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독일, 萬邦의 으뜸”인가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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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벤츠가 서부 베를린 땅을 벗어나 포츠담으로 이어지는 글리니커교를 달릴 때 동승한 서베를린시 의전관 에블린 비세 여사가 말한다.

“기억하세요? 세계를 진동시킨 파워즈와 아벨스의 교환말입니다.”

“미국 스파이 비행사 파워즈와 소련의 간첩두목 아벨스를 61년엔가 맞바꾸었던 사건 말이죠.”

“바로 이 다리 한가운데 지점이었습니다.”

꿈같이 아름다운 잔잔한 반세호수를 오른쪽으로 보며 유서 깊은 글리니커교를 건너 ‘아직은’ 동독 땅인 포츠담에 다다랐다. 45년간 막혔던 다리, 지금은 검문소의 흔적조차 사라지고, 10월3일이면 ‘동독땅’이 아니라 독일연방공화국 땅으로 편입된다.

카이로선언과 더불어 귀에 익은 포츠담 땅인데 이땅에 들어서자 갑자기 차가 덜커덕거리는 게 신경이 쓰인다. 지금까지 달려온 서베를린의 매끈한 길이 아니다. 군데군데 울퉁불퉁한 짜깁기 도로.

민주혁명의 도시 라이프치히까지 남으로 1백60㎞. 그래도 포장된 길이라 별 어려움없이 달렸으나 도시고 농촌이고 비세 여사 표현대로 ‘황폐한 땅’이었다. 가꾸지 않고 손을 보지 않은 길이요, 집이요, 시설이요, 도로표시다. 심지어 움직이는 자동차도 동· 서 소속을 완연히 구분할 수 있다. 며칠 전 프랑크푸르트에서 본으로 달리는 기차 속에서 내다본 풍경은 지나도 지나도 모두 잘 가꾼 ‘국립공원’ 같은 느낌, 구비구비 라인강 주변 급경사의 포도밭까지 어쩌면 저렇게 깨끗이 정돈했을까. 그리고 본이나 쾰른의 잘 정돈된 집은 말할 것도 없고 창가로 스쳐지나가는 언덕과 숲과 물, 그 사이사이의 촌락이 어딘가 리듬이 있어 베토벤 제6교향곡 (전원)이 들려오는 듯한 질서 속 美요, 조화 속 풍경이었다. 같은 독일의 자연이고, 산과 들과 강인데 사람의 손이 가고 안가고가 이렇듯 다를까. 더구나 ‘프라이드’ 차만한, 그러나 성냥갑처럼 네모난 볼품없는 ‘트라반트’ 차들이 매연을 뿌옇게 뿜고 지나간다.

 

“서독인 4명이 동독인 1명을 먹여살려야 하지만 문제없다”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에 들른 비텐베르그시 역시 그것은 버린 땅, 버려진 도시 같았다. 마르틴 루터가 95개 테제를 내놓고 로마교황의 독재에 정면으로 항거한 영웅의 도시였는데, 지금은 생기없는 한산한 죽음의 도시다. 고작 루터가 설교하던 ‘城교회’ 안에 서독관광객들이 득실거릴 뿐. 우리는 아직 ‘市營’인 간이식당에 들러 케이크와 커피를 들었다. 서베를린의 3분의2 정도의 값이고 인심은 좋아보였다.

나는 동석한 운전기사 포올씨에게 물었다. “통일이란 당신에게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고.

“글쎄요.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동독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예요. 한참 걸릴 겁니다. 우리는 죽어라고 일하고 저들은 일 안하고 놀고 먹었으니까요. 의식구조가 문제예요. 45년간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는데, 시간이 걸리겠죠.”

포올씨는 단순한 운전기사가 아니다. 벤츠 두 대를 가지고 ‘렌트카’업을 하는 영세기업가. 한 대는 자기가 몰고 한 대는 고용한 직업운전사가 몰고, 사무는 아내가 본다. 한달 매상이 2만2천마르크, 그러니까 1천1백만원쯤 된다. 기사월급과 모든 경비를 제하고 감가상각하면 6천마르크쯤 남는다. 괜찮다. 그러나, 하루 평균 1천㎞ 이상 뛰는 강행군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포올씨에게 있어 통일은 8백 내지 9백마르크의 세금이상을 뜻한다. 7월1일부터 賣上?가 그만큼 올랐고 보험도 두 배 가까이 뛰었으니까. 그렇다고 경쟁사회인데 당장 값을 인상할 수도 없다. “당분간은 별수 없어요. 서독인 4명이 동독인 1명을 먹여살려야 해요. 차차 그들도 일터를 얻고 돈을 벌기 시작할 겁니다. 통일이 너무 빠르냐고요? 우리한테는 큰 부담이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동독은 경제적으로 붕괴되고 있으니까요.”

 

통일의 코스트 1조마르크는 미래 위한 투자

포올씨의 발언은 본에서 만난 총리실 보좌관 루디가 티엘레 박사 말이나 서베를린시 대변인 베르너 콜호프씨의 말보다 소박하지만 실감난다. 티엘레씨는 경제전문가, 숫자에 밝다.

“통일에 돈이 얼마나 소요되느냐고요? 막대합니다. 동독의 실업자가 얼마나 생기느냐, 그리고 동독의 인프라스트락쳐(도로 통신 철도 등 기초구조)를 근대화하는 데 얼마나 드느냐 하는 데 달렸죠. 금년 안에 1백억마르크를 동독의 사회보장비로 써야 합니다. 동독 공직자 2백40만 가운데 절반을 감원하는 데 돈이죠, 서비스부문, 건설부문을 대폭 늘리는 데 돈이죠, 실업자를 교육시켜 재취업시키는 데 역시 돈이죠, 그러나 그것은 투자입니다.”

베를린시 대변인에 따르면, 동독경제는 전면 붕괴상태. 통일과 더불어 동독 중앙정부에서 일하던 사람 가운데 20만이 실업, 산업분야에서 20만 실업, 서베를린의 8만 실업까지 합치면 50만의 실업자를 예상한다. 독일에서는 통일의 코스트가 10년간 1조마르크정도 들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인프라스트락쳐 등에서 동독을 서독수준으로 끌어오리는 데 드는 돈이다. 그뿐인가. 동독에 있는 소련군을 내보내는 데도 1백30억마르크(80억달러)가 필요하고 소련에 30억달러 정도의 원조를 약속했다. 주권회복비용이다.

돈, 돈, 엄청난 돈이 두고두고 필요하다. 그러나 독일사람들은 누구한테 물어봐도 신기할 정도로 낙관적이다. 외무성 고위관리인 미하엘 엥겔하르트의 말이다. “독일사람 8천만은 가장 건실하고 가장 잘 조직되고 가장 일을 많이 한다. 미래에 대한 투자가 아닌가. 몇년 후에는 동독이 최신식 기계의 가장 능률적인 산업사회가 될 것이다.”

“독일, 독일, 萬邦의 으뜸”이라는 그들 國歌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 (베를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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