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 寸志 국제사회 조롱거리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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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 특집??준비 여당‘ 월사금??20만원…기업은 정례인사

 각 언론사는 거액의 촌지를 받은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은 자사의 보사부 출입기자에 대해 속속 중징계를 내리고 있다. 일부 언론사에서는 기자가 이미 사표를 냈는데도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파면처리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론계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언론사들이 이같이‘강력한??부패척결 의지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 대부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문방송학과의 한 교수는“마치 위기를 맞은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보사부 출입기자들의 처지를 동정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언론계에서 이들을 단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있는가. 기자들뿐만 아니라 언론사 간부들도 대부분 취재원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고 말했다.

“최근의 자정노력은 꼬리 자른 도마뱀 꼴??
 사실 언론계에서 보사부 출입기자들을 단죄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정상적인 홍보업무보다는 기자들에게 술사고 돈봉투 건네는 것이 주업무가 돼버린 대기업 홍보실 직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자.

 이들은 우리나라의 50대 기업은 거의 빠짐없이 신문의 날, 여름휴가, 추석, 연말 등 1년에 네차례에 걸쳐 정례적으로 출입기자들과 언론간부들에게‘인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액수는 언론사 시세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보통 한번에 데스크(보통은 경제부 부·차장급, 보사관련 업체는 사회부 부·차장급)에게는 30만~50만원, 출입기자에게는 20만~30만원 정도가 돌아가게 된다고 한다. 이들은 이밖에도 경제부 데스크가 있다가 다른 부서장이나 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에게도 사내의 영향력을 봐서 비슷한 액수의 돈봉투를 건네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국장에게는 인사를 하는 회사도 있고 하지 않는 회사도 있는데 액수는 사내의 몇몇 고위 인사만 알고‘대외비??사항이라고도 했다.

 이들 얘기대로라면 우력 중앙 일간지나 방송사 경제부 데스크의 경우 정례적인 촌지만 한번에 2천5백만원, 1년이면 1억원을 받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물론 주는 대로 다 받는 경우이고 언론사에 따라 사람에 따라 아예 받지 않거나 자제하기도 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액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기업의 경우는 대부분 촌지의 액수가‘안정??돼 있는 반면 새로 뻗어나가려는 중견업체들은??길을 닦기 위해??돈을 마구 뿌리기 때문에??촌지시장??을 흐려놓고 있다는 말도 했다. 특히 관변공사 수주를 받는 건설업체나 레저업체들은??007가방에 돈을 넣고 다니면서??봉투를 남발한다는 것이다. 아들 업체의 촌지 단위는 보통 1백만~3백만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같은 기업으로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 때 촌지사장을 주름잡았던 한보그룹이다.

 국내 굴지의 모그룹 홍보실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보사부 출입기자들이 회사에서 쫓겨나고 기자들이 기자단에서 탈퇴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각 기업체 홍보실에는??요주의 기자??리스트가 있다. 바로 상습적으로 촌지들 콜(call)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끼리는 그 사람들을??박사??라고 부르는데 지금 언론계에는 박사들이 상당히 많다. 또 기업은 기업대로 결사적으로 언론계에 돈을 갖다주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촌지는 언론계에서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업체 홍보실엔‘ 요주의 기자??리스트
 지난 수서비리사건과 이번 보사부 출입기자단의 촌지 수수사건으로 기업과 언론의 촌지 수수 관행은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 바로 정치권과 언론간의 비밀스런 거래이다. 대기업 관계자들은“정치권이 언론에 뿌리는 돈에 비하면 기업이 언론에 주는 돈은 정말 촌지에 불과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노출된 정치권의 촌지는 민자당이 출입기자들에게 매달 주는 월례성 촌지뿐이다. 기자들은 이것을‘월사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중앙사 기자에게는 20만원, 지방사 기자에게는 10만원이 지급되고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는 액수가 늘어나기도 한다. 또 지방에서 행사가 있어 취재기자가 동행할 경우에는??일당??이 10만원씩 지급된다고 한다.

민자당 1년 촌지는 3억6천만원
 현재 민자당에는 중앙지 기자 1백4명, 지방지 기자 54명, 사진 및 텔레비전 카메라 기자 40여명 등 2백여명이 출입하고 있으니 민자당 기자들에게 한달에 3천만원, 1년으로 따지면 3억6천만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만자당 대변인실 1년 예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액수로 알려져 있다. 기자 개인이 받는 것은 얼마 안된다고 쳐도 합쳐놓고 보면 결코 작은 액수라고는 할 수 없는 돈이다. 정작 덩어리가 큰 촌지의 거래는 정치인과 언론인 개인간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는 여야의 정치지도자들과 극소수의 언론인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그들이 총애하는 언론인들에게“깜짝 놀랄 만한 액수를 살포했다??는 소문이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 나돌고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은 언론인들을 기자시절부터 국장이 될 때까지 뒤를 봐주기도 하는데 그 때문에 언론계에서는 누구는 누구의‘장학생??이라는 말이 은밀하게 오가고 있기도 하다.

 정치권이 언론에 뿌리는 돈만큼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대통령선거 때 입증된 바 있다. 당시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언론계에 무제한 금전공세를 폈다. 어는 정치지도자는“국회의원 10명에게 돈을 줘 지원유세를 시키는 것보다 중앙 일간지 기자 한명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 낫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민정당은 특히 돈을 물쓰듯했는데 당시 중앙사 출입기자들은 지방유세 취재시 1박당 50만원씩 받았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사상 최대의 촌지잔치??로 불리는 대통령선거 막바지의 부산 수영만 집회 때는 기자 1인당 1백만원씩 살포됐다고 한다.

 ㅂ일보의 정치부 기자였던 ㅂ씨는 그때 자신도 2백만원을 받았으며, 아마도 편집국의 간부들에게 간 액수는 1개 언론사당 1천만원을 상회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당시 각 일간지들은 부산 수영만 집회에 모인 군종 숫자를 실제보다 휠씬 많은 것으로 보도해 빈축을 사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선거가 끝난 뒤 언론계에서는“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기자들이다??라는 말이 나돌았는데 대선 때 민정당에 출입했던 기자들은 나중에 거의 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되었다.

해외여행 줄잇고 기자실엔‘ 골프 열풍??
 촌지문화는 비교적 맑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 언론사 문화부의 풍토마저 흐려놓고 있다고 한다. 미술평론가 ㄱ씨는“요즘 화랑 관계자들은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면서 이 기사는 얼마짜리고 저 기사는 얼마짜리라는 소리를 한다. 금전수수가 정말 그렇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같은 말이 나오고 있는 것만도 개탄스럽다??고 얘기했다.

 돈봉투와 함께 언론계에서 가장  오래된 촌지는 바로‘해외여행??이다. 이번 보사부 기자간 사건의 발단도 해외여행이었다. 수서사건이 터지고 언론계에서 자정의 소리를 높이 외치고 있을 때도 스폰서를 잡아 해외로 유람성 취재여행을 떠나는 기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에서 발행하는〈언론노보〉에 따르면 교통부 출입기자들은 지난 6월27일부터 대한항공의 협찬을 받아 12박13일 동안 이탈리아 등 4개국을 돌아보고 귀국했다. 이들의 출장명목은‘KAL로마 첫 취항 취재??였으나 여행일정은 교통문제와 별 관련이 없었다고 한다.

청소년축구팀 격려금 절반이 기자에게
 경제기획원 출입기자 5명도 지난 5월 기획원 산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비부담으로 2주일간 중국에 다녀왔으며, 통일원 출입기자 7명도 통일원 돈으로 6월15일부터 24일까지 소련 폴란드 등 공산권 연수를 다녀왔다. 이밖에 교육부 노동부 상공부 출입기자 일부도 각각 학술진흥재단이나 출입부처의 후원을 받아 공산권이나 유럽에 다녀왔다.

 이와는 경우가 다르지만 지난 6월 남북한 단일팀이 출전했던 포르투갈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 취재차 함께갔던 기자들은 당시 남측 선수단에게 지급된 격려금 5만달러 중 절반인 2만5천달러를 촌지로 받은 것으로 밝혀져 구설수에 올랐었다. 기자들은 출국 직전 장충식 코리아 단일팀 단장으로부터 여비조로 따로 1천만원을 받은 바 있는데 당시 남측 임원들은 선수단에게 지급된 격려금마저 절반을 뚝 잘라 기자단에게 줬던 것이다.

 해외여행이 가정 오래된 촌지라면 요즘 새롭게‘각광받는??촌지는 바로 골프이다.

 ㅈ일보 간부와 기자 등 70여명과 또다른 ㅈ일보의 간부 50여명은 올해 신문의 날인 4월7일 삼성그룹 계열의 전주제지로부터 경비일체를 지원받아 각각 다른 장소에서 골프모임을 가진 바 있다. 또 같은 날 ㅅ신문의 간부 30여명은 포항제철로부터, ㅅ일보 간부 20여명은 기아자동차로부터, ㅅ신문 부장급 7명은 럭키금성으로부터 각각 경비를 받아 골프모임을 가졌다. 이 대기업들은 매년 신문의 날이면 어김없이 이들 언론사 간부들에게 골프모임 비용으로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많게는 1천여만원을 지원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물좋은 출입처 기자실에서도 거의 예외없이 골프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고 한다. 어느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 기자실에서는“골프얘기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날 정도??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취재원이 제안해 같이 골프를 치는 형식이었는데 요즘은 기자들이 먼저 업계 관계자들에게 골프장 부킹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얼마 전 외국언론의 훌륭한 기사감이 되기도 했지만 한국 언론의 촌지 수수 관행은 세계 언론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일본〈아사히신문〉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아에라》는 이번 보사부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언론계 촌지관행을 특집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 언론이 다시 한번 국제적인 망신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국민과 한국의 언론이 또다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면야 그대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이겠지만 실제로 언론의 촌지수수가 우리 사회와 언론에 끼치는 해악은 심각하다.

“촌지 때문에 대기자가 없다??
 80년 광주시민을 폭도로 매도했던 언론사 간부들과 권인숙씨에 대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은폐 왜곡했던 기자들의 주머니 속에는 평소보다 두툼한 촌지봉투가 들어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얘기이다. 민주화의 고비고비마다 권력의 편에 섰던 보도의 이면에서는 언제나 돈봉투가 거래됐다는 것은 그동안 여러 기자들의‘양심선언??으로 밝혀진 바 있다.

 언론계의 촌지수수 관행은 우리 언론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전전하게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촌지 수수 관행에 염증을 느껴 자칭해 내근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유력일간지의 ㅎ기자는“우리나라 언론에 왜 전문기자가 없는 줄 아십니까. 어째서 백악관에서 현재 역대 8명의 대통령을 전담 취재하고 있는 사라 맥그랜던 여사와 같은 대기자가 나오지 않고 있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촌지 수수 관행 때문입니다. 물좋은 부서에 특정인을 고정배치하면 불평이 터져나오니까 자꾸만 순환시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외무부엔 정치부 초자(초년 기자)가 나가고 보사부에는 사회부 고참이 나가고 하는 것이 무슨 공식처럼 돼 있는 실정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주·  간부가 솔선해야
 그러면 우리 언론계에서 촌지를 추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신생언론사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기자들의 취재비를 현실화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사 기자들은 촌지를 받지 않으면 자기 월급에서 취재비를 써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서울방송의 경우 5년 미만 경력기자에게는 40만원, 5년 이상 경력기자(국장급 포함)에게는 60만원씩 취재비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고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 모두가 함께 각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과 언론사 사주나 간부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적어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장이 버젓이 자기 명의로 기자들에게 촌지를 보내는 관행만큼은 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언론사 사주나 간부가 이제는 솔선해 언론자정에 앞장설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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