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남북정상회담'
  • 남문희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4.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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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네바회담서 한국입장관철 주력…아시아전략변화시사



 북한 핵 문제의 최종 해결과 정상회담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을 양대 축으로 하는 한반도 질서 개편 움직임이 다시 빨라지고 있다. 9월23일부터 제네바에서 속개된 미·북한간 3단계 2차 회담과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재방북 움직임, 그리고 중단된 남북 정상회담 재추진 같은 굵직한 현안들이 긴밀히 연계돼 한반도 질서 재편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미·북한 3단계 2차 회담은 단순히 북한 핵 문제나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짙게 풍기고 있다. 오히려 난항을 보이고 있는 근본 쟁점들에서 알 수 있듯 이 남북 정상회담 실현을 위한 전제조건 마련이 회담 분위기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제네바 회담이 북한 핵 문제뿐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 문제까지 끌어안고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회담에 임하는 미국측의 자세 변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측은 이번 회담에서 그동안 핵심 현안으로 대두됐던 경수로 지원 문제와 북한 핵 투명성 확보 문제, 그리고 미·북한 연락사무소 개설과 남북관계의 병행 추진 문제 등에 대해 전에 없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후 한국 사회내 강경 세력의 대두가 미·북한 관계 진전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여차하면 한국의 입장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던 최근까지와는 두드러지게 다른 모습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미국측이 이번 회담에서 의욕을 보이고 있는 북한 핵의 과거 투명성이나 경수로 지원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 보장 및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하려는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는 미국 정부의 이해 관계보다는 한국 정부의 이해 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 쟁점 사항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과 정상회담을 재추진하기 위한 전제조건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중국 의식해 한국·대만에 치중
 그동안 한국 정부는 남북관계의 국면 전환을 위해 정상회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들 쟁점 사항들을 묻어둔 채 추진할 경우 강경 보수 세력의 반격을 부를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해 왔다. 따라서 미국이 제네바 회담에서 이들 쟁점에 대해 북한의 양보를 얻어낸다면 한국 정부는 부담을 그만큼 덜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국측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과의 합의가 미진할 경우에 대비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재방북 카드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이 남북정상회담 중재에 대해 강한 의욕을 보이는 데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중간 선거를 앞둔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 전략이라고 여기는 한편, 최근 미묘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태도로 미루어 새로운 아시아 전략의 일환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그동안 소원했던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중국 일변도였던 아시아 전략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만과 관계를 강화해 '두 개의 중국정책'으로 전환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일본 경제 신문> 9월7일자는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 전략의 시동'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현재 중화경제권이 대두함으로 인해 아시아 전반에서 후퇴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의 처지에서 대만과 한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국가이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의 대두와 북한의 국제 무대 등장이라는 탈냉전 상황에 대응하는 한편 한국 및 대만과의 기존 관계를 유지하여,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견제하려는 양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협력 강화가 대만과의 관계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면, 남북 정상회담 중재는 미·북한 관계 급진전에 대비해 한국 정부에 보상하려는 차원일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포석으로 풀이할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처지에서 보면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앞선 미국정부의 마지막 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南文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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