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통합열차’ 궤도 진입
  • 파리 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1.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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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공동체 헌법개정 협상 시작 … 완전 합의엔 시간 걸릴 듯

 ‘유럽공동체(EC) 통합호’ 열차는 예정대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12개 회원국의 경제적 통합뿐 아니라 정치적 통합이다. 지난 12월14일부터 이틀동안 열린 'EC로마정상회담'에서 유럽정치통합(EPU)과 경제 및 통화통합(ECU)을 위한 유럽공동체 헌법개정 협상이 마침내 시작됐다.

 이 두가지 협상은 91년10월 마무리될 예정이며 합의내용은 각국 의회의 비준을 거쳐 93년 1월부터 발효된다. 이는 유럽단일 시장이 93년1월에 실현되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역사상 가장 야심적인 개헌작업”이라는 평을 듣는 협상의 출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유럽의 외교계가 금년에 큰 일을 너무 많이 겪었으며 큰 걱정거리도 많이 안고 있어 약간 지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큰 일로는 독일통일을 위한 2+4회담, 빈군축회담, 유럽안보협력회의(CSCE)가 있었다. 또 이번 EC로마정상회담을 위한 중요한 준비작업이었던 더블린정상회담과 90년10월의 1차로마정상회담을 꼽을 수 있다. 걱정거리로는 소련의 불안한 정국, 동유럽 문제, 가트(GATT)협상의 결렬, 페르시아만 위기 등이 있다.

 

‘유럽합중국’ 탄생은 이상일 뿐

 다른 하나는, 현재 상황은 유럽통합을 이상으로 논할 때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즉 유럽통합을 구체적인 현실의 과제로 대하게 되면서 유럽의 통합이 여러모로 어렵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단일화폐제 도입계획에 대한 영국의 태도만 봐도 이점은 분명해진다. 경제통합에 대한 신중론자인 마거릿 대처 총리가 물러나고 존 메이저 신 총리가 들어섰지만 영국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메이저는 다만 약간의 신축성을 암시함으로써 그동안 대처의 강경자세에 시달려온 다른 나라 대표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을 뿐이다.

 유럽위원회의 자크 들로르 위원장이 회담 끝 무렵에 “EC의 통화제도 계획이 만약 영국 때문에 탈선한다면 ‘정치적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위협적인 발언을 한 것은 협상의 전도를 낙관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은 유럽통화(ECU)를 통용하려는 EC의 계획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별 통화와 유럽통화를 병용하자고 제안했으며, 이 대안의 구체적 내용을 1월에 제시하기로 했다. 독일은 유럽중앙은행을 설치하는 계획과 관련해 회원국의 경제적 실적이 현재보다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선행조건으로 요구할 기세여서 들로르 위원장 등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적 통합을 위한 협상의 전망도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미국 같은 염방제로 완전히 통합돼 ‘유럽합중국’이 생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부 이상주의자들뿐이다. 단일시장을 형성해 경제적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각 회원국이 주권의 일부를 초국가적인 EC정부에 넘길 용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어느 정도라야 하느냐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그동안 정치통합을 함께 제창해온 프랑스와 독일의 입장이나 의견도 서로 다른 점이 있다. 프랑스는 EC의 행정기구가 강화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유럽평의회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유럽의회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정치통합에 관한 구체적인 구상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여러 가지 구상을 반영하는 의제를 정하는 정도에 그쳤다.

 

“맨손 하차는 없을 것이다”

 정치통합을 위한 협상의제에는 외교정책과 안보정책 면에서의 긴밀한 협조뿐 아니라 국방문제에 있어서 EC가 공동으로 대처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회원국 중 9개국으로 구성돼 있는 군사동맹체 서유럽연합(WEU)을 강화함으로써 나토내에서 ‘유럽의 기둥’ 역할을 담당케 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도됐다. 그러나 냉전이 종결됨에 따라 나토의 존재가치에 대해 회의를 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따라서 군사?안보 문제에 관한 EC의 의견을 정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상당한 가변성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경제통합의 경우 고위 실무진은 2주에 한번, 정치통합 쪽은 매주 만나 협상할 예정이며 담당 장관들은 매달 회동하기로 했다.

 ‘유럽 통합호’가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과연 통합을 위한 합의를 어느 정도 도출할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12개 회원국이 맨손으로 하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유럽통합열차’에 승차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나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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