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배는 정신지배이며 산업지배로 이어 진다
  • 강현두 (서울대 교수 · 신문학과) ()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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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일본 대중문화를 심으려는 일본정부의 노력은 참으로 집요하다. 한일회담이 있을 때마다 일본 측은 우리의 대중매체가 일본문화를 담아주기를 요구하여 왔고, 이번에 방한하는 미야자와 총리도 이러한 요구를 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흘리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 일본노래가 방송되고 영화관에서 일본영화가 상영되도록 일본정부는 계속 관철시키려 하는 것이다.

 왜 그러는 걸까. 그들은 문화에 있어서 지배적 논리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는 곧 정치요 경제요 외교이다. 그래서 현대의 제국주의는 문화적 제국주의, EH는 미디어 제국주의로 불린다. 이는 문화 지배가 곧 정신 지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은 대중문화의 진출을 꾀하는 것이다.

 ‘그까짓 영화 몇 편 허용하는 것이 뭐 큰일일까’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중문화, 대중매체는 장르끼리 서로 교류되는 이른바 ‘크로스 장르’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화산업의 개방은 곧 방송과 음반 산업과 비디오산업의 개방뿐 아니라, 앞으로 예상되는 엄청난 소프트웨어 수요로 인해 우리 대중문화를 급격히 일본문화로 편입시킬 것이다. 즉 일본영화 허용은 일본텔레비전, 일본비디오, 일본광고, 일본케이블 등 전 대중문화를 전파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며, 이는 곧장 산업적 허용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일본은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 우리나라의 대중문화에는 ‘지상문화’와 ‘지하문화’가 있다. ‘지상의 대중문화’가 합법적이며 공개적인 서구의 대중문화라면, ‘지하의 대중문화’는 공개적으로 허용되지는 않았으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접하며 즐기는 일본문화라고 할 수 있다. 곳곳에서 보이는 가라오케 간판, 카페나 디스코텍에서 대형스크린에 비치는 일본가수들의 모습, 대사만 번역된 일본 만화 등 걸러지지 않은 일본문화가 도처에서 우리문화를 잠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지하문화가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날, 우리 문화의 주체성은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따라서 일본영화 상영 허용은 단순히 영화 몇 편을 극장에서 상영하는 차원이 아니라 전 문화적 시점에서 고려하여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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