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청과상사건, 흑인쪽 음모”
  • 김종환 사회부차장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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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현지취재/지역신문 기자 법원에 보고서 제출…교포들 “이번엔 물러설 수 없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지역의 한인 청과상에 대한 흑인들의 불매운동이 벌써 8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지난 1월18일 처치애비뉴의 패밀리 레드 애플에서 한국인 점원과 흑인 여성손님 사이의 단돈 1달러를 놓고 빚어진 충돌로 시작된 이 사태는 레드애플의 점원이 흑인데모대에 놀라 맞은 편 한인 청과상 처치 프루츠로 뛰어들면서 두 가게를 둘러싸고 진행되고 있다. 오늘도 양쪽은 팽팽히 맞서고 있어 해결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간 몇차례 흑인의 좀도둑질을 처리하다 벌어진 불매운동에서 줄곧 패배를 당해왔던 한인측은 그동안축적한 경제적인 여력을 바탕으로 이번만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30일 점심 무렵 기자가 찾아간 처치애비뉴 지하철역 주변은 ‘교회거리’라는 이름 그대로 한적했다. 그러나 아파트촌을 끼고 올라가는 길이 처치애비뉴와 만나는 네거리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뽀이콧! 뽀이콧!” “똑똑한 사람은 이 가게에 안간다.”

 오른쪽 모서리 레드 애플 앞에 설치된 경찰의 파란색 바리케이트에 바짝 붙어서서 대여섯명의 흑인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독특한 억양을 구사하는 이들은 모두 아이티계 직업 데모꾼. 오전 10시쯤 나타나서 해질 무렵까지 자리를 지키는 대가로 1시간당 3달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게 안에 들어서니 손님이라곤 흑인여성 한명뿐, 선반을 한참 뒤지다가 계산대를 향해 도움을 청한다. “건포도가 안보이는데요.” “미안합니다. 물건이 떨어진 줄 모르고 들여 놓지 못했습니다. 말린 자두를 대신 가져가시지요.” 흑인여성은 순순히 흑갈색 열매가 든 봉지 하나를 집어들고 나간다. 나이보다 열살은 더 들어보이는 주인 張鳳在(35)씨는 불매운동이 장기화되면서 건포도는 물론 제철 과일조차 풍성하게 들여놓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하루 2천달러에 달하던 매상고가 50달러선까지 떨어졌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불매운동은 과격 흑인 인권운동 단체가 주도하고 있다. ‘블랙워치(Black Watch)라는 이 단체의 지도자는 소니 카슨. 올해 53세인 그는 70년대에 유괴죄로 2년간 복역한 전과를 갖고 있다. 흑인 인권운동가를 자처하는 과격분자로서 82~88년 동안 짝수 해마다 한인가게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인 주동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데이비드 딘킨스 뉴욕시장의 선거운동 참모로 일하다 금전문제로 도중하차하기도 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레드 애플 부근거리에서 흑인들만의 1일장터를 열어 운동열기를 고취하기도 한다.

 블랙워치가 뿌린 불매운동 전단은 “우리와 닮지 않은 사람들의 가게에서 더 이상 물건을 살 수 없다”고 흑인지역 상권장악 야망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실제로 레드 애플과 처치 프루트에 대한 불매운동을 흑인들의 상권장악 야망이 낳은 계획된 음모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번 사태를 추적한 지역신문의 로널드 알트노 기자가 법원에 제출하기 위하여 작성한 보고서는 특히 관심을 끈다.

 “일단의 불매운동 시위자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이 상점들을 인수했을 때 흑인주민 2명도 사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집세나 점포값이 너무 비쌌다. 전 소유자가 흑인들이 살 수 있도록 집세를 내려주지 않고 한국인들에게 그냥 넘겨버렸다. 여기에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이 있다. 두 가게 모두 간선도로의 노른자위 지역에 있기 때문에 80년대초 이 지역에서 한국인들을 몰아내기 위한 불매운동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이 단체가 눈독을 들여 왔다.”

 알트노 기자는 게드 애플 가게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한 사나이로부터 2년 전에 두 가게를 장악 목표물로 선정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기네가 이미 다른 동네에서 한국인 가게 2개소를 폐업시켰다고 자랑하면서 모든 한국인들이 흑인들을 멸시 하기 때문에 우리가 인수하기 위해 가게 문을 닫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인 주인에게 격려 포옹하는 흑인도

 데모꾼들의 욕설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레드 애플을 찾는 흑인 단골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린 남매를 거느린 젊은 흑인여성이 가게에 들어서자 데모대는 더욱 기세를 올렸다. “흑인여성을 때리지 말라!”는 등의 아우성이 쏟아진다.

 중년 흑인여성들은 여유만만하게 들어왔다가 나갈 때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등 여유를 보였다. 개중에는 장씨형제에게 격려의 포옹을 하는 이도 있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찾아온 손님들인지라 값싼 물건은 계산하지 않고 그냥 주는 경우도 많았다.

 페트릭 오그스틴(33)씨는 시위 주동세력과 같은 아이티계 흑인, 비디오 촬영법 강사로서 인종대립 현장을 기록하겠다는 한국인과 흑인 제자들을 인솔하고 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이곳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도 불매운동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 가게의 친절함을 옛날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이번 불매운동 사태는 너무 많은 당사자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장기화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데모대 수 줄었으나 장기화될 가능성 많아

 불매운동에 대한 흑인들의 호응도는 7월에 접어들면서 약간 수그러드는 기미를 보여 처치애비뉴를 꽉 메우던 데모대의 수도 다소 줄어들었다. 전력 약화를 우려한 소니 카슨은 8월 첫 토요일 흑인장날 행사를 가진 위 교회에서 대대적인 단합집회를 열었다.

 한인사회의 각오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밀리면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불매운동에 시달리는 가게를 돕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매월 1만4천달러를 모아 레드 애플과 처치 프루츠 두 가게에 각각 7천달러씩 지원하는 뉴욕한인청과상조회의 鄭普永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치애비뉴에서 버텨줘야 다른 곳으로 확산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취할 방법은 우리도 데모를 하는 겁니다. 데모실행권을 이사회로부터 일임받고 있지만 8월까지는 기다려보고 결정할 예정입니다.” 뉴욕한인교회 학생들을 이끌고 레드 애플을 찾아온 李昌信(32)씨는 “2세들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문닫으면 학교에 가서 흑인들의 놀림감이 된다며 걱정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청과상이 아닌 교포들도 요즈음 모임이 있으면 장씨 가게돕기 즉석모금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퀸스지역에서 리무진 운전을 하는 한 교민은 얼마전 낚시대회 행사중에 배안에서 모금했을 때, 집세 내기도 힘겨운 사람들이 1백달러를 서슴없이 내놓기에 자기도 2백달러를 내놓았다고 밝혔다.

 한인이 아닌 미국인들의 격려편지와 헌금도 하루에 몇 건씩 장봉재씨 앞으로 날아든다. 흑인들이 보낸 것도 간혹 있다.

 지난 83년 1월 미국에 온 장씨는 청과업계에서 일한 지 4년만인 88년 6월에 자기 가게를 열었다가 1년반만에 최대의 시련에 봉착했다. 그동안 휴일도 없이 라면으로 아침과 점심을 때워가며 일했다. 개업 당시 빌린 돈과 물건 외상값 등 부채를 70%정도 갚고 올해만 넘기면 완전한 자기 가게를 갖게 될텐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까지 걸려오는 격려 전화를 받을 때 장씨의 표정은 한결 밝아진다. “절대로 문을 닫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 장봉재가 아니고 한인을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오를 새롭게 다지면서 그는 가게안에 놓인 ‘평화의 벤치’에 앉아 담뱃불을 붙인다. 데모가 한창이던 지난 5월 하순 흑인상인이 가져다 준 이 벤치에는 “다시 친구가 되자”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한인가게와 흑인사회가 친구가 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가게에서 나오는 기자의 귀에 그새 익숙해진 데모꾼들의 구호가 들려왔다. “뽀이콧! 뽀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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