ‘한국 행복順은 34위’라는 제목을 가진 색다른 기사가 있다.  그것은 국제연합개발프로그램(UNDP)이 나라마다의 여러 삶의 지표들을 종합해서 제시한 ‘인간개발지수’(HDI)를 그림으로 풀어본 기사인데 그 지수로 따져본 ‘행복은 성적순’은 남한이  34위, 북한이 49위였다.  그렇다면 과연 남·북한 ‘인권의 성적순’을 매긴다면 어떻게 나타날까?

  아직까지 그런 ‘성적표’는 나온 적이 없지만 여러 국제기구나 인권단체들이 해마다 발표해온 연례보고서들을 토대로 기준을 잡는다면, 이를테면 ‘인권보장지수’같은 것을 산출해내는 일이 불가능해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대충 얼개를 짜본다면 의문사 및 고문치사 수효, 정치범 및 양심수와 시국관련 수배 및 구속자 수, 영장없는 체포·압수수색과 불심검문 및 강제연행, 변호사 접견거부와 고문 및 가혹행위, 보안감호처분이나 강제노역 또는 사형제도의 수용 여부, 국제인권규약 가입 여부 등을 그 뼈대로 삼을 수 있겠다.  그러나 품이 많이 들뿐더러 무엇보다도 객관성 유지를 요구하는 그러한 일은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인권기구의 몫으로 남겨두고 여기서는 권위있는 국제 민간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의 연례보고서를 통해 남·북한의 지난해 인권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해마다 세계 인권 상황을 조사한 보고서를 발간해온 국제 앰네스티는 올해에도 《연례보고서》(Amnesty International 1990 Report)를 7월11일자로 배포했다.  그 보고서는 북한 인권 상황을 1페이지 분량이 조금 못되게 다룬 반면에 남한은 3페이지 분량이 조금 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에서도 밝힌 ‘고백’처럼 분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인권지표의 높낮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정부는 앰네스티 조사단의 자유로운 입국 및 조사는커녕 정보 접근마저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앰네스티로서는 ‘아는 게 없어서 풀어먹지 못한’결과인 셈이다.  한편 올해에도 법무부는 보고서가 나오기 무섭게 “한국에 이른바 양심수는 한명도 없다”고 공식 논평했다.  사실 법무부의 논평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권을 보는 시각과 기준이 서로 다를뿐더러 국내 실정에 어두운 탓에 그 보고서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해마다 발간해온 《인권보고서》등에 견주어 정확도가 뒤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제3자가 본 인권지표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객관적 타당성을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 주요언론이 ‘곧이곧대로’인용하기 때문에 한국정부처럼 일관되게 ‘무시’만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다음은 보고서의 남·북한 인권 상황을 요약한 것이다.

 

북한

정치범 수만명 강제 노역

  몇몇 소식통은 북한에는 정치범이 수천명에 이른다고 전하나 북한 인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란 매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이 통계를 확인할 수 없다.  북한정부 당국자들은 엄격한 검열을 유지하고 있으며 당국과 언론매체들은 체포, 정치재판이나 사형등에 관한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고 있다.  몇몇 비공식적인 보고에 따르면, 북한은 그들이 지난 81년에 가입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CPR;이른바 B협약)이 보장하는 표현 및 결사의 자유를 빼앗는 투옥을 광범위하게 되풀이하였다.  김일성주석과 그의 아들이자 정치 후계자인 김정일 또는 로동당의 정책을 비판한 사람은 장기징역을 살아야 한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대자보를 붙인것과 관련, 88년 중반에 체포된 것으로 보도된 평양대학과 김책공업대학의 교직원과 학생 40여명이 석방되었는지는 89년말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 방문객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기초로 해서 앰네스티가 88년에 작성한 권위있는 보고서에 따르면, 87년 4월 현재 수만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전국에 흩어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노역중인 것으로 보인다.  청평 회령 경성 온성 사리원 영변 등지에 산재한 강제수용소와 수감자에 대한 더 이상의 정보를 얻기란 불가능했다.

  국제앰네스티는 89년 5월 북한에 있어서의 앰네스티의 관심사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 보고서는 재판·소송절차, 강제수용소, 사형제도 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한편 국제앰네스티 대표단은 89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초청받았지만 북한 당국이 제때에 입국사증을 발급하지 않음으로써 참석하지 못했다.  축전에 참가한 몇몇 대표자들은 개회식에서 국제앰네스티를 지지하는 구호가 적힌 깃발을 들고 행진을 벌였으나 보안요원들에 의해 습격을 받고 깃발도 빼앗겼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의 인권준수를 주창하는 다른 플래카드는 빼앗기지 않았다.

 

남한

반정부인사 8백여명 투옥

  적어도 1백명의 양심수를 포함한 8백명쯤이 반정부활동 때문에 투옥되어 있다.  그밖에도 수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시 구금당했다.  반정부인사들이 한국정부의 통로를 거치지 않고 여러 차례 북한과 직접 접촉을 시도함에 따라 정치 탄압의 물결(공안정국)이 밀어닥쳤다.  지난해 4월3일에는 경찰·검찰·국가안전기획부·국군보안사령부 등이 참여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합수부는 6월19일 해체될 때까지 정치적 혐의로 3백17명을 체포했으며 다른 1백26명을 불구속으로 기소했다.  같은해 하반기에도 숫자는 줄었지만 검거선풍은 계속되었다.

  지난해 4월에 새로 개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공공질서와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전제아래 집회 및 시위를 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5월에는 국회가 사회안전법을 폐지했는데, 그 법률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자로서 ‘완전한 반공주의자’로 여겨지지 않으면 기소나 재판 없이도 법무부장관이 행정처분(보안감호)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돼 있었던 것이다.  그 법은 지난해 6월에 제정된 보안관찰법으로 대체되었는데 새 법률 또한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결사, 표현, 거주이전 등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경우, 이미 88년에 주요 정당들이 개정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적 사건 수사에 관여하고 있는 군 및 민간 공안기관의 역할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양심수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시국사범들 중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구속된 유형을 보면 △폭력행위를 포함하여 파업과 관련해서 체포된 3백명에 가까운 노동자 △폭력시위 참여 또는 ‘북한을 지지’한 혐의로 체포된 학생 2백70여명 △교원 노동조합을 설립한 교사 60여명(연행된 교사는 수천명에 이른다) △그밖에 반정부단체 회원, 출판·예술인, 노점상인, 재개발 때문에 도시에서 쫓겨난 철거민 등 수십명이다.

  5월 중순께부터 8월 사이에는 자신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한 평화 집회와 다른 활동에 참가한 교사 수천명이 연행되었다.  정부당국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불법단체로 규정하는 한편 그 조직의 핵심 교사들을 학원에 ‘좌경’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대부분은 불구속으로 풀려났지만 교사 60여명은 국가공무원법이나 사립학교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지난해는 밀실수사 관행이 되살아났다.  변호사회는 자신들의 고객들에게 변호사 접견권을 제약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문익환목사와 북한 취재를 ‘기도’한 이영희교수의 변호인단은 두 사람이 체포된 뒤 검찰총장에게 항의를 제기한 다음에야 비로소 8~9일쯤 접견을 허용받았을 뿐이다.  한편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참가한 임수경양 사건의 경우, 체포된 지 3주일이 넘어서야 그녀를 만나볼 수 있었던 대표 변호인들은 그뒤에 간신히 변호에 필요한 소송절차를 확보할 수 있었다.

  몇몇 정치범들은 자신들이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외부와 연락이 단절된 채로 구금된 동안 잠을 전혀 못자고 두들겨맞았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작품이 북한에서 전시된 뒤에 체포된 4명의 예술인 중 한 사람인 화가 홍성담씨는 자신이 전혀 잠을 자지 못한 채로 얼굴을 구타당하거나 기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밝혔다.  나중에 홍씨의 요청으로 열린 법정심문에서 재판부는 홍씨가 안기부에 의해 구금중 오른쪽 다리와 왼쪽 귀에 상처를 입었다고 결론지었다.

  직권을 남용한 가혹행위에 대한 비슷한 주장은 북한을 방문했던 야당 국회의원 서경원씨와 그의 비서관 방양균씨 그리고 문익환목사와 함께 방북했던 기업인 유원호씨 등에게서도 재기되었는데 이들은 재판을 받기 전까지 두들겨맞고, 잠을 못잤다고 진술했다.  보도된 바로는, 재판부는 “방양균씨 사건의 경우 안기부에 의해 고문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