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光一민주당정책위 의장
  • 박중환 정치부차장 ()
  • 승인 199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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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통합 오래 못가”

 “갑자기 실업자가 된 기분입니다. 국회의원직을 사직한 마당에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허허….” 金光一민주당정책위의장이 인터뷰요청에 내던진 첫마디였다. 국회의사당 의회회관 603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삿짐 뭉치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4 · 26 총선이 있기 한달 전인 88년 3월말. 그후 불과 2년4개월 동안 그의 정치역정은 13대국회의 우여곡절을 그대로 보여준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청문회에서의 활약으로 ‘스타’로 부상했고, 3당합당 참여를 거부하고 민주당에 남아 주목을 받았다. 이어 민주당총재 경선에 갑자기 나서 상당수의 국민들을 의아하게 했고, 소속의원 전원의 의원직 즉각 사퇴결의에 당론이 모아졌는데도 신중론을 제기해 당내외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했다.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 14년 동안 부산 경남 · 북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는 지금 정치를 계속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에 싸여 있다고 한다.

 

● 야권통합의 열기가 어느 때보다 높은 듯합니다. 그러나 통합의 성사 여부를 전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통합이 어느정도 진척돼 있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통합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야당이 여당을 견제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적 통합요구는 87년 정권교체의 호기를 야권의 분여로 놓쳤기 때문에 다시 통합해서 수권정당으로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토록 하라는 것입니다. 통합이 되더라도 건전하고 강력한 야당을 만들지 못할 경우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신중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부산출신이니까 평민 · 민주 두 당의 무조건 통합시 김대중총재가 있는 한 불리할 것으로 보고 통합에 반대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통합을 하려면 통합을 어렵게 했던 문제를 찾아내 해결해야 합니다. 그 문제는 바로 87년도의 분열 원인에서부터 비롯하고 있습니다. 서울 보라매공원 집회 이후 금방 통합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겉모양과는 달리 속을 들여다보면 본직적인 문제는 간과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통합이 되더라도 그 이후에 더 큰 문제를 안게 됩니다. 지금은 그런 문제를 배제한 채 열기만 고조된 단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시 고조됐던 열기가 식고 이성을 찾게 되면 본질적인 문제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 본질적인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87년 두 김씨의 분열은 이념의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또 단순히 지역적인 이유만으로 생긴 것도 아닙니다. 김영삼 · 김대중씨는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해서 나뉘어졌던 것입니다. 타협이 안되면 정당한 규칙에 따라 경쟁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적이 룰인데, 룰도 당(신민당)도 깨어 버렸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야당이 분열되기를 바라는 집권당의 의도대로 도와준 결과를 낳았지요. 그래서 첫째 자신을 위해서는 룰도 당도 깰 수 있다는 세력이나 요소를 제거해야 하며, 둘째 야당을 분열시켜 통치하려는 공작정치가 없어져야 합니다.

● 지금 하신 말씀을 요약하면 룰을 깬 세력, 즉 김대중총재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입니까?

  특정인의 이름은 거명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 특정인은 통합야당에서 다시는 대통령후부 문제로 당을 깨지 않겠다는 보장을 확실히 하거나 야권통합의 장에서 물러나야 진정한 야권통합이 확립된다고 봅니다. 87년 분열의 책임은 지역감정이 상승 · 확대 · 증폭돼 무이성적인 거부감으로 발전한 데 있습니다. 이런 악화된 감정을 이성만으로 해소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쪽의 감정을 수용할 수 있고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방안은 어느 지역에서나 극단적인 거부감을 갖지 않는 제3자가 실질적인 지도체제를 구성한다든가, 아니면 어느 한쪽이 실질적인 실력을 절대적으로 행사하지 않도록 하는 보장 등이 되겠지요. 그렇게 해서 분열된 모든 야권세력이 참여할 때 진정한 야권통합이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김대중총재가 있는 평민당과 합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서(이기택총재의 말대로) “경상도를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통합을 하겠다”고 주장한다면, 경상도 사람들을 버려두고 통합을 하겠다는 말인데 제대로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통합이 아닙니다. 야당을 지지하는 영 · 호남사람 전부를 통합시켜야 진정한 통합입니다. 일부를 버리면서 또다른 통합을 하는 것이 통합입니까. 또하나의 분열을 통한 통합일 뿐입니다. 또 지적하고 싶은 것은 5공에서 탄생된 6공세력과 야합해온 야당 정치지도자들은 책임을 진실로 느껴야 합니다. 여소야대 시절 두 김씨는 중간평가를 연기해주었고, 이른바 12 · 15라는 사기적인 대타협으로 5공청산을 눈감아주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6공과 경쟁적으로 연합을 모색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통합야당의 대표로서 다음 총선에서 민자당과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 중간평가 무기연기, 12 · 15 대타협 등을 야합이라 비난했습니다. 정치는 절충과 타협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재야에서 활동할 때 원칙고수와 선명성만을 강조했습니다. 정치세계에서는 이해와 생각이 다양한 국민을 통합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협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일본과 독일은 2차대전 이후 군국주의와 나치 책임자들을 역사의 이면으로 후퇴시키는 지혜를 발휘했기 때문에 오늘날 모범적인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해방후에는, 4 · 19후에도, 여소야대 국회에서도 그런 과거청산을 못했습니다. 80년 광주에서 엄청난 학살사태가 있었는데도 그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처리도 않은 채 넘어갔습니다. 5공비리를 척결하겠다고 떠들어놓고는 일부 손만 대고 얼버무리고 넘어갔습니다. 12 · 15대타협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그런 점에서 두 김씨는 물러나야 할 세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추진되는 야권통합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말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런 문제점들이 언제쯤 현실적으로 대두할 것으로 보십니까?

  김 · 이 두 총재의 말대로 정기국회가 열리는 9월초까지 무조건 통합절차를 마무리지으려 한다면, 그즈음 터져나올 것입니다. 먼저 합당부터 하고 뒤에 문제를 해결하자는 통합방식은 민자당의 3당합당과 다를 바 없습니다. 3당합당 때 1노2김의 이해관계 때문에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았는데도 밀실에서 합의한 뒤 합당을 선언했지요. 지금도 삐걱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 세사람은 그래도 각서라도 써서 남겼습니다. 그런데 김 · 이 총재는 각서도 없었고, 당내여론수렴도 공론조성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평민 · 민주 두 당을 비교해 보십시오. 평민당은 총재 한분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고, 민주당은 8인 8색이라 할 정도로 지나치게 민주적입니다. 전혀 다른 생리를 가진 두 당을 우선 합하자고 해 통합시켜 놓으면 제대로 가겠습니까? 또 양당 총재는 그동안 야권통합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요. 한쪽에서는 통합논의가 나오면 자신의 거취문제가 대두될까봐 기피해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통합되면 상대당에게 흡수될까봐 신중론을 펴왔습니다. 그런 두분이 지난 7월18일 회담을 가진 뒤 열렬한 야권통합론자로 표변했지요. 지난날을 돌아보면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 그렇다면 건전한 야권통합은 언제쯤 가능하다고 봅니까?

  다음 총선이 임박해지면 야당이 분열된 상태로는 이길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될 것입니다. 또 야권분열의 책임자와 5 · 6공 세력과 야합했던 사람은 물러가라는 여론이 생길 것입니다. 그즈음이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호남지역에서도 그런 여론이 서서히 생겨 확산될 것이라 봅니다.

● 화제를 바꾸어 야당의원들의 의원직 사퇴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현실적으로, 법률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당이 의석의 3분의 2이상을 지배해 날치기도 불사했다면 의회기능은 이미 상실된 것입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민자당이 날치기 입법을 했다는 것만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날치기를 안하더라도 무슨 짓이든 국회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퇴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퇴를 하려면 그 시기가 중요합니다. 야당이 수권정당으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집권여당이 날치기를 해도 흥분하지 않고 국회내에서 계속 싸우는 자세가 먼저 필요합니다. 다음 정기국회에 참여해 한번 더 싸워본 뒤 민자당이 여전히 다수의 힘으로 개헌까지 밀어붙이려 한다면, 소수의 야당으로는 안되겠다는 국민의 여론이 비등하게 될 것이니 그때에 사퇴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지요. 그래야 사퇴를 한 뒤에도 강력한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됩니다. 의원직 사퇴는 정치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퇴는 최후의 수단으로 총선이든 총보선이든 국회내의 정당분포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민자당의원들도 야당과 함께 사퇴하라는 열화같은 여론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4 · 19의거 때나 6월항쟁 때와 같은 폭발적인 분위기와 국민적 지지없이는 사퇴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김광일 너는 왜 사퇴서를 냈느냐고 되묻겠지요. 저는 黨人입니다. 제 소신은 시기가 이르다는 것이지만, 그러나 일단 黨論이 결정되면 따라야 합니다. 사퇴한 이상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의원회관 사무실을 내일 비우고 나갈 참입니다. 이총재에게 “내일부터 우리 당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의 대답은 “없다”였습니다. 정당이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있습니다. 의원직을 사퇴해도 국민이 호응해주지 않으면 협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국회로의 복귀는 민자당이 내각제개헌을 하지 않을 것과 앞으로 의회민주주의의 룰을 지키며 13대국회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국민 앞에서 약속할 때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국회로 되돌아가려면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복귀협상을 벌여 결정해야지요. 막후교섭을 해서 서로
주고받는 비밀흥정을 해선 안됩니다. 복귀협상을 통해 사퇴했던 우리의 의사가 무엇이었던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 민주당이 이번 임시국회 때 싸우지도 않고 의원직을 사퇴해 평민당으로부터 “밥상 차려놓으니 숟가락만 들고 와 밥상을 차지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만….

  민주당은 의석수가 적어 원내교섭단체(20석 이상)를 구성못해 국회운영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지난 3월 임시국회 때 저는 민주당 소속의원들에게 “우리가 수는 적지만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자”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본회의에서는 신상발언 · 의사진행발언 · 찬반토론을 할 수 있고, 상임위에서는 자유롭게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월 국회 때 열심히 했습니다. 평민당의원들이 퇴장했는데도 우리는 반대토론을 했습니다. 그런데 본회의에서 우리 당 의원들에게는 의사진행발언 기회조차 주지 않아 싸워서 얻어냈어요. 이번 임시국회 본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민당이 민주당의원에게 의사진행발언 기회를 주지 않기로 하는데 민자당과 합의했습니다. 참석해도 발언할 기회를 주지 않는 마당에 나갈 필요가 있느냐 하는 반발로 일부 의원이 자리를 비웠으나 전원이 결석했던 것은 아닙니다.

● 국회해산과 조기총선이 합법적이냐 하는 문제가 제기돼 있습니다. 물론 민자당에선 위헌이라고 당론을 결정했습니다.

  현행 헌법이나 법률에는 국회해산이나 조기총선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민자당의 주장이 맞습니다. 저는 우리 당에서 사퇴를 결정할 때 그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국회 구성원의 총의에 의한 자기해산권이 있지 않느냐 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 경우가 바로 민자당이 응해서 보궐선거를 하는 것입니다.

● 현실적으로 야당에 의한 국회해산과 총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투쟁으로 무언가를 바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인지요?

  처음 네 의원이 의원직 사퇴를 한 의도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반응은 대단히 좋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당론으로 이를 뒷받침한다는 뜻에서, 또 원외가 다수인 정무회의에서는 판갈이가 촉진되리라는 기대 등으로 냉철한 사후대책도 없이 즉각 전원 사퇴를 당론으로 정했지요. 평민당은 처음부터 국회해산과 총선이 가능하다고 보았다기보다는 ‘날치기 통과’를 당하니까 동참했던 것이지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 생각해서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 일시적인 여론을 잘못 읽었다고 봐야겠지요.

● 김의원은 인권변호사 시절 김대중씨의 변호인단의 한사람으로 법정투쟁을 하는 등 개인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76년 김대중씨가 경남 진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당시 담당 변호사로서 1년 가까이 옥중 접견을 하며 사귀는 동안 그때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살신성인하려는 애국심과 민주의지를 존경했지요. 그런데 87년 야권분열을 기점으로 계속 실망만을 거듭해왔습니다.

● 현명한 답변을 해줄 것을 믿고 어리석은 질문을 한마디 하겠습니다. 정치를 계속한다면 대통령출마도 할 생각입니까?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꿈을 가진다는 것은 정치인에게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대통령 꿈과 병은 구분돼야 합니다. 대통령의 꿈은 자기를 계속 승화시켜 많은 지지를 받는 훈련입니다. 대중의 여론을 읽고, 그것에 자신을 맞추는 과정에서 꿈은 이루어져갈 것입니다. 대통령 병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희생시킵니다. 무리하게 되겠지요.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대통령에의 꿈은 국민과 함께 키워나가, 국민이 택하면 현실로 가능해지겠지요. 그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대통령 병은 자신도 남도 파멸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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