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終戰 최후수단 유엔평화유지군
  • 부다페스트 ·김성진 통신원 ()
  • 승인 1992.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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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14번, 전투만 가열 …‘절대정전’‘유엔軍 배치지역 합의’두 조건 충족돼야

유고 내전 6개월. 사망 7천여명, 이재민 20만여명 전쟁지인 크로아티아공화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 피난민이 50만여명.

전쟁지역을 미처 벗어나지 못한 민간인들은 기아선상에서 지하실에 숨어 생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12주간이나 양측의 집중 포화를 받은 부코바르시에서는 지난달 연방군에  함락될 때까지 주민 5천여명이 포탄세례를 피해 지하실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노약자나 부녀자들이었다. 연방해군의 봉쇄로 모든 생필품 공급을 중단당한 아드리아해의 항구도시 두브로티크에서는 지난 9일 봉쇄가 풀릴 때까지 부녀자와 어린이 5만여명이 전기가 끊어진 어둠속에서 머리 위에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살아 있는 자들은 더이상 죽은 자의 숫자를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불행한 운명을 슬퍼하지도 않는다. 12월2일 공개된 국제인권위원회 (앵네스티 인터내셔널) 유고사태보고서는“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전쟁 당사자들은 아직도 민간인 고문과 살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유고 확전, 기득권 위한‘비겁한 군대’ 때문
유고사태는 왜 이렇게 확전일로를 걸어왔을까. 그 첫째 원인은‘비겁한 군대’때문이라 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4일 크로아티아의 전쟁지역에 주둔한 유럽공동체(EC) 휴전간시단의 보고서가 서방언론에 유출되었다. 이 보고서는 유고연방군을 비겁한 군대로 지칭하면서“합리적인 원칙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기존 지위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싸움을 수행해왔다”고 격렬히 비난했다. 이 보고서는 또“연방군이 전쟁을 계속 확대시 켜왔다”면서“외부의 군사적 개입만이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슬라보니아공화국 류블레나대학의 안톤베블러 교수는 유고군의 이같은 행태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공감하는 군지도부의 성향 뿐만 아니라 현재의 연방기구와 막대한 연방 예산을 유지하려는 군의 정치 ·경제적 이해 관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국가 체계에 대한 광범위한 감시기능, 軍塵복합체에 대한 통제권 등 군의 광범위한 조합 이익은 오로지 유고가 거대한 연방으로 존속 할 때에만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연방유지가 어렵게 될 경우 많은 점령지를 확보하는 것 이 그 차선책일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크로아티아 안의 세르비아인들로 조직된 민병대 대부분이 현재 연빙군 편제 속에서 움직인다는 점,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마저 연방군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일부 보도는 이 같은 설명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제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마지막수단이 유엔평화유지군의 배치라는 데에 양측이 어느 정도 공감을 표시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긍정적 조짐도 · 조금씩 보인다. 우선 정전의 핵심요건이랄 수 있는 크로아티아로부터의 연방군 철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대해 크로아티아 보안군도 공화국 내 연방군 기지에 대한 봉쇄를 풀고 있다. 유고연방 해군은 두브로티크 港을 마지막으로 아드리아해 8개 항구에 대한 봉쇄를 모두 풀었다.

유엔평화유지군이 실제 배치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한다는 것이 유엔 안보리 측의 입장이다. 전쟁당사자 간에‘절대정천’이 유지되어야 하며, 평화유지군 배치지역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평화유지군은 전쟁전의 세르비아 · 크로아티아 국경선에 배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프라뇨 투디만 크로아티아대통령이‘국경선파위기지역’으로 다소 탄력성을 보임으로써 합의도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크로아티아측은 분쟁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재의 국경선에 평화유지군이 배치되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절대정전’이라는 조건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지배적 견해이다. 우선 세르비아 민병대는 크로아티아 내 기지로부터 철수한 연방군 편제에 포함되어 있지만 부대지휘관이 연방군 지도부로부터 상당한 자율성을 위임받았다는 것이다. 이 단위부대 지휘자들은 평화유지군이 들어오기 전에 더 많은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생각을가질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전쟁의 일시적 확대를 초래할 위험이 많다.

전쟁 일시 확대 초래할 수도
유엔 특사 자격으로 사이러스 밴스 전 미 국무장관, 케야르 전 유엔사무총장 및 안보리 대표들은 1주일간 현지에 와서 각 공화국과 최종 협의를 하고 있다. 안보리 일각에서는‘절대정전’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들어 분쟁이 완전히 멈춘 지역부터 순차적으로 평화유지군을 배치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영국의 전 외무장관 캐링턴경이 주도하는 헤이그 명화회담도 곧 재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유고에 항구적인 평화가 도래할 가능성은 높아졌지만 삶의 터전인 경제는 이미 파산상태에 들어가 있다. 올 연말까지 유고연방의 총생산은 이미 50% 이상 줄어들었다. 디나르 貨는 평가절하에 절하를 거듭하고 있다. 세르비아 은행은 공식적으로 서방硬貨에 대해 70% 의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형편이다. 연방 외환보유고도 급격히 줄어 현재 38억달러에 불과하며 외채상환까지 중단된 상태다.

유고 내전은 동유럽 공산주의 몰락 이후 서유럽인들이 갖고 있던 평범한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그 상식이란 통합의 새 시대에 들어선 유럽에서 이제 전쟁은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쟁의 직접 피해자들은 상식을 잃은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것을 잃었다. 부다패스트로 피난온 부코바르 출신 모비츠씨(32)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유럽 각 국의 중재가 내전을 어느 정도 막아 주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중재안이 합의를 이룰 기미가 보이면 더 많은 포탄과 총알이 쏟아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양측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 점령을 원했기 때문이다. 14번이나 맺었던 정전협정은 결국 우리의 불행만을 부채질했을 뿐이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전쟁을 겪어왔다.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되어 있는 그  전쟁의 본질은 바로 인간성 파괴였다. 대통합, 그리고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유고 내전은 바로 이러한 전쟁의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더러운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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