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양로원 ‘통념’ 바꿔야 한다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0.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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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욕구 충족시키는 곳으로 제도개선부터 이뤄져야

평균수명 연장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202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10명중 1명꼴이 되는 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노인들의 욕구도 다양해질 전망이지만 이를 충족시킬 장기적인 대책은커녕 당장 오늘의 노인들이 ‘인생 60’을 펼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90년말 현재 문을 열고 있는 노인복지시설은 무료시설 88군데(양로시설 70, 요양시설 18)와 실비노인시설 7군데, 그리고 유료시설 2군데이다. 수용인원은 동사무소에서 입소자를 선정하는 무료시설에 6천4백50명, 저소득층 노인들이 월 16만5천원을 내는 실비노인시설에 1백15명, 그리고 보증금 5백만원 이상이 드는 중산층을 위한 유료시설에 60명 등 모두 6천6백25명으로 이는 전체 노인의 5%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무료건 유료건 양로?요양원들은 세 곳을 제외하고는 ‘정원미달’이다.

 경기도 수원시에 자리잡은 유당마을은 대지 4천1백59평에 건평 1천5백2평의 규모로 언뜻 보아 기업체 연수원으로 착각할 만큼 현대식으로 지어진 국내 최초의 유료양로원이다. 유당마을은 희망자가 밀려올 것이라는 당포의 예상을 뒤엎고 개소 2년만에 정원의 75%인 52명을 겨우 채웠다. 입소자들의 대부분은 전직 교수?협회장?병원장 등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던 사람들이어서인지 평균연령 75세가 믿어지지 않게 정정하고 곱게 늙은 모습들이다.

 서울에서 국방부산하의 병원장을 지낸 崔景?(80)씨는 우연한 기회에 기사를 보고 아파트 생활을 정리해서 88년 10월 2인실(8평)인 209호실에 입소했다. 미국생활 경험 덕택에 유료양로원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부인 韓聖甲(79)씨가 식사준비를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방은 좁아도 세면대와 변기가 설치된 욕실이 달려 있고 텔레비전 냉장고 등 생활필수품만 놓으니 그런대로 아담했다.

 하루 세끼 식사시간이 유일한 규제사항인 이곳 생활에서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 그러나 초창기에 사용했던 이?미용실, 에어로빅룸 등 부대시설이 지금은 공동목욕탕을 빼고는 모두 무용지물로 변해버려 자유시간은 무료함으로 변한 지 오래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노래모임이 있어 재미있었지요. 요즘엔 진행자가 없어요. 적자운영 탓에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나요.” 부인의 불평에 남편 최씨는 건의하고 싶은 점이 있어도 입소자의 의견을 반영시킬 제도적 장치가 없어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 데도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양로원 운영자들은 그 화살을 법적 제도로 돌린다. “양로원을 사회복지법인에서만 세울 수 있고 운영비의 20%는 반드시 법인에서 부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입소자의 요금도 법으로 묶여 있어요. 물가상승을 전혀 반영할 수 없으니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올 상반기의 적자만도 4천7백37만7천7백32원이었다고 말하는 시설장 金永國씨는 요금자율화는 물론이고, 유료양로원 자체를 개인이 운영할 수 있도록 법적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료시설 확대 바람직

 그러나 김씨의 주장에 대해 보건사회부 가정복지과 鄭明哲씨는 양로원운영이 ‘노인복지’ 차원이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영리사업인 ‘실버산업’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고령자 인구비율과 국민소득 수준이 함께 높아지면서 국내에도 그 개념이 도입된 실버산업은 노인주택?노인아파트 등 노인을 소비자 대상으로 삼는 산업을 말한다. 삼성생명과 콘도미니엄 전문업체인 코레스코, 한국실버 등 몇몇 기업체가 참여하고 있으나 아직 활발하진 못하다.

 노년복지를 영리사업과 구분하는 정부의 이러한 발상은 대다수 노인을 위한 무료양로원 시설도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소수계층을 위한 정책을 펼 수는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게다가 유료양로원을 개인사업으로 풀어줄 경우 가뜩이나 심화돼가는 ‘가족해체현상’을 부채질하는 꼴이 된다는 게 보사부가 내세우는 또다른 이유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인문제연구소 朴在侃 소장은 “시대적 조류인 가족해체를 양로원설립에 얽어매어 생각하는 정부의 태도는 너무 안이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선진국에서는 노인복지시설이 차별화되어 있습니다. 경제력이 없는 사람의 문제는 정부가 담당하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나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을 위해서는 민간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역할분담이 되어 있습니다. 결코 국가가 모든 것을 다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권한만 틀어쥐어 ‘소화불량증’에 걸렸다고까지 말하는 박소장은 노인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하지 못하는 정부의 획일적인 정책 때문에 현재의 노인복지는 노인복지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노인학대정책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보호해야 할 노인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노인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노인수명은 남자 67세 여자 73세로, 일반적으로 남27세 여25세에 결혼한다고 가정할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잃어버린 뒤 10년은 혼자 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남편과의 사별 후 할머니들은 고부간의 갈등, 경제력상실 등 이러저러한 문제로 집을 나와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무료양료원에서 일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남성보다 많다.

 

허물어야 할 벽 ‘양로원=감옥’

 한국 최초로 1927년에 설립된 서울 구기동 청운양로원은 할머니만을 수용한 곳이다. 무료양로원 가운데 비교적 시설이 좋고 잘 운영되고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는 이곳에는 현재 65세부터 98세까지 1백1명이 살고 있다. 기자가 방문했던 지난 10일은 일주일 걸려 마침 김장을 끝낸 직후였다. 2년 전에 이곳에 왔다는 金必淳(70)씨는 “지난해보다 2백포기나 많은 1천2백포기를 담았지”라면서 걷지 못하는 7명의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을 나누어 했다고 전한다. 이들은 손에 쥐었던 것을 모두 놓아버린 뒤 다시 얻은 행복이어서인지 일을 한다는 데 불평은 없어보였다. “쉰밥을 물에 빨아 들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어른들이라 세끼 더운밥을 거저 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한다”고 4대원장 趙同順(55)씨는 말한다.

 그러나 유료건 무료건 양로원을 찾아온 노년층의 공통점이 있다면 일부사람을 제외하고는 신분노출을 꺼린다는 점이다. 행여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하는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한국여성개발원에서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朴貞恩 책임연구원은 “양로원 자체를 금기시하는 사회통념이 타파되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양로원이 ‘매력적인 장소’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무료양로원이 지닌 선입관을 불식시킬 수 있는 유료양로원 설립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87년 노인 1천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백1명인 11.5%만이 양로원시설을 이용할 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다고 전한 박연구원은 바람직한 유료양로원을 설립하여 앞으로 늘어날 노인계층에 대한 모델로 제시해야 할 것이라면서 현재의 유료양로원은 노인질병에 대비한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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