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 폭로 언론이 해야"
  • 박중환 기획특집부장대우 ()
  • 승인 199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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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 安秉峻 회장

 안준병 한국기자협회장. 그는 요즘 흔한 말로‘죽을 지경'이다. 최근 중앙 일간지가 앞다투듯 해명성 사과기사를 싣고 있는 이른바 보건사회부 출입기자들의'거액 촌지'사건과 관련해 진상을 확인하랴, 대책을 궁리하랴, 때로는'고문'에 가까운 인터뷰에 응하랴 눈코 뜰 새 없다. 한국기자협회장실에서 만난 그는 한때 저도 촌지에 오염됐던 죄인입니다. 지금은 한국 기자를 대표하는 기자협회장으로 괴수가 된 셈이구요'라며'고해'부터 한다. 안 회장은 서울신문 노동조합 초대 위원장을 지냈고 지난 4월 제31대 기자협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그동안 방송광고공사로부터 지원받아 써온 공익자금을 거부했고, 현대그룹으로부터 기증받아 회장용으로 써오던 소나타 승용차를 반납하는 등 언론의 독립과 自淨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스스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는 참담한 우리 언론의 현실을 또다시 묻게 됐습니다.  기자협회장으로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며,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먼저 독자인 국민에게 한국 기자를 대표해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스스로 불이익을 감수하며 깨끗한 몸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동료 기자들까지 매도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외람된 말씀 같지만, 이런 사건이 이쯤에서 터지게 됐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언론의 자정운동이 결실을 맺으려면 실천윤리강령 선포나 캠페인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1964년 신문발행인협회와 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채택한 신문윤리실천요강에도 품격조항이 있습니다. 그 조항에는‘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를 막론하고 뇌물을 요구하거나 받아서는 안된다??라고 명기돼 있습니다. 그밖에도 언론인의 윤리규정이 있으나 사문화되어 있습니다. 자정운동은 이처럼 어렵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자유경쟁시대에 들면서 취재와 보도는 물론이고 경영에도 과당경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면 언론 내부의 부정을 사로 폭로 보도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돼야 자정이 활성화될 것으로 봅니다. 그 시기를 3~4년 후로 보았는데 오히려 앞당겨지는 듯해 다행이라 봅니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번 촌지사건에 관련된 중앙 일간지와 방송사들이 그들의 신문이나 방송에 社告형식으로 사건의 경위를 간략하게 밝히고 자체 징계하겠다는 뜻을 보도하고 있습니다만, 여론은 1억원 가까운 거액이란‘ 작은 뜻??으로 볼 수 없는 뇌물이므로 뇌물을 받았던 국회의원 공무원 대학교수들과 마찬가지로 형사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수사대상이 된다면 마땅히 조사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직당국이 결정할 성질이라 생각됩니다. 변명 같지만 기자협회는 기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친목단체입니다. 부패한 기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란 회원자격 박탈과 그 사건의 진상을 밝혀 기자협회보에 보도하는 데 그칩니다. 이런 입장 때문에 저희들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계 자정을 실행하는 동료 기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명예를 실추시킨 기자에게 준엄한 조치를 내려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가 회장에 취임한 직후 기자협회 사상 처음으로 촌지를 받아 물의를 빚은 한 통신사 기자의 회원자격을 박탈했습니다. 그 기자는 노동부에 출입하면서 거액의 촌지를 받았지요. 그 기자는 노동부에 출입하면서 거액의 촌지를 받았지요. 그러나 그 사람은 요즘 그 회사에 내근부서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기자협회가 제명해도 소속 언론사가 윤리강령을 실천하지 않고 간단한 징계로 두둔하는 관행이 우리 현실입니다.

올 연초 수서사건이 터졌을 때 서울시청 출입 기자들이 관련돼, 한국 언론은 국내외로부터 비난을 받고 망신을 당했지요. 그때에도 촌지문제가 언론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면서 해당 언론사는 내부 징계 정도에서 일단락시켰습니다. 그처럼 흐지부지했기 때문에 1년도 채 못되어 또 거액의 촌지, 아니 뇌물사건이 생기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기자협회가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그 점에 대해서는 막막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서 말한 회원제명 진상규명 등입니다. 그러나 수서사건 때와 이번은 그 양샹이 다소 달라 전처럼 흐지부지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서사건의 경우 출입기자는 물론 몇몇 데스크와 간부까지 관련이 되어 있었고 6공정부의 언론 놀이도 작용해 언론사의 자체해결 과정에서 유야뮤야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출입기자들끼리 촌지를 받은 사건이라 해당 언론사들이 어물쩡하지는 않을 겁니다. 또 이번에는 언론사 스스로가 먼저 자신들의 치부를 내보이며 해당 기자의 사표수리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언론 자정운동의 좋은 계기가 되리라 봅니다.

6공정부의 언론조작을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 정부는 언론이 만주화됐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대통령을 만화로 그리고, 가십에서 꼬집기도 하는 것으로 민주화가 됐다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정치 권력이나 재벌이 언론을 장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그대로 있습니다. 고도로 지능화되어 있습니다. 언론통제양상을 시대적으로 나눠보면 60년대에는 신문발행의 허가를 통제했고, 70년대 이후 5공말까지는 개개 기사의 보도를 통제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정보를 통제하면서 한편으로는 언론 경영인을 통해 통제하고 있지요. 어느 교수가 말했듯이 권력은 언론사주를 트로이의 목마로 삼아 교묘히 언론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언론이 재벌에 의해 장악되어 가고 있는 것도 심각합니다. 현대그룹의 일간지 창간, 대우그룹과 롯데그룹의 부산지역 일간지인수, 한국화약그룹의 경향신문 인수를 예로 들 수 있겠지요. 이밖의 기존 언론사들도 급속도로 언론재벌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벌의 언론 장악과 언론의 재벌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벌의 언론 장악과 언론의 재벌화로 권력과 금력에 쉽게 유착하게 됐고, 이런 유착의 반대급부로 언론가 호텔 여행사 등 서비스업을 겸업허며 더욱 재벌화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언론사는 경영주의 권력지향적인 성향으로 말미암아 안팎으로부터 통제받게 된 것입니다.

87년 언론노동조합 시대가 열리면서 젊은 기자들 중심으로 자정운동이 활발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노력을 보기 어렵더군요. 언론노조는 기자들의 노조 탈퇴 등을 우려해서인지 자정운동을 뒤로 미루는 듯했고 또 처우개선, 즉 월급 올리는 데 치우쳐 게을리한 결과라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노조위원장 때 장기간 투쟁한 바 있는 회장으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먼저 언론노조운동이 왜 이렇게 약화됐는냐 하는 점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권력의 언론장악 때문입니다. 언론노조에 대한 탄압, 방송장악, 그리고 시도되고 있는 노동법의 개악 등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앞서 밝힌 내·외적인 통제를 받으면서 언론노조운동이 약화됐고, 그러다 보니 자정운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자정운동의 위축과 권력의 언론장악 음모는 떼어 놓고 볼 수 없습니다. 언론이 깨끗해지려면 언론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고 봅니다. 권력이나 재벌도 대오각성해서 3박자가 맞아야 가능할 것입니다.

언론인의 급여 수준은 다른 업종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그런데도 기자들이 왜 촌지를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특히 민족지니 정론지니 스스로 자랑해 온 권위있는 언론사의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라는데 충격이 더 큽니다.
기자의 급여가 높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자는 고도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과 함께 신변의 위험을 안고 있는 힘든 직업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다른 업종과의 산술적인 비교는 곤란하며, 현 급여 수준도 중산층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들이 촌지를 받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정치권력과 재벌이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언론인을 유혹하고 매수하는 것 못지않게 언론인 스스로 이에 쉽게 영합하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3공 5공을 거치면서 기자들이 점차 상류층을 더 많이 만나는 성향을 보이면서 자기들 수입에 비해 높은 소비 습관을 갖게 됐지요. 이것은 바로 요즘 언론이 비판하는 과소비 현상과 같은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촌지라는 것이 필요해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런 점에서 기자들은 스스로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언론인으로서 봉급생활자로서 분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론인의 부정이 한국에만 있지는 않습니다만 특히 우리 기자들의 촌지가 비판받는 이유는, 그 액수가 날로 커져가고 있고 관행화되어 가면서 권력과 유착하는 연결 고리가 생긴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권· 언유착이니 언· 경결탁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리를 끊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요즘 그 방안으로 기자실을 해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자실이 촌지를 받고 끌어들이는 곳으로 악용돼 왔다는 점에서 해체는 당연한 듯하지만, 기자실이 없으면 오히려 음성화되고 사이비 언론이 활개칠 수 있다는 점도 간과되면 안될 것입니다. 경영자 편집간부 일선기자 모두가 금권력의 끈질긴 촌지 유혹을 배격하려는 실천의지와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한 그 고리를 끊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 촌지 사건도 속을 들여다보면 관련된 대부분의 언론사 간부들은 기자가 출입처로부터 어느 정도의 지원을 받아 해외에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일선기자 시절에는 그렇게 했으니까 묵인한 셈이지요. 그러고는 시끄러워지니까 기자들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기자가 취재하러 해외에 나가는 데 회사에서 경비를 모두 지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번 보사부 출입기자들의 해외여행은 회사에서 보내는 취재가 아니니까 알아서 가라는 식으로 두었기 때문에 기자들이 촌지를 받은 것입니다. 해외여행이라 해도 경영진이나 편집간부들이 기자를 내보내야겠다고 판단했으면 경비를 모두 지원해줬어야 했고, 그럴 형편이 못됐다면 아예 못 가도록 했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언론내부 자정운동은 기자뿐만 아니라 경영진이나 편집간부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가능합니다. 몇몇 언론사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한겨레신문〉서울방송《시사저널》도 포함됩니다만.

수서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신문사들이 일단 해당 기자들의 사직서를 받아 놓고 있다가 여론이 가라앉으면 가볍게 징계하고 내근부서에 전보하는 편법을 쓴다면 기자협회는 어떻게 대처할 계획입니까?
솔직히 말해 그런 상황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해당 언론사의 경영진이나 간부들을 만나 여론을 환기시키는 등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번만은 어물쩡하진 못할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청와대 입장은 어떠한지 알아봤더니 언론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더군요. 물론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아닙니다만 지도층의 비리에는 즉각적인 대응을 보여온 검찰의 태도가 다른 것을 보아도 그러려는 듯합니다. 기자협회는 사직당국의 수사와는 별도로 진상을 규명해, 어떤 언론사의 어떤 기자가 얼마를 어떻게 받아서 썼는가를 기자협회에 정확히 보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재발을 막는 하나의 방안이자 불이익을 감수하며 자정노력을 보이고 있는 기자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길이라 판단합니다.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진전은 있는지요.
기자협회와 언노련이 공동으로 진상규명조사단을 구상하려 했습니다만, 일단 각각 조사한 뒤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기자협회는 협의보 취재진을 동원해 조사를 했고 그 내용을 편집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조사대상이 회원사이자 회원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음을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해당 언론사에서 해명성 사고를 통해 간략하게 경위를 밝혔지만 국민은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습니다. 언론에 몸을 담고 있는 본인도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맨처음 어떤 기자가 촌지를 받자고 제의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나눠졌는지, 개개 출입기자는 얼마씩 받아 어디에 썼는지, 해당 언론사는 경비를 얼마나 지급했는지, 그리고 8월에 있었던 일이 왜 최근에야 한 언론사에 의해 보도됐는지 등등입니다. 이런 조사가 시시콜콜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법권이 없는 친목단체 에 불과한 기자협회가 여론이 들끊고 있는 현 단계에서 해당 기자를 만나 조사를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번 취재에서 조사된 것을 토대로 진상을 규명해 보고서를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기자협회에도 윤리위원회와 같은 분과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평소에 자정을 위한 활동을 하지 않는지요.
협회 산하에 11개 분과별 위원회가 있습니다. 제가 취임한 직후에 이들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만 유독 자정운동추진위만은 위원장을 맡으려는 중견 기자가 없어 지금까지 공석입니다. 동료 기자의 윤리를 감시하는 데에 그만큼 어려움이 있음을 대변해 주는 예라 생각합니다. 어찌됐든 회장으로서 자정운동을 활성화 시키지 못하고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게 된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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