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亂世에 ‘視界는 0’
  • 김동선 (편집부국장) ()
  • 승인 199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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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말마따나 TK인재 덕분에 ‘초근목피’는 면했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가치관의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중국 사람들이 인생의 짦음에 대해 표현한 것을 보면 비유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曹操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읊었던 <短歌行>에서는 인생은 한낱 ‘아침이슬’이다. 술은 노래가 따라야 하리/이 인생 얼마나 살 것인가/아침이슬에 비한들 얼마나 다르랴/지나간 세월이 훨씬 더 많구나/한스러워 강개에 젖건만/근심 걱정은 지워지지 않으니/어떻게 버릴까, 이 시름을…. 조조 나이 54세에 읊었던 이 시는 중국에서 불후의 명작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文選》에도 수록되어 있다. 천하의 패권을 놓고 겨루던 영웅이라서 인생이 더 짧게 생각됐을까. 아침이슬은 태양이 떠오르자마자 사라져버리는 것이니까 인생을 아침이슬처럼 짧다고 비유한 것은 강개어린 슬픔을 준다.

 인생을 아침이슬처럼 짧다고 표현한 것을 중국인 특유의 과장된 비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보다 더 짧게 표현된 것도 있다. 力拔山 氣蓋世이 영웅인 項羽와 劉邦이 자웅을 겨루던 시절, 유방이 항우군에 포위되었을 때였다. 유방이 생포될 위험에 직면하자 그의 고향 사람 紀信이 유방으로 위장한 뒤 그를 탈출시켰는데, 이 때 유방과 기신과의 대화에서 아침이슬보다 더 짧은 인생 얘기가 나온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기신에게 유방이 “넌 나를 좋아했었구나”하고 묻자 기신은 “그렇지 않소”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란 문틈에서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내다보는 순간만큼 짧다고 고향 어른들이 얘기했소. 이런 모양으로 죽다니 실로 쾌사가 아니겠습니까.”

민주와 반민주, 역사와 반역사 개념도 실종되고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순간이란 휙소리가 날 정도로 짧다. 역사의 시공 속에서 개인의 인생이란 그 정도로 짧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어떻게 사느냐’로 귀결되며, 뜻한 바에 따라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결단의 근원도 그러한 인식에서이다.

 항우와 유방의 《楚漢誌》, 또는 조조의 삼국시대를 들여다보다가 우리 정치판을 보면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소국의 정치판이라서 좀스러운건지, 丈夫一言重千金의 미덕이 없는 거세된 남자 같은 사람들이 주역이어서 왜소한 건지 이제 신문 보는 것도 지겨울 지경이다. 87년 이후 1노3김이라는 4명의 영주가 벌이는 정치형태는 지역감정이라는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모든 가치를 쓸어가버렸다. 민주와 반민주, 역사와 반역사, 그리고 정의와 불의의  개념마저 쓸어가버려 이땅은 생명의 풀 한포기  없는 황량한 벌판이 되고 말았다. 이 벌판에는 오직 4명의 영주가 그어놓은 경계선만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유권자의 투표행태를 정치문외한조차 쉽게 분석할 수 있다. 부산 출신이면 YS, 호남출신은 DJ, 충청도는 JP…. 유행가 가사처럼 ‘오직 그것뿐’, 지역감정만 남은 것이다.

 선거가 임박해지자 이 현상은 더욱 가관이다. 민자당의 김종필 최고위원은 충남의 지구당 창당대회에 참석해서 “내가 기댈 언덕은 충청돕니다. 총선 결과에 따라 내가 할 일을 선택해서 주저없이 행동해나갈 생각이니 절대적 성원을 부탁합니다”라고 외쳤다. 스스로 호남 담당 최고위원을 자처한 박태준 최고위원은 전주를 방문했을 때 ‘호남 푸대접론’을 시인했다가 대구에 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대구·경북은 우리나라가 혼란과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을 이룩한 30년 동안 그 발전을 주도한 인재를 배출한 지역”이라며 “이번 총선에서도 압승의 향도 역할을 대구가 맡아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역감정 타파와 TK통치 종식을 외치고 있는 김대중 대표는 비판자를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이기택 공동대표를 YS바람의 부산에서 전국구로 빼돌렸다.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대표는 “모든 부분에서 공평무사해야 할 대통령이 경상도와 자신의 사돈만 위하는 것 같다”고 TK의 인사독점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 또한 강원도의 영주로 굳어지고 있다. YS는 부산·경남지역의 ‘반역’을 무기로 대통령후보를 요구하고 있다.

지역감정 회오리 잠재울 걸출한 인물은 없는가
 도토리 키재기라고나 할까, 누구의 그릇이 더 크다고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승부는 오직 ‘영토의 인구’와 ‘결속력’에 달려 있다. 이런 현실에서 영웅은커녕 걸출한 인물이 어떻게 배출될 수 있겠는가!

 현재를 난세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 난세란 중국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에서는 몇백년만에 한차례씩 처참한 기근이 발생했었다. 이런 때는 한 마을 전체가 유민이 되어 다른 마을을 습격하여 식량 약탈에 나섰고, 약탈당한 촌민들도 유민이 되어 약탈자가 되었다. 이런 상황이 난세였고, 영웅은 바로 이런 시기에 태어났다. 5천명의 유민을 거느린 수장은 5만명 거느린 두목 밑에 들어가고, 5만명의 두목은 결국 1백만명 거느린 두목 휘하에 편입된다. 이렇게 되어 최대세력을 형성한 자가 바로 영웅이 되는 것이다. 항우와 유방, 또는 중국 역대왕조의 시조는 대개 이런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누구말마따나 TK의 인재들 덕분에 초근목피의 식량 기근은 면했는지 모르지만, 현재는 분명히 가치관의 기근 속에 허덕이고 있다. 이것도 난세인데, 이 가치관의 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지역감정 회오리를 잠재울 걸출한 인물은 없는가. 불행하게도 현재는 ‘視界가 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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